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라는 감정은 항상 낯설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가슴이 먹먹하다
내가 현실에 발 닿아 있는데, 게임 속 npc 같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디로 돌아갈 것인지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형편없는 표현방식이다. 묘사도 어떤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지 않으나
글은 써야 내가 살 것만 같다. 글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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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단어가 그저 애도로 모인다는 것.
이제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어른이 현 세상에 없다는 마음이 속절없이 훼방을 준다.
굳게 무너지는 마음을 회수해서 또 다른 내일의 문을 열어 살아내야 하는데
이불속의 절망이 더 쉬운 나머지 계속해서 기다릴 뿐이었다는 것이다.
두 달 전만 해도 안부 전화했던 외할머니의 목소리를 더는 영영 들을 수 없다는 게 믿을 수 없다.
목소리를 녹음해 둘 걸, 전화를 끊으면 그 사이 훅 사라지는 목소리를 이젠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믿을 수 없다. 그저 멀리 여행을 하는 것만 같다.
두 달 전, 우리 엄마께 전화해 자주 집 오라고 하셨는데 자주 가지 못했다.
명절 전 한 두 번, 명절 후 한 두 번. 그것에 대해 속앓이를 몇 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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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리본을 빼고 밖의 옷으로 갈아입으며 장례식장을 유유히 빠져나와 버스를 탈 때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인데도, 이들의 웃음소리가 나에게는 붕 떠서 들린다.
마치 내가 게임 npc가 돼버린 기분이 든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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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를 고봉밥으로 먹고 만다.
이 글을 쓰면서 눈물이 차오른다. 10분 뒤에 면담이 있는데도 프로페셔널한 표정으로
숨겨야 한다는 것이 가장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