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한 당신에게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온 것은 사람이라기보다, 차갑고 묵직한 공기의 덩어리 같았다. 서늘한 바람에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며 고개를 돌렸다. 입구에는 한 노신사가 서 있었다.
그는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평균적인 활기와는 사뭇 다른, 정적이고 고요한 분위기를 두르고 있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은 한 올의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빗어 넘겼고, 눈가와 입가에 자리 잡은 주름은 세월의 흉터가 아니라 잘 정돈된 나이테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입가에 머금은 옅은 미소였다. 마치 세상의 조급함과는 상관없는 즐거운 비밀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쳐흘렀다.
그는 천천히, 마치 흐르는 물살을 거스르지 않는 배처럼 카운터로 향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바쁜 점원의 물음에 그는 젖은 우산을 잠시 고쳐 쥐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따뜻한 홍차 한 잔 부탁합니다. 급하지 않으니 천천히 주셔도 괜찮습니다."
점원에게 건네는 말투와 눈빛에는 몸에 밴 정중함이 묻어났다. 나이 어린 아르바이트생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귀한 대접을 해주는 이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태도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직은 깨닫지 못했지만, 그건 내가 막연히 꿈꾸던, 언젠가 내가 닿고 싶은 '잘 늙은 모습'의 표상이었다.
그가 주문을 마치고 창가 쪽 빈자리에 짐을 푼 바로 그 순간이었다.
"후두둑-"
마치 그의 등장이 신호탄이라도 된 것처럼, 유리창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하나, 둘, 셋. 빗방울의 개수를 셀 틈도 없이, 짓눌려 있던 회색 구름이 기어이 터져버렸다.
"쏴아아아-"
마른하늘이 무너져 내리듯 거센 소나기가 쏟아졌다. 12월의 예고 없는 겨울비였다. 아스팔트 바닥에서 먼지 섞인 흙냄새가 피어오르고, 투명했던 카페의 통유리창은 순식간에 흘러내리는 물줄기로 인해 불투명하게 일그러졌다. 바깥세상의 풍경이 뭉개진 수채화처럼 흐릿해졌다.
평온하던 카페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술렁였다.
"어? 뭐야, 갑자기 비 오잖아?"
"아, 미치겠네. 우산 안 가져왔는데."
"일기예보엔 없었단 말이야."
유리막 안에서 각자의 세계에 부유하던 사람들이 현실로 튕겨 나왔다. 누군가는 미간을 찌푸리며 신경질적으로 스마트폰 날씨 앱을 새로 고침 했고, 누군가는 젖을 가방을 걱정하며 창밖을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예측 불가능한 변수 앞에, 효율적이고 계획적이었던 현대인들의 시간은 멈춰 섰다. 카페 안은 순식간에 당황과 짜증, 불안이 섞인 소음으로 채워졌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방금 들어온 노신사였다. 그는 쏟아지는 비를 보며 당황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오히려 반가운 손님이라도 만난 듯 창밖을 향해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
이내 그는 가죽 가방에서 낡지만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양장본 책 한 권을 꺼냈다. 스마트폰을 꺼내 날씨를 확인하는 대신, 그는 돋보기를 꺼내 쓰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을 옆에 두고, 유리창을 때리는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활자 속으로 산책을 떠난 것이다.
소란스러운 카페 안에서 오직 그만이 고요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그저 그 순간을 누리겠다는 태도였다.
나는 빨대를 입에 문 채, 멍하니 그 비현실적인 모습을 바라보았다. 쏟아지는 비를 사이에 두고 카페 안에는 두 개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당황으로 빠르게 흐르는 젊은이들의 시간, 그리고 책장 넘기는 소리에 맞춰 차분하게 멈춰 있는 노인의 시간.
그 기묘하고도 우아한 대비가 나의 시선을 붙잡아 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