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한 당신에게
"제 할 일을 묵묵히 해낸다..."
나는 노신사의 말을 입안에서 굴려보았다. 묵묵히. 성실하게. 그 단어들은 창밖의 풍경과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이상하게 가슴 한구석을 뻐근하게 만들었다. 내 눈에는 그저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폭력적인 물살로만 보였던 것이, 그의 눈에는 하늘에서 땅까지 내려오는 성실한 여정으로 보인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하지만 불안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감탄은 짧았고, 현실적인 걱정은 길었다. 나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 창밖을 노려보았다.
"그래도... 너무 많이 오잖아요. 그칠 기미도 안 보이고요."
나도 모르게 투정 섞인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그것은 단순히 날씨에 대한 불평이 아니었다. 언제 성과가 나올지 모르는 내 일, 아무리 노력해도 줄어들지 않는 오차, 그리고 꽉 막힌 미래에 대한 답답함이 빗대어 나온 진심이었다.
"이대로 계속 오면 집에 갈 수도 없을 거예요. 계획했던 모든 게 엉망이 될 거라고요."
나의 조급한 하소연에 노신사는 찻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깊은 눈동자 속에 흔들리는 내 모습이 비쳤다. 그는 빙긋 웃으며, 검지 끝으로 습기가 찬 유리창을 가리켰다.
"젊은이, 저기를 자세히 보게나."
그의 손끝이 가리킨 곳에는 빗방울 하나가 유리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중력을 거스르며 버티던 물방울은 이내 다른 물방울과 합쳐지더니, 주르륵 길을 내며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우리가 보기엔 하늘이 구멍 난 것처럼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 같지. 무섭고, 감당할 수 없을 거대한 덩어리처럼 보일 거야."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창밖의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타닥, 타닥. 유리창을 때리는 소리가 일정한 박자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저게 다 한 방울이라네."
"한 방울이요?"
"그렇지. 한 방울, 그리고 또 한 방울. 저 거센 비도 결국엔 한 방울씩 차례대로 떨어져서 땅을 적시는 거야. 한꺼번에 쏟아지는 게 아니라네. 그저 아주 부지런히, 다음 방울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지."
한 방울씩, 차례대로.
그 말이 귓가에 닿는 순간, 뇌리에 번개가 치듯 섬광이 스쳤다. 나는 멍하니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빗물 줄기를 바라보았다. 멀리서 볼 때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처럼 보였던 빗줄기가, 자세히 보니 수많은 점의 연속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앞선 방울이 길을 트면, 뒷 방울이 그 길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그 순간,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창밖의 빗소리가 더 이상 나를 위협하는 소음으로 들리지 않았다. 대신 밤새 내가 모니터 앞에서 두드렸던 키보드 소리가 그 위에 겹쳐 들리기 시작했다.
타닥, 타닥, 타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