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귀여운 할머니는 왜 아직도 며느리인가

여자의 일생이란...

by 똑똑한호구

중년이 된 딸의 입장에서 부모님께 화가 나는 이유, 아니 특히 엄마에게 화가 나는 이유 중 하나는 세상이 달라졌음에도 아직도 시집살이로 고통받았던 그 삶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이어가려고 하는 엄마를 발견했을 때.


팔순을 앞두고 계신 엄마는 그 옛날 드라마 귀남이, 후남이 보다도 조금 더 앞선 시대를 살았던 분임에도 폭삭 속았수다의 애순이만큼 똑똑하고 야무진 똑소리 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 옛날에 아들만 학교를 보내던 시절이었음에도 외할머니는 똑똑했던 딸들을 어떻게 해서든 고등학교까지는 다니게 하셔서 우리 엄마는 지역명을 딴 명문여고에서도 가난하지만 공부 잘하는 여고생이었다.


그때 그 시절 딸이란 사람들은 시집가기 전까지 집안일, 농사일을 도우며 그 집안 기둥이라 불리는 아들의 학업을 마칠 수 있게 지원하는 역할들을 했는데 우리 엄마는 대학 다니는 외삼촌을 위해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공무원시험이 철커덕 붙어 가계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았다.


대학에서 만난 선배를 외삼촌이 소개해서 엄마는 아빠와 중매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이미 그 시절엔 아빠도 엄마도 모두 노총각, 노처녀였다. 엄마 아빠 모두 공무원이다 보니 월급은 빠듯했고 8남매 장남이었던 아빠의 무게는 생각보다 너무 무거웠다.


큰 며느리라고 반겨주셨던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꼬장꼬장하기 그지없는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를 엄마는 그대로 겪어야 했다. 그 시어머니, 나에게 할머니는 누구도 함께하고 싶어 하지 않았을 만큼 힘든 분이었다.


엄마는 똑똑하고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억지 부리는 시어머니에게 당하고 살지만은 않았다. 그 삶이 고달프고 피곤한 것은 분명했지만 그럼에도 엄마는 할 말은 하는 사람이었고 그로 인한 언쟁은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지속됐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쯤엔 한평생 빼빼 말랐던 엄마에게도 러브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어릴 땐 보지 못했던 노년의 엄마는 밝고 호기심 많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아마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중년이 될 때까지 벗어나기 어려웠던 경제적 형편과 독한 시어머니의 괴롭힘 등으로 엄마는 날카롭고 예민한 사람이 되어갔었던 것 같다.


어쨌든 노년의 엄마가 귀여운 할머니가 되어가면서 나의 꿈은 엄마 같은 할머니가 되는 걸로 바뀌어 갔다.

내가 잘 몰랐던 엄마의 밝고 열려있는 넓은 마음이 중년을 맞은 내게는 롤모델이 되고 있었다.

차례상을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엄마를 마주하기 전까지...


그렇게 똑 부러지고 세상 당당하고 변화하는 시대에 잘 적응하는 귀여운 할머니가 우리 엄마인데... 그렇게 열려있는 분이 조상님 모시는 일은 본인의 숙명이고 본인이 살아있는 한 지켜내겠노라 하신다.


8남매 맏며느리라는 숙명으로 명절에 친정 한번 가보지 못한 삶을 산 것도 억울한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차례상, 제사상인가...? 심지어 아빠조차도 이제 그만 간소화하자고 얘기한 게 수년 전이었음에도 음식수를 줄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여전히 엄마다.


최근 아빠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시면서 엄마는 "늙으면 부부밖에 없어"를 강조하신다. 그리고 80이 넘은 아빠를 4살짜리 늦둥이 손주보다도 더 아가처럼 살뜰하게 보살피고 계신다. 정작 본인을 돌보지 못하고 있는 엄마가 제일 걱정인데...


여자의 일생이란... 나는 엄마를 정말 사랑하는데, 왜 엄마는 희생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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