나와의 극적인 화해

너무 오래 걸렸다

by 영자

쾌.변.


정신과 약에 무슨 성분이 추가 된건지

세달만에 재복용하기 시작한 후로

달가워하지 않는 증상이 생겼다.

변비.

뱃속에 묵직한 느낌을

히스테릭할 정도로 싫어하는데

그 증상을 없애자고 약을 안먹을 수도 없는 답답한 상황.


크리스마스 이브,

가족끼리 외식하러 갔던 횟집에서 스끼다시로 나온 생고구마에 필이 꽂혀

급하게 공수해서 나도 먹고 식구들도 먹이고 있던 와중

아침에 찾아온 기분좋은 느낌.

드디어 그 분이 나와주시는 걸까.

평소에 당하던 Fake는 분명 아니다.

이건 진짜다.

타이밍을 놓칠세라

변기에 앉자

편하게 나오신다.

굳이 용을 쓰지 않아도 제발로 나와 주신다.


근데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나의 쾌변은 생고구마에게 감사해야할 일이란 것을.

그 깨달음 덕분에 고구마가 더욱더 고귀하고 우러러 보인다.


종아리 반만한 고구마 하나를 정성스레 손질하여 먹기좋게 썰어서

반찬통에 가지런히 담아둔다.

사심을 가지고 너를 주문한 건 아니었지만

새삼 너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고 있구나.

널 새삼 더 깊게 사랑하게 된 내가 바보같이 보일지라도

난 상관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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