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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사 이명지 Feb 23. 2020

이별의 품격

사랑에도 예의가 있듯 이별에도 품격이 있어야

이별의 품격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다가
느닷없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외로움이 훅 밀려들었다.
혼자라는 외로움이 대책 없이 엄습할 때면 자식들에게 자꾸 섭섭해진다.
딸애보다 아들놈에게 더 그렇다.


결혼한 딸은 때때로 엄마를 챙기고 안부를 묻는다. 손녀까지 낳아주어 더욱 이쁘다.
결혼을 안 한 아들은 먼저 안부를 하는 적이 좀처럼 없다. 가족 단톡방에 아주 가끔 참여할 뿐이다.
평소엔 그러려니 지내다가도 크리스마스나 연말 같은 무슨 때가 되면 엄청 서운하다.
혼자인 엄마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때마침 친한 여고동창 몇이 모인 단톡방에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톡이 떴다.
무심한 아들에 대한 서운함을 친구들에게 쏟아놓았다.
친구들도 별 다르지 않아 미국인 며느리를 본 친구는 도를 닦는 심정이라 했고 또 다른 친구는 아예 아들이 없다 생각하며 산다 했다.
아들을 결혼시킨 친구들은 한결같이 마음을 비우라 했다. 기대를 접으라 했다. 아들들은 다 그렇다고.

 아들들은 왜 그래야 하는데?

아들들은 왜 그래도 되는 건데?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아무리 부모가 전생의 빚쟁이라지만 낳아 기르고 무조건적 사랑을 주는 관계에서 자식들이 좀 살갑게 굴어주면 안 되나? 친절하면 안 되나?

부모들이 자식들한테 죄인인가 말이다.

 
어떤 부모도 갚을 걸 바라고 자식을 낳아 기르지는 않는다. 키우면서 얻은 기쁨으로 어느 만큼은 보상 받았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때때로 섭섭하다. 사람인지라, 부족한 인간인지라 기대를 완전히 접는 일은 진짜 도를 닦아야 가능한 일이니까.

왜 자식들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사는 일에 도까지 닦아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참는 것만이 미덕일까?
아들들은 원래 그래! 하고 감수하는 것이 옳은 걸까?

 언젠가는 모두 이별한다.

상황에 의한 이별, 시간에 의한 이별….
사랑하고 애태우고 때로 다투며 살아갈 시간, 우리에게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함께하는 남은 시간 동안 종래는 맞이할 이별을 잘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말해야겠다.
섭섭하면 섭섭하다고 해야겠다.
외롭다고 해야겠다.
내 마음 좀 만져달라고 말해야겠다.
말 하지 않으면 모르지 않는가.
그냥 토라져 있지 말고 내 마음이 이렇다고 설명해야겠다.
기실 말하는 것만으로도 상당부분 해소될 것이고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지 않겠는가.
외로움이란 게 그런 것이니까, 태산 같다가도 안개처럼 걷히는 게 그 마음이니까….

 아들아이의 무심함이 유독 서운한 이유가 있긴 하다.
아무리 대범한 엄마인 척해도 결코 퇴색되지 않는 그때의 기억.
10여 년 전 아들아이가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두고 아이아빠가 가산을 결딴내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헤어졌다.
마지막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막막했다.
세계적 경제위기라 환율은 엄청났고 국내사정도 녹록치 않았다.
아들아이는 학업을 포기하고 들어오겠다고 했지만 한 학기를 앞두고 포기시키기엔 너무 안타까워 나는 어떻게든 해보자고 했다.
결국 등록기간까지 등록금을 절반밖에 마련하지 못하게 되자 학교에 통사정해 일주일 등록연장 양해를 받았다.
신입생이 아니라서 다행히 양해가 되었다.
그 일주일동안 나는 새끼를 굶주리게 한 어미의 눈빛을 하고 돈을 구하러 팔방으로 뛰어다녔다.
나는 그때 알았다. 배부른 자에겐 쉬 밥을 주지만 굶주린 자에겐 더없이 거만한 게 세상인심이란 것을….

 양해 받은 일주일을 하루 남긴 저녁나절, 절반은 포기상태인 그때 섬광처럼 떠오른 한 이름이 있었다. 장학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고향선배님의 이름.
벼랑 끝에서 염치불구 전화를 걸었다.
선배는 늦은 박사학위를 받느라 논문최종심사 중이라 오늘 시간이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 꼭 만나야 한다는 간절한 내 목소리에 저녁 식사도 거른 채 9시가 넘어 달려와 주었다.
막상 마주 앉았지만 말도 잘 꺼내지 못하고 눈물만 그렁한 내게 선배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떠듬떠듬 토로한 내 사정에 선배는 전화로 해도 될 얘기를 뭐 그리 어렵게 하느냐며 흔쾌히 해결해 주었다.  

 그날 선배와 헤어져 집까지 돌아오는 거리가 채 오백 미터도 되지 않았는데 긴장이 풀려 걸을 수가 없었다.
자꾸 길바닥에 주저앉아졌다.
입에서는 꺽꺽 신음소리 같은 것이 쉬지 않고 올라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댔지만 부끄러운 것도 몰랐다.
주저앉은 눈앞에 노래방 네온싸인이 번쩍여 무작정 들어갔다.
한 시간을 계산하고 들어가 아무 숫자나 마구 눌러놓고 대성통곡으로 울었다.
울음소리는 노래방의 호쾌한 기계음이 삼켜주었고 현란한 조명만이 빙글빙글 저 혼자 신이 나 돌았다.

얼마나 울었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눈물을 닦고 안 울은 척 하며 한 시간 추가계산을 하려하니 사람 좋게 생긴 여사장님이 추가 한 시간은 서비스라며 웃어보였다.
겨우 삼킨 울음이 또 목에서 울컥거렸다.

 그날의 기억은 내 일생에서 가장 절박했고 처절했지만 또한 가장 따뜻한 온기로 남아있다.
 곡비처럼 내 인생을 대신 울어주고 나의 정서적 허기까지 채워주는 소중한 기억이다.
그럼에도 아들에게 가끔 서운한 마음이 드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라는 지질함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라고 한다.
세월에도 아물지 않는 아릿한 기억이지만 분명한 것은 선배님에 대한 감사과 존경, 그 하나로 귀결되는 천금 같은 기억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고 한다.
외로움도 결국 나 자신의 문제이고 끌어안고 삭이며 견뎌내야 할 숙명임을 모르지 않는다.
 자식뿐이 아니라 그 누가 심연으로부터 올라오는 근원적 고독을 채워줄 수 있을까만 엄마이기 이전에 나는 한 인간이다.
홀로 시들어가면서도 의연한 척 내 아이들을 무심한 불효자로 만들고 싶지 않다.
사랑하고 배려하며 배려 받는 따뜻한 관계이고 싶다.
스스로를 돌보며 행복한 엄마로 살고 싶다.
그래서  후일 내가 떠난 뒤에도 그리움으로 남은 엄마이고 싶다.
잘 헤어져야 그리움이 남고 잘 살아야 잘 헤어질 수도 있다.
사랑의 관계에도 예의가 있듯 이별에도 품격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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