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야 제격이다.
잘 긁어지기도 하지만 과즙도 달고 풍성하다.
싱크대에 서서 사과를 긁어먹는다. 과즙이 튀겨 바닥이 끈적일까 봐 싱크대에 서서 먹는다. 누가 쫒아오는 것도 아닌데 서서 긁어먹는 맛은 조급한 맛이다. 뭐랄까? 장터 난전 음식 같은?
교양이나 품격 같은 건 애당초 생각지 않아도 쓸쓸해 보이진 않아야 할 텐데 왠지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하며 먹는다. 스테인레스 숟가락으로 박박 긁어가며......
사과를 긁어먹기 시작한 건 요즈음이다. 15개월짜리 손녀에게 환심을 사려고 시작한 일이다. 막 낯을 가리기 시작한 손녀를 홀려서 안아보기 위해 고안해 낸 나의 방편이다.
한 달에 한두 번 보는 손녀는 만날 때마다 낯이 설어 한번 안아보려면 온갖 재롱을 내가 떨어야 한다. 그런데 사과를 긁어주면 내 앞에 앉아 따박따박 받아먹는다. 그게 어찌나 이쁜지 늘 사과를 준비해두고 손녀를 맞는다.
엄마가 그랬다.
고속버스로 네 시간이나 걸려 가끔 딸의 집에 오셔도 일하는 딸은 출근해 없고 어린 외손주들에게 사과를 긁어주셨던 모양이다. 퇴근해 오면 바가지 모양을 한 사과껍질이 수북하고 아이들은 외할머니 곁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영 싫었다.
사과즙이 튀겨 바닥이 끈적해지는 것도 그렇지만 농사일로 거칠어진 엄마의 손가락 사이로 줄줄 흐르는 과즙이 왠지 불결해 보여 그렇게 아이들에게 먹이는 것이 못마땅해 눈살을 찌푸리곤 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달랐던 모양이다.
화롯가에 옹기종기 모여 할머니에게 옛날이야기를 듣는다던 동요처럼 할머니가 긁어주시던 사과맛을 잊을 수 없다며 할머니를 추억하고 있었다.
엄마는 과수원집 안주인이었다.
크고 잘 익은 사과는 내다 팔아야 하니 우리는 늘 썩은 부분을 도려낸 반쪽짜리 사과만 먹어야 했다. 우리는 늘 그게 불만이었다.
그런데도 가끔 엄마가 그 반쪽짜리를 놋숟가락으로 쓱쓱 긁어서 먹여주면 어찌나 달고 시원한지 제비 새끼처럼 모여 앉아 쩍쩍 입을 벌려 한없이 받아먹곤 했다.
그런 달큼한 기억에도 나는 엄마가 내 아이들에게 그렇게 먹이는 건 싫었다. 단지 비위생적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3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엄마처럼 사과를 긁어 손녀에게 먹인다.
손녀는 어느새 낯가림도 잊고 옴팡지게 받아먹는다.
손녀에게 먹일 땐 튀거나 말거나 거실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긁어 먹인다.
이 녀석에게 환심을 사 한 번이라도 더 안아보고 싶어 갖은 재롱을 할미가 먼저 떨고 온갖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 딸은 자기 딸에게 손가락 사이로 과즙을 줄줄 흘리며 사과를 긁어 먹이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내색도 못하고 속으로 찡그리고 있을까? 그때의 나처럼?
손녀가 남긴 사과 반쪽을 싱크대에 서서 긁어먹으며 울컥 엄마가 그립다. 사무치게......
"엄마 미안해!
천국 사과도 긁어먹는 게 더 맛있나요?"
ㅡ딸의 딸 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