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면
멀리서 보는 바다는 유리처럼 매끈하다. 햇빛이 눈부시게 비치고 하늘이 바다에 담길정도로. 가까이서 보면 어떨까? 가까이서 보는 바다는 쉴 새 없이 파도가 치며 매끈해 보이는 표면은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한다. 맑은 날에는 잔잔하게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심하게 오르락내리락한다.
사람의 기분이 마치 바다의 파도와 같다. 멀리서 보면 큰 감정 동요 없이 아무 일 없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무게를 견디며 살아간다. 내가 견딜 수 있는 일들이 꼭 남들도 견딜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른들의 10kg이 아이들에게는 100kg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내가 가볍게 생각하는 일이 누군가 한테는 어려울 수도 있다. 누구든 이런 삶의 무게에 눌릴 때가 온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죽을 용기로 살아가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나도 그런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잘 안다. 그들의 선택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했고, 그 선택은 나와는 다른 선택일 뿐이다. 다른 것뿐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남겨질 사람들을 생각하라는 말, 죽을 용기로 살라는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버틸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삶의 무게를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게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든 시기가 온다.
다이어리에 어디선가 보고 적어둔 글이 있다.
사람의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아서 신이 심심할 때마다 펼쳐보고 읽어보곤 한다고. 그래서 재미를 위해, 감동을 위해 때론 이야기에 시련도 들어가고, 고통도 들어가지만 항상 밝은 결말을 위해 달려 나갈 거라고. 신도 이야기가 슬프게 끝나는 건 원치 않으니까.
지금 내 삶이 힘들고 포기하고 싶다면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힘든 건 당연한 것이고 나의 이야기는 내가 써 내려가는 것이라고.
남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면 조연이지만,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면 주연이 되는 것처럼. 내 삶에서 주인공은 내가 되고, 작가, 감독도 내가 된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이라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