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한 당신에게
노신사가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도,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다. 해가 기울며 빗줄기는 더욱 굵고 거세지고 있었다. 하늘은 더 짙은 회색으로 물들었고, 도시는 여전히 물에 잠긴 채 흐느끼고 있었다.
예전 같았다면 ‘망했다’며 한숨을 쉬었을 풍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밍밍해진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맛없고 미지근한 액체였지만, 목 넘김은 그 어느 때보다 시원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카페에 들어올 때 느꼈던 도피성 안도감이나 피로감과는 질적으로 다른, 단단한 확신이었다.
가방을 메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
“딸랑-”
맑은 종소리가 울리며 현실의 문이 열렸다. 카페 밖으로 나오자마자 습하고 차가운 바람이 훅 끼쳐 왔다. 비 냄새, 젖은 흙내음.
우산도 없이 뛰어가던 사람들이 카페 처마 밑으로 급히 몸을 피하며 나를 스쳐 지나갔다.
“아, 미치겠네. 비 왜 안그쳐?”
짜증과 불안이 섞인 목소리들이 내 귓가를 때렸다. 하지만 나는 그 소음에 동요하지 않았다. 가방에서 작은 접이식 우산을 꺼냈다.
타탁, 투툭.
우산을 펴자마자 빗방울들이 요란하게 떨어져 내렸다. 우산 하나로는 막을 수 없는 거센 비였다. 바짓단은 금세 젖어 들었고, 신발 속으로도 차가운 물기가 스며들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주머니에 한 손을 찔러 넣고, 빗속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누군가는 나를 추월해 달려가고, 누군가는 내 어깨를 치며 바쁘게 지나갔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의 속도가 있고, 나에게는 나만의 속도가 있었다.
나는 일부어 발을 굴러 웅덩이를 밟았다. 찰박, 하는 소리와 함께 흙탕물이 튀었다. 더 이상 옷이 젖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젖을 것이라면, 차라리 시원하게 젖어버리는 편이 나으니까.
뚜벅, 뚜벅.
나의 발걸음 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묘하게도 밤새 내 방을 채우던 ‘타자 소리’와 닮아 있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한 방울, 또 한 방울.
내일도 나는 0.1%의 오차와 싸우며 괴로워할지도 모른다. 성과는 더딜 것이고, 세상은 여전히 나를 알아봐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내딛는 이 젖은 발검은 하나하나가, 결국엔 어딘가에 닿을 ‘성실한 비’라는 것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비는 여전히 세상을 집어삼킬 듯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 우산 아래, 나만의 작은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고 단단했다.
나는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나만의 리듬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