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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걸음 Apr 07. 2021

#1 사춘기일까요?

파란만장 고등학교

사춘기일까요?


열여덟, 사춘기가 왔습니다.

부모님 몰래

학교 빠지기를 여러 번

결국 손을 들고

선언했습니다.

‘저 제주도 다녀올래요‘

방황의 끝 이길 바랐던 첫 홀로여행은

방황의 서막쯤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열여덟, 십이월입니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가다 보면 수풀이 우거진 고등학교 하나가 나타납니다. 서울 시내에서 쉬이 보기 힘든 울창한 나무들과 녹색의 푸르름이 널따란 교정을 가득 채우고, 일단 들어가면 학생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심지어 교복조차 초록색인 곳에는 정말 매일매일 행복한 일이 넘쳤습니다.


오전 7시부터 밤 11시까지 친구들과 함께했고, 웃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지각한 친구들을 놀리는 걸로 일과를 시작하고, 아침에 같이 졸면서 자습을 합니다. 쉬는 시간에는 반 TV화면에 뮤직비디오를 틀고, 반 전체가 떠나가라 함께 노래 부르고 춤을 추고는 했습니다. 시끄럽다고 교주 선생님께 걸리기라도 하면 씨익 웃으며 아무 일도 없었듯이 딴청을 피웠습니다. 점심시간에는 아프리카 소떼 마냥 급식실로 달려갔고, 석식 후에는 배드민턴 한 판 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밥 먹은 후에 매점에 들러 군것질 거리를 입에 물고 나무로 우거진 학교를 한바퀴 뺑 도는 것이 필수 코스였습니다. 산책 길에 우연히 선생님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말을 걸거나 장난 치기 바빴습니다. 선생님들과 한마디라도 더하기 위해 수다를 떨러 친구들과 교무실을 뻔질나게 들락거렸고, 눈 비비며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을 향하는 길은 언제나 웃음과 함께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집에 도착하면 종일 있던 일들로 이야기 보따리를 풉니다. 거실에 네 가족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하루 간 있었던 일들로 웃고 떠들다 보면 자정을 쉽게 넘기고는 했습니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연년생 언니와 매점에서 만나기라도 한 날에는 밤 늦게까지 학교에서 웃겼던 얘기로 대화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일을 위해 제발 자라는 부모님 잔소리를 들어야만 하루가 끝나는 재미있는 일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여러 일들을 겪으며 상황은 조금씩 변해갔습니다. 아니면 늦은 사춘기가 온 걸지 모르겠습니다. 여전 히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친구들과 함께 보냈지만, 웃음 대신 부담과 괴로움이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학교가는 길이 즐겁지 않았고, 일상이 생기를 잃었습니다. 특정할 수 없는 이유로 말들이 점점 사라졌고, 모든 상황이 악화되어 갔습니다. 무엇으로부터 시작된 지 모르는 어둠이 삶 곳곳에 짙게 깔렸고, 하루가 속절없이 흔들렸습니다. 결국 학교에 입학한 이듬해. 푸르름 가득하던 교정이 단풍과 낙엽을 지나 옷을 벗고, 겨울을 맞아 무채색으로 변할 즈음에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하교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에 학교는 한적했고 해 질 무렵 노을 빛만 복도를 잔잔히 비추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교무실 문을 드르륵 열고 나오실 때까지 한참 기다리다가, 나오시는 발걸음을 붙잡았습니다. 그러고는 키가 190cm는 될 얼굴을 높이 올려다보며 어려운 말을 꺼냈습니다.


“딱 일주일만, 학교를 빠질 수 있을까요?”


몸은 덜덜 떨렸고, 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울먹임이 묻어났습니다. 돌아와서 열심히 공부할 테니, 부모님께 한 번만 비밀로 한 어려운 허락을 부탁드렸습니다. 큰 키의 선생님은 흘러 내리는 안경을 왼손으로 잠시 잡더니, 이내 허리를 굽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높이까지 내려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라. 단, 학교를 완전히 빠지는 건 안된다.” 높은 벽처럼 느껴지던 장신의 선생님께서 날카로운 질책과 핀잔보다 더 따끔한 따스한 배려와 믿음을 건네어 주셨습니다. 그 날부터 한 주간 학교를 늦게 갔습니다. 여느 때처럼 초록색 교복에 파란 명찰을 달고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집을 나섰지만 학교 앞 정류장에서 내리지 않았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더 먼 정류장을 향했고, 같은 교복의 친구들이 아예 보이지 않을 즈음에 내렸습니다. 딱히 행선지가 있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버스 노선을 따라 시간이 정처 없이 흘러버렸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거의 종점에 다다라 있었고, 주변에는 높은 건물 하나 없이 꽤나 웅장한 산세가 펼쳐졌습니다. 흐린 하늘 속 뾰족하게 솟은 삼각형모양 정상이 인상적인 북한산 초입이었습니다. 때마침 비가 부슬부슬 내렸기 때문인지 동네에는 인적이 드물었고, 휑한 거리를 훑는 바람 소리만 차갑게 들려왔습니다. 뿌연 하늘과 옅게 내리는 빗방울은 공기에서 온기를 앗아갔고, 떨어진 붉은 낙엽과 처량한 나무는 스산함을 더하고 있었습니다. 찬 공기에 우산을 들고 있는 손은 하얗고 빨갛게 물들어갔고, 빗물 젖은 운동화 사이로 한기가 흘러 들었습니다. 시려 운 발가락을 한껏 움츠리고, 차가워진 손에 연신 입김을 불면서 두리번거렸습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몰랐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한 주 동안 북한산부터 이름 모를 동네, 학교 뒤편 분식집, 자습실 옥상 등 소소하게 숨을 곳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스스로 정리되지 않은 마음에 울기도 했고, 새로운 일탈감에 허허실실 거리기도 했습니다. 종례 시간이 다가올 즈음에 교실로 돌아가 평소처럼 귀가했습니다. 학교를 빠져도 마음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허락 받은 일주일 후에도 상황은 같았고, 고등학교 3학년이 다가오며 상태는 오히려 더 악화되어 갔습니다. 매일 엘리베이터에 내려 번호키에 손을 내밀 때까지 한숨이 가득했습니다.


집에 들어갈 때면 심호흡을 크게 하고, 억지로 웃으며 들어가기를 몇 계절. 결국 그 해 겨울의 끝자락, 처음으로 용기 내서 부모님께 솔직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항상 웃을 일로 모이던 거실에 슬픈 얼굴을 하고 모두를 모았습니다. 선생님을 만나러 교무실을 향하 듯 떨리는 목소리였습니다. 버텨보려고 1년 동안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 더 이상은 못할 것 같다고, 학교를 그만 둬야할 것 같다고 말입니다. 거실에 앉아 펑펑 울면서 말씀드렸습니다. 정말 마지막으로 어디 가서 고생이라도 한 번 실컷 하고, 정신 차려보고 오겠다고,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렇게 학교를 그만둘 용기 대신 선택했던 배낭여행입니다. 그간 용돈으로 조금씩 모아온 한 없이 부족한 쌈짓돈으로 첫 여행지, 제주도로 향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 땅, 제주도였습니다.


*** 브런치 독자분들을 위한 글

- 1년도 넘게 적은 글들을 매주 한차례씩 전달드립니다.

 - 한 주를 또 치열하게 살아냈을 매주 토요일 밤, 지나온 발자취와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

 - 여러분의 삶에 자그마한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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