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착한 딸이고 싶다.
근무 중에 화가 났을 때 하면 안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다.
상대방의 행동에 불같이 화가 치밀었을 때 그것을 그대로 받아서 이메일을 쓰고 "보내기"버튼을 누르면 그 당시에는 몰랐다가 다음날에는 꼭 후회하는 일이 생기곤 했다.
그래서 그럴 땐 임시저장으로 적어놓았다가 다음날 다시 읽어보고 결국은 새로 쓰거나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방향이 바뀌는 경우들이 많다.
일은 하면 할수록 잘하게 되고 심지어 감정조절 같은 경우도 실수가 줄어드는데 이상하게도 부모님이랑 대화를 하게 되면 화가 나기 일쑤다.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딸은 못되더라도 부끄럽지 않고 착한 딸이고 싶었다. 어릴 땐 나보다 뭐든 더 잘하는 형제가 있었고 태어난 것만으로도 감사한 아들도 있었기에 (우리 부모님은 옛날 분들이고 아주 어렵게 아들이 태어나 아들에 대한 소중함은 나도 인정한다) 나는 그저 속 썩이지 않으면 되는 자식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의 시대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그리고 없는 살림에 모두 대학까지 보내기 위해서 부모님이 얼마나 허리띠를 졸라맸는지, 또 아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딸들도 모두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부모님에게는 숙제를 다 못 끝낸 거라 생각하시는 세대. 그래서 숙제대신 다른 것들이라도 더 잘하고 싶어 매년 해외여행도 모시고 다니고 좋은 것만 보면 챙겨드리고 카카오톡에 원하시는 물건의 사진만 찍히면 바로 그 물건을 찾아내 배송시키는 일을 즐겁게 해 왔다.
나는 착한 딸이고 싶다.
내가 어릴 때부터 살아온 부모님의 수 십 년 된 주택은 낡고 낡아 손볼 곳이 너무나도 많다. 운치 있고 정겨웠던 2층계단과 장독과 빨랫줄이 있는 옥상계단은 엄마의 무릎에 부담을 준다. 사용하지 않은지 수년이 되어도 고장 나지 않은 물건은 버리는 법이 없는 알뜰한 엄마의 물건 쟁이는 습관은 너무 많은 물건들로 방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착한 딸이고 싶은 나는 주말마다 내려가서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공간이 살아나고 필요한 물건과 사용하는 물건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있는 물건을 자꾸만 사놓는 일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보리차가 4박스가 있는데 마트에 갈 때마다 보리차를 사려하셨다 ㅎㅎ) 청소가 마무리된 공간에는 새로운 물건들로 정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하거나 부모님이 사용하기 편한 물건 재배치등이 진행되었다.
낡은 집을 벗어나 이사를 가는 결정이 아니라 내가 청소를 선택한 이유는 이미 이사 가자는 옵션은 부모님의 극렬한 반대로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이사를 못 가니 지금 생활하는 공간이라도 부모님이 그나마 편한 공간이 되시도록 하고 싶었다.
부모님 댁은 현관과 대문 모두 열쇠를 사용한다. 대문은 그렇다 치더라도 현관문은 잠금장치가 무슨 옛날 상가처럼 문 아래쪽에 있어서 문을 열고 잠글 때마다 쭈그리고 앉아 열쇠를 넣어야 한다. 부모님 댁에 자주 오시는 고모도 이게 불편해 보이셨는지 도어락으로 바꾸란 의견도 주셨고 해서 도어락으로 교체하려 했더니 불같이 화를 내신다. 엄마의 레퍼토리는 대략 이러하다.
"나는 이게 편하다. 고장 난 것도 아닌걸 왜 바꾸냐. 그런 거 바꾸는 거 골치 아프다"
"얼마 전 바꿔드린 청소기는요? 바꾸니까 좋잖아요?"
"그거 고장 나서 내가 얘기한 거자나. 고장 난 거 아닌 건 안 바꿔"
"골치 안 아프시게 제가 다 알아서 바꿔놓을 게요. 카드키로 하는 도어락으로 설치할 거니까 열쇠처럼 들고 다니시면 돼요"
아무리 설명해도 고장 난 거 아닌데 바꾸는 거 하지 말라고 계속 화를 내신다. 내가 자꾸 이렇게 뭘 하려고 신경 쓰는 게 엄마는 신경 쓰이고 골치 아프시단다. 나는 착한 딸이고 싶지만... 정말이지 화가 났다.
왜...왜...왜...뭐가 문제인 거지? 나는 오늘도 착한 딸이고 싶다. 그런데 자꾸만 불끈불끈 화가 난다. 이렇게 화를 내고 또 주말에 청소를 감행할 나...엄마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