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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모멘트 Apr 03. 2021

어디에서든 살아가기

[에필로그] 일상이든, 여행이든.

어디서도 완벽히 행복하지 못했고,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Epilogue


도무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몰라 시작한 글입니다.


12월 31일. 뉴질랜드에서 한국을 오는 길에 펜을 들었습니다. 도무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몰랐고, 다음 해를 맞이할 자신이 없어 시작한 글입니다. 그렇게 여행 수첩에 끄적이기 시작한 글이 한 줄, 단락, 페이지, 글이 되어갑니다. 비행기에 내려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꾸준히 매일 같이 적었습니다. 출근 길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병원 대기실에서, 정말 예쁜 카페나 심지어 동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점점 글이 가장 큰 여행이자 일상이 되어 갑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 벌써 사계절이 흘렀습니다. 볕이 잘 드는 카페 창가에 자리 잡고 예전에 쓴 글들과 일기, 메모들을 보고, 또 쓰다 보면 마치 과거가 여행처럼 펼쳐집니다. 눈물 범벅으로 불행하게 기억되던 시기에 가리워졌던 웃음을 찾기도 하고, 즐거움만 가득했다고 믿던 여행길 속 고민과 외로움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잊고 있던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지나간 순간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살아나 감정을 휘젓기도 합니다. 곳곳에 숨어있던 일상과 여행의 흔적을 들춥니다.  하얀 백지에 검은 글자가 한 글자 씩 찍힐 때마다 수 없이 다녀온 곳들을 다시 만납니다. 그 모든 이야기가 제게 위안을 건네줍니다.


어디에 있어도 된다고.

언제든 또 다시 웃었더라고 말이에요.


어디서도 완벽히 행복하지 못했고,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여행에서 작은 위안과 미래, 새로운 사람을 만나듯이 일상을 살아왔다는 걸 깨닫습니다. 유럽이나 한국에서, 학교나 직장에서, 친구와 사람 사이에서. 어디서나 흔들렸고, 어디선가 위로를 받으며 지내왔나 봅니다. 그 모든 이야기가 하나하나 글자가 되어가고, 한 페이지가 되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어느 장면을 적을 때는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눈물만 쏟고, 어떤 페이지를 쓴 날에는 하루 종일 실실 웃고 다니기도 합니다. 일상이 여행이 되었고, 여행이 다시 일상이 되어 갑니다. 어디에 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걸까요?


마지막일 줄 알았던 휴가를 뒤로하고 전 아직도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참 많이 웃고 울며 적은 이 글이 제 바짓가랑이를 잡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무너진 줄 알았던 시기 후에 언제나 다시 왔던 또 다른 세계, 예상치 못했던 행복과 사람들, 즐거운 후에 다시 닥쳤던 시련들, 순간마다 놓쳐버린 진심들을 마주하다 보니 현재가 소중해졌습니다. 이 작은 마음이 삶의 결을 바꾸어 가는 과정을 봅니다.


회사 안팎에서 인생에서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일들도 수 도 없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일상을 가득 채우는 여러 이야기와 추억들을 찾으며 소중하게 살아갑니다. 이 시기가 행복하게 기억되기를 바라면서요. 여전히 서글픈 일들과 감당하지 못할 일들이 많았지만, 차근차근 지나가지리라 믿으면서 살아갑니다. 실제로 시간이 해결해 주기도 하고, 지리하고 괴로운 과정을 지속해야 하기도 합니다. 마음 아픈 이별들도 있지만, 또 새로운 일들과 인연들이 채워집니다. 특별한 해피엔딩은 없었지만,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만약 훗날 이 날도 글로 쓰게 된다면,

그 땐 울기보다는 미소를 띄우면 좋겠습니다.


마음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땐 또 어김없이 펜을 꺼냅니다. 다리에 힘이 풀리면 글을 지지 삼아 비틀비틀 흔들리는 하루를 가누기도 하고, 오히려 마음이 들떠 한참 앞서 나갈 때면 붙잡기도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디에 있든, 이 곳에 있다고 되뇌이면서요.


* * *


글을 쓰는 동안 두 번의 여행을 더 다녀왔습니다. 칠 년 만에 제주도를 다녀왔고, 뉴질랜드를 다녀온 지 한 해가 되던 즈음에 동유럽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았고, 어떤 결심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습니다. 여행은 일상의 일부가 되어, 평화롭고 즐겁게 흘러갔습니다. 그만큼 일상이 여행처럼 좋아졌습니다. 긴 글을 쓰는 한 해 동안, 하루하루가 여행만큼 소중해졌나 봅니다. 그런 1년을 선물해준 이 길고 긴 글에 감사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오늘 하루를 사는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자

누군가를 응원하고 싶은 작은 욕심입니다.


어디서 어떤 삶을 사실 지 모르겠습니다. 어디선가 흔들리고, 어떤 곳에서 위로 받았을 당신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디에 있어도 되고, 어디서든 또 다시 웃을 수 있다고 말이에요. 그리하여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응원하는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어디서든 그 곳에서 하루하루를 채우며 사셨을 테니까요. 잊고 있던 소중한 발자취를 하나 둘 꺼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머물던 장소와 함께 점점이 찍힌 발걸음을 하나씩 되짚다 보면 생각보다 멋진 이야기를 마주하실 테니까요. 가끔 스스로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 주시기를요.


당신은 왜 여행을 하시나요?

그리고 어떤 일상을 살고 계시나요?


당신이 어느 곳에 있든지,

그 곳에서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당신을 응원하는 많은 사람 중

한 사람 드림

        

*** 브런치 독자분들을 위한 글

- 1년도 넘게 적은 글들을 매주 한차례씩 전달드립니다.

 - 한 주를 또 치열하게 살아냈을 매주 토요일 밤, 지나온 발자취와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

 - 여러분의 삶에 자그마한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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