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0.1퍼센트의 비질

쉬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한 당신에게

by MingDu

타닥, 타닥, 타닥.


유리창을 때리는 불규칙한 빗소리가 점점 선명해지더니, 어느 순간 내 고막 안에서 딱딱하고 건조한 기계음으로 변조되기 시작했다. 그 규칙적인 리듬은 시공간을 비틀어 나를 비 냄새나는 카페 밖으로, 아니 며칠 전의 새벽 3시, 적막만이 감돌던 내 방 책상 앞으로 거칠게 잡아끌었다.

주변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원두의 향기도 순식간에 휘발되었다. 남은 것은 오직 어둠 속에 홀로 뜬 모니터의 창백한 푸른 빛, 그리고 윙윙거리는 본체의 팬 소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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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또 틀렸어."


건조해진 눈을 비비며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입안이 바싹 말라 혀끝에서 쓴맛이 났다. 화면 가득 빽빽하게 채워진 엑셀 시트의 숫자들과 복잡하게 얽힌 코드들이 마치 나를 비웃듯 춤을 추고 있었다.

세상에 없던 이론을 증명해 보이겠다며 호기롭게 시작한 일이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기에 지도따위는 없었다. 내가 딛는 발자국이 곧 길이 되는, 설렘보다는 공포가 더 큰 여정. 나는 그 길을 만들기 위해 수만 개의 데이터를 긁어모으고, 그것들을 조각하고 다듬어 하나의 완벽한 논리를 세우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완벽하다고 믿고 시뮬레이션을 돌릴 때마다, 유령처럼 튀어나오는 0.1%의 오차. 그 미세한 균열이 전체 논리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타닥, 타닥.


나는 신경질적으로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변수 하나를 수정한다. 엔터를 누른다. 모래시계가 돈다. 기다린다. 결과는 실패. 다시 백스페이스. 작성했던 코드를 지운다. 멍하니 커서의 깜빡임을 바라보다 다시 작성한다.

타닥.

이번엔 책상 옆에 산더미처럼 쌓인 참고 문헌을 뒤적거렸다. 영어로 된 논문 수십 편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내 가설을 뒷받침할 단 한 문장을 찾기 위해 하염없이 스크롤을 내린다. 눈알이 빠질 것 같고 뒷목이 돌덩이처럼 굳어왔지만 멈출 수 없었다.


타닥, 타닥, 타닥.


그때의 나는 마치 거대한 바위산을 티스푼 하나로 파내고 있는 기분이었다. 물어볼 선배도, 참고할 선례도 없는 캄캄한 터널.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이 지루하고, 반복적이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손가락의 움직임뿐이었다. 이마를 짚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이렇게 밤을 새워가며 오타나 잡고 있는다고 세상이 알아줄까? 당장 내일 아침에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책상 위에 식어빠져 막이 생긴 커피처럼, 내 열정도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문장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그 행위가 너무나 하찮게 느껴졌다. 나는 거대한 폭포수 같은 성과를 원했다. 단번에 세상을 설득하고, 사람들의 박수를 받고,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줄 드라마틱한 결과. 그런데 내 손에 쥐어진 건 고작 0.1%의 오차와 씨름하는 옹색한 키보드 소리뿐이라니.


나는 그 초라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세웠다. 잠을 줄이고, 밥을 거르고, 잠깐의 휴식조차 게으름이라 치부하며 모니터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라도 내 몸을 갈아 넣지 않으면, 아무런 성과도 없는 나 자신이 무가치한 먼지처럼 흩어져 버릴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까 봐.

타닥, 타닥... 툭, 투둑... 후두둑.

과거의 타자 소리가 현재의 빗소리와 다시 겹쳐지며, 현실의 감각이 돌아왔다. 카페 창가에 앉은 나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노신사의 찻잔 부딪히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아, 그랬구나. 내가 그토록 괴로워하고 무의미하다며 자학했던 그 지난한 밤들이, 실은 헛수고가 아니었구나.

노신사의 말처럼, 저 높은 하늘에서 메마른 땅까지 내려오기 위해 필연적으로 떨어져야만 했던 '한 방울'들이었구나. 변수 하나를 고치던 그 손가락질 한 번이 한 방울. 마음에 들지 않아 지워버린 문장 한 줄이 또 한 방울. 오차를 줄이기 위해 머리를 싸매던 그 고요한 침묵의 시간들이, 결국엔 이 메마른 현실을 적시기 위해 가장 먼저 떨어져 내린 첫 번째 빗방울들이었구나.


그 깨달음은 내 안의 거대한 댐을 무너뜨렸다. 동시에 내가 왜 그토록 휴식을 두려워하고, 카페에 앉아있는 이 순간조차 죄책감이라는 형벌을 스스로에게 내리고 있었는지, 그 원인의 실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했던 것이다.


비는 하늘의 뜻이다. 언제 내릴지, 얼마나 쏟아질지, 언제 그칠지 인간인 나는 결정할 수 없다. 그것은 자연의 영역이다. '결과'라는 녀석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무리 치열하게 노력해도 세상이 언제 나를 알아줄지, 이 일이 언제 빛을 발할지는 내가 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의 영역이고, 운의 영역이며, 시간의 영역이다.


그런데 나는 오만하게도 그 거대한 '결과'를 내 뜻대로 쥐락펴락하고 싶어 했다. 당장 비를 내리게 하고 싶었고, 원할 때 멈추게 하고 싶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비) 앞에서, 나는 "왜 비가 안 오는 거야? 왜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 거야?"라고 떼를 쓰며 내 능력 부족을 탓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이 아닌데 신의 영역을 넘보았으니, 괴로움은 필연이었다. 내 무력감은 무능해서가 아니라,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려 했던 나의 오만함에서 온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다시 창밖을 보았다. 비는 여전히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비가 나를 비웃거나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제 할 일을 묵묵히, 아주 성실하게 해내고 있는 수억 개의 '타자 소리'로 들렸다.


내 안의 팽팽했던 긴장의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썰물처럼 빠져나간 불안 대신, 잔잔한 위로가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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