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다 보면 그 순간에 너에게 찾아올 거야.
수동 필름 카메라는 느리다. 디지털카메라나 자동 필름 카메라처럼 초점과 노출이 자동으로 맞춰지지 않는다. 눈으로 보고 직접 초점과 노출을 맞춰줘야 한다. 수동 필름 카메라로 한 장 찍을 시간이 디지털카메라와 자동 필름 카메라로 몇 장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난 수동 필름 카메라가 더 좋다. 디지털카메라가 지나가는 순간을 빠르게 포착해 낸다면 수동 필름 카메라는 느리지만 신중하게 원하는 순간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에는 설렘이 있다. 내가 원하던 순간이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필름을 인화할 때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순간을 쫓기보단 순간이 나에게 오길 기다리는 것.
우리는 무언가를 쫓아가기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어떤 사람일 수도,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일 수도 있다. 항상 바쁘게 쉬지 않고 앞만 보고 쫓아간다.
때론 무언가를 쫓아가기보단 나에게 올 수 있게 기다려 보는 것도 좋다. 천천히 기다리다 보면 내 주변이 눈에 들어온다. 바쁘게 앞만 보고 달릴 때는 볼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보인다. 내 발 밑에 땅이 보이고, 땅에 피어있는 풀과 꽃이 보인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바람에 실려 오는 향긋한 향기를 맡는다. 잊고 살던 많은 것들을 다시 기억하게 된다.
사진을 찍어두고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게 되면 그때는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철길을 찍은 사진에서 풀이 보이고, 하늘이 보이고, 기둥 사이의 사람이 보인다. 처음에는 전체적인 분위기만 보였다면 천천히 보면 세부적인 모습까지 보게 된다.
사진을 찍고 나서 바로 보정을 할 때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보정을 하게 되면 결과가 다를 때가 많다. 사진을 찍고 바로 보정하게 되면 전체적인 분위기 위주로 보정을 하지만 천천히 하게 되면 세부적인 모습까지 공들여 보정을 하게 된다. 결과를 놓고 보면 천천히 보정을 한 사진이 대부분 더 맘에 들었다.
너무 앞만 보며 달리지 말고 때로는 천천히 걸으며 주변 환경까지 신경 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전체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세부적인 모습까지 좋은 사람.
느리지만 신중하게 기다리면 우리가 원하는 순간은 확실하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