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분히 개인적인 기록 : 빚 제로

은행과 이별했습니다.

by 똑똑한호구

어떤 글이 개인적이지 않은 게 있겠냐만은 오늘 이 글은 정말로 개인적인 기록이다.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 나는 새내기시절부터 공부와는 담을 쌓고 동아리에 미쳐 살았다. 학교생활에는 적응하지 못했지만, 그때 내 모든 시간과 열정을 쏟아냈던 동아리 활동이 중년이 된 나에게 아직까지 20여 명 정도가 모여있는 수다쟁이 단톡방에 적을 두고 있게 했다.


30대 중반이 되었을 때쯤, 스무 명이 넘는 동이리 친구들 가운데 결혼을 안 한 동기는 나와 다른 친구, 둘만 남게 되었다.


지금은 누구나 결혼은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내 또래 사람들에게 그건 그냥 하는 말이고...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해? 남자친구 있어?"는 명절 친척들 기본 질문 중 하나인 그런 시절을 살았다.


나는 결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적이 없지만 결혼을 안 하는 것으로 선택한 적도 없다. 즉, 비혼주의자는 아니라는 얘기. 비혼주의자라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 내 애매한 결혼관에 대해 설명하기는 더 어려웠던 것 같다.


따라서 결혼을 안 한 것에 대해서 살면서 후회되는 순간은 없었다. 다만, 결혼한 친구들이 부러웠던 지점들은 몇 가지 있어 왔는데 30대 후반이 되면서 부럽다 못해 약간 자책하는 시점이 있었다.


결혼을 한 친구들은 신혼집 마련을 위해서 보통 대출을 실행한다. 부모님의 원조 없이 서울에서 마련한 신혼집이 자가인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많은 경우에 자녀가 생기면서 집이 좁아지고 더 나은 환경을 위해서 살던 집을 옮기는 등의 큰 변화들을 겪게 된다. 결과적으로 자취방 살림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사회인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 비해 경제적 독립, 자립의 절실함이 극에 달하게 되고 집주인의 핍박(?)이라도 겪는 경우엔 "내 집마련"을 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다짐을 두 부부가 하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내 친구들도 그랬던 것 같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으면 어른이 되는 게 아마도 이런 많은 소위 으른들의 일들을 겪으면서 성장하기 때문일지도...


어쨌든 미혼으로 살아온 나는 기혼인 친구들에 비해 내 집마련의 꿈을 꾸는 것도 늦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혼자 벌고 혼자 대출받고 혼자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더 불완전/불안전한 상태였으므로 절실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 "왜 나만... 왜 나만 집이 없는 건데....!!!????"라는 좌절감과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때가 있었다. 늦었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영원히 내 집한 칸 없이 셋방 난민으로 살게 될 것 같아 서울지도를 펼쳐놓고 내가 둘러볼 만한 곳이 있는지를 노트에 손으로 적어가며 리스트를 뽑고 임장을 다니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은 다음 얼레벌레 내 집마련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은행 대출은 함께 하는 거죠. 대출도 능력입니다.


친구들이 "내 집이 아니야. 은행집이야"라고 할 때 나는 언제나 "대출도 능력이래~"라고 했는데. 그 능력을 나에게도 은행이 부여했다.


내 집마련을 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뒤부터 수입의 65% 정도를 저축하다 보니 옷 한 벌 못 사 입고 점심은 도시락도 싸고 살았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대출금이란 걸 내기 시작하니 갚기 어려운 수준으로 대출한 것도 아닌데삶이 더 구질구질해져 갔다. 도시락까지 싸들고 다니진 않았지만 사람이 약간 옹색해졌달까?


대출금은 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열심히 갚았다.


그리고 2025년이 다 가기 전.

은행 대출금 상환완료 => 빚제로

내 집마련에 성공했던 그 시점보다 더 낡은 이 집이 완전히 내 집이 되었다. 나 같은 월급쟁이에게는 대출금 상환도 역시 시간이 약이다.


대출금 제로. 이제 옷도 좀 사고 문화생활도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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