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나도 요즘 세대였다.

한때는 나도 점약 많은 계약직이었다

by 똑똑한호구

수십 번의 이력서 제출에도 면접 보라고 오라는 연락이 없었던 취준생시절에는 도대체 이렇게나 회사가 많고 사무실이 넘쳐나는데 왜 나를 뽑아주지 않는가...??? 하면서 자책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직장에서 첫 월급을 받았을 때, 나는 감흥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일한 것에 비해서 받은 월급이 보잘것없어 보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때 나는 내가 회사에 기여하는 것보다 내 가치를 실제의 나보다 높게 책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첫 직장에서 사표를 던지고 배가 고파진 다음에야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란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고 나의 신분이란 것이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란 걸 알게 되었다.


2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나이가 많다고 느끼며 들어간 두 번 직장은 첫 직장보다는 훨씬 더 어떻게 해서든 버텨야 하는 곳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1. 너는 왜 재수를 안 했니?

두 번째 직장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여장부로 불리던 상무님께서 나한테 대놓고 하신 말이다. 속 뜻은 내 대학 학벌이 부족하단 의미임과 동시에 재수해서 소위 더 좋은 대학(SKY같은)을 나왔다면 계약직에서 시작해서 이런 고생을 안 했을 텐데....라는 의미였다.


나는 그 속 뜻을 알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당시 그 회사는 나를 제외하고는 새로 온 직원은 모두 경력직들 뿐이었고 나처럼 그 회사에서 사원부터 시작했던 사람들은 누구나 그 회사에서 계약직을 거친 경우가 많았다. 마치 계약직을 거쳐야만 정직원이 되는 기회를 주는 것처럼...


지금 사회초년생들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직장 내 갑질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사실 그 말이 나오게 된 상황은 내가 일을 깔끔하게 잘 해낸 다음이었고 그 말의 진짜 속뜻은 너의 학벌로 인해 바로 정직원이 안된 게 안타깝다... 정도였다.


그때 나는 "집에 돈이 없어서요..."라고 농담인 듯 넘겼던 것 같다. (사실이기도 해서 시간이 갈수록 속상하긴 했다)


2. 너네 언니가 OO(경쟁사) 다닌다며? 거기 고객리스트 좀 빼내오면 내가 정직원 시켜줄게.

드라마에서 나오는 얘기인가 싶지만 실제로 내가 들었던 말이다. 왜 재수하지 않았냐고 물었던 분이 했던 말. 여기선 침묵할 수 없었지만 정색하거나 할 수 도 없었다.


나에게 정직원자리를 위해서 가족을 엮는 것은 내 인생에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고 내가 거기에 홀랑 넘어가 남의 회사 고객리스트나 빼올것 처럼 양심없고 절박하기 그지 없는 사람으로 본 건가 싶어 기분이 너무 나빴다. 그리고 거기서 바로 정색을 했다간 농담인데 뭘 그러냐 소리가 나올 것 같은 그 상황이 더 기분이 나빴다.


나는 일개 계약직 사원에 불과했고 상대는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고 그 자리까지 올라간 상무님이었으니...

나의 계약 연장을 쥐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분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그냥 담담하지만 명확하게 "그건 안될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나선 어색한 침묵...


그 이후로 그래서 어쨌냐고? 나는 그냥 내 일에 최선을 다했다. 업무적으로는 어떤 틈도 보이지 않게. 그 상무님은 본인부서의 말단이 해야 할 일을 직속 부하직원도 아닌 나에게 가끔 일을 시키곤 했는데 이를테면 퇴근시간 30분 전에 "내일 아침까지~"하고 퇴근하시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아주 묵묵하게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시기 전에 시키신 업무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퇴근을 했다.


그리고 대신에 나의 소심한 반항은...


그분이 갑작스럽게 점심을 먹자고 하시면

"죄송해요 상무님 선약이 있어요."라고 퇴짜를 놓았다. 그것도 아주 여러 번 ㅎㅎㅎ


지금의 세대들에게는 그게 아주 당연한 걸 수 있는데 계약직 직원이 상무님이랑 점심을 선약이 아니면 안 된다고 몇 번을 퇴짜 놓는 것은 그때는 용감한 일이었다. 난 그럴수 있었던 것이 진짜로 선약이 계속 있었으니까~ㅎㅎㅎ


계약직 막내다 보니 여기저기 니일 내일 할거 없이 하는 일들이 늘어났고, 그러다 보니 고맙다고 밥을 산다고 하거나 혹은 미리 밥을 사주면서 부탁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땐 나랑 비슷한 처지의 계약직친구와 밥친구를 먹고 점심약속이 없도록 한 달을 채워놓고 살던 때였다.


그러다 보니 선약을 잡지 않고 바로 그냥 밥 먹자고 하는 사람들은 같이 밥을 먹을 수 없는 그런 상태였는데 그 상무님은 내가 선약을 당연히 취소하고 본인이랑 밥을 먹을 거라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난 그러지 않았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ㅎㅎ


몇 번을 그렇게 거절을 하고 나니 나는 한 달 전에 점심 약속을 잡아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의 기성세대가 봤을 때, 그때의 나도 역시 요즘애들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때 딱 1년만 채우고 관두자를 되뇌며 버텼던 것 같다. 어차피 계약직으로 2년까지는 다닐 수 있으니 1년이 지나 2년 차의 계약을 하고 나면 그때부터 다음 직장을 물색할 생각으로 버텼다.


그리고 예상밖으로 그 회사 계약직으로 일한 지 1년이 되던 날 나는 다른 부서의 정직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 후임자를 급하게 뽑아야만 했다.


3."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애를 뽑아야..."


나를 두고 한 말인데 칭찬도 아닌 씁쓸해지는 말이었다. 회사엔 대학을 갓 졸업하고 취업한 어린 친구보다는 다른 회사를 다니다 온 중고신입이나 경력직이 적응이 빠르니 경력이 있는 계약직을 뽑아야 한다는 데서 나온 말이었다.


다른 부서로 가게 되긴 했지만 같은 회사에 계속 다녔기 때문에 전체 회식 같은 때 제외하고는 업무적으로 엮일 일은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분의 언행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소위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그 세대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였을까? 그리고 직장 내 갑질이란 단어와 의미가 정립되기 이전은 그야말로 야만의 시대였을 터.


나보다 더 앞세대의 분들은 기존의 기성세대와 차이를 좁히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 왔고 나도 그랬던것 같다. 그 회사에서 약 8년정도 막내를 하고나서야 중고신입이 들어왔고, 그 중고신입은 30대후반이 되었던 나를 오래 일했다며 "화석" 또는 "시조새"로 부르며 놀려댔다. 그땐 아직 마흔도 되기전에 으르신 취급하는 막내가 야속하기도 했는데 생각해보면 그래도 놀림을 하는 막내가 있을때가 좋았던 것도 같다.


지금은 그런 농담도 던지기 어려운 정말 빼박 기성세대다.


오늘은 내가 요즘세대였을때 비수처럼 꽂히는 말이나 행동을 했던 기성세대들을 기억하면서 나도 그런 기성세대가 되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본다.


나도 그땐 요즘세대였지만 지금은 나도 기성세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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