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락 때문에 화가 났던 이유

엄마 언어: 엄마의 NO 속에 담긴 YES

by 똑똑한호구

지난달에 부모님께 화가 나는 이유에 대한 글을 적었다.


왜 부모님에게 자꾸만 화가 날까?

오래된 주택의 현관문에 쭈그리고 앉아서 낡고 뻑뻑해진 열쇠를 돌려 문을 열고 닫아야 하는 불편함을 덜어드리려고 도어락을 설치하려 했었다.


열쇠대신 도어락을 쓰게 되면 혹시라도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문을 못 여는 문제가 생길까 봐 마스터키로 도어락에 대기만 하면 되는 걸로 바꿔드린다고까지 말씀드렸는데... 그런데도 고장 나지 않은 건 안 바꾸겠다고 우기는 엄마...


그런데... 화를 내는 엄마에게는 이유가 있었다.


자식들 집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사는 집에서 엄마가 본 현관문 도어락은 대부분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이었고, 그 도어락들은 모두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문이 저절로 닫히도록 해놓고 쓴다.


나는... 몰랐다. 엄마는 마스터키를 집에 둔 채로 현관밖을 나갔다가 문이 잠겨서 못 들어갈까 봐, 당황해서 마스터키 대신 비밀번호로 문을 여는 것을 헤맬까 봐 그게 걱정이셨다는 것을.


본인이 들고 다니는 그 무거운 열쇠는 본인이 열쇠로 잠그고 나서야 잠기는데 엄마가 알고 있는 도어락은 문을 열었다 닫으면 그냥 잠겨버리는 불편하고 무서운 문이었다. 엄마가 자칫 현관문이 잠겨서 들어가지 못할까 봐 겁이 나셨다는 걸 한참을 대화한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80을 앞둔 엄마에게는 당연히 겁나는 일일수밖에.


세심하지 못한 딸이 엄마의 진짜 걱정이 뭔지 헤아리지 못했다.

엄마의 "열쇠가 편해. 열쇠로 잠그면 걱정 없어."라는 말이,

사실은 "도어락 달면 그냥 잠기면 어쩌니. 마스터키 안 가지고 나왔는데 잠겨서 못 들어가면 어쩌니."와 같은 말이었던 거다.


도어락도 수동설정이란 게 돼서 자동 잠김이 아니라 잠그고 싶을 때만 잠기게 할 수 있다고 설명을 드리고 나니 "그렇게 바꾸고 싶으면 니가 알아서 해라."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말씀은 "그런 거면 바꿔도 좋아."라는 우리 엄마식의 오케이 사인이다.


그렇게 현관문에 도어락을 달았고 당연히 엄마에겐 마스터키를 쥐어드리면서 현관문을 잠그고 싶을 때 잠그는 방법, 그리고 문을 여는 방법들을 여러 번 반복해서 알려드렸답니다.(물론 마스터키가 없을 때를 대비해 엄마가 절대 잊을 수 없는 도어락 비밀번호로 문을 여는 방법까지)


서너 번 반복한 다음 엄마에게서 이 정도면 할 수 있다는 표정이 나왔다. 우리 엄마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성실한 분이어서 몇 번 반복해서 알려드리면 뭐든 열심히 따라 하신다. 일주일 뒤 부모님 댁에 갔을 땐 엄마는 이 정도면 껌이지~의 뉘앙스로 도어락을 사용하고 계셨다.


물론 현관열쇠를 여전히 도어락 마스터키와 함께 가지고 다니시지만. ㅎㅎ


부모님의 삶을 편하게 해 드리려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나름 신경 써서 조금씩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는데 도어락은 부모님에게 큰 변화였던 모양이다.


주말마다 부모님 댁에 가서 청소를 해온 지 석 달 정도 되어간다. 발 디딜 곳이 없던 창고 같던 공간들이 필요 없는 물건들을 버리고 동선에 따라 물건들을 재배치하 고나니 처음엔 아깝게 고장 나지 않은 걸 버린다고 역정을 내시던 엄마도 이제는 공간이 살아날 때마다 밝아지시는 게 보인다. 그리고 정리된 곳은 그다음 주에 가보면 엄마가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시는 모습이 보여서 뿌듯하다.


변화는 그렇게 작은 것부터 시작인데 내 욕심에 도어락은 세심하게 설명하지 않고 밀어붙이려 했던 게 문제였던 것 같다.

앞으로도 조금씩 조금씩 엄마가 걱정하지 않는 선에서 부모님 댁을 바꿔드려야겠다.


똑똑한 호구인 줄 알았는데 엄마언어를 알아듣지 못한 세심함이 부족한 딸이었네.

반성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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