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상처에도 밴드를 붙일 수 있다면
엄마, 나 학교에서 넘어져서 양쪽 무릎이 다 까졌는데 약 뭐 발라야 해?
우유 하나 사러 집 앞 마트에 잠깐 들렀는데 그 사이 학교에서 돌아온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많이 다쳤어?"
"너무 쓰라려. 걷지를 못하겠어."
"뭐 하다 넘어져?"
"아~~ 몰라~~ 너무 아파... 나 약 뭐 발라?"
"으이구... 일단 소독하고 후시딘 발라."
"아~~ 나 아파... 엄마 빨리 와..."
어쩜 다 큰 녀석이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까 싶다가도,
다치면 여전히 엄마부터 찾는 딸아이가 귀여웠다.
서둘러 집에 와 보니 양쪽 무릎 모두 500원짜리 동전 두 배 정도 크기로 살갗이 벗겨져 있었다.
"엄마, 나 소독하다 따가워서 쓰러지는 줄 알았어.
아~~ 진짜 너무 아파."
"너 아직 걸음마 못 뗐어? 왜 넘어지고 그래."
잔뜩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지 웃는다.
학교에서 하교 시간 무렵 한 손에는 보드게임을,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복도에서 뛰다가 넘어졌는데(사실 자빠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지만...) 그 순간 너무 아팠지만 속된 말로 쪽팔려서 벌떡 일어났다고 했다.
살짝만 스쳐도 따갑고 걸을 때마다 욱신거린다길래 밴드를 붙여주려 했는데 상처 부위가 커서 집에 있는 걸로는 어림도 없었다.
다시 약국에 가서 큰 사이즈의 일회용 밴드를 종류별로 사 오면서 문득 오래전 드라마 한 장면이 떠올랐다.
노희경 작가의 "꽃보다 아름다워"
치매 증상이 점점 깊어져 가던 엄마(고두심).
그 사실을 모른 채 날이 갈수록 이상해지는 엄마의 행동에 지쳐가던 딸(배종옥)은
어느 날, 화가 난 얼굴로 엄마를 돌려세운다.
그런데 그 순간,
엄마는 가슴 한가운데에 빨간약을 바르고 있었다.
“내가... 마음이 아파가지구... 이거 바르면 괜찮을 것 같아가지고…”
시청자를 울렸던 그 장면이 그 순간 왜 갑자기 생각났는지 모르지만 그냥 마음에 난 상처에도 붙일 수 있는 밴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몸에 난 상처는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이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아물지만,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언제 다쳤는지도 모르고,
소독도 밴드도 없이 그냥 덮고, 눌러두고, 잊은 척 지나간다.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의 말 한마디, 어떤 장면 하나에 툭 하고 다시 덧난다.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그 안에서 오래도록 아물지 않은 마음의 상처가 조용히 욱신거리는 순간.
나는,
누군가의 마음이 아플 때
그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쳤는지를 조금 더 오래, 조심스럽게 바라보려 애쓴다.
사람들은 대개 마음이 다쳤을 때
그걸 '말'로 꺼내기보다 '행동'이나 '표정', 혹은 '무기력함'으로 표현한다.
"그땐 너무 힘들었어요."라는 말 한마디를 꺼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두려움을 삼켜야 했는지 나는 안다.
그래서 코칭의 시작은 늘,
그 사람의 마음 가장자리부터 들여다보는 일이다.
당장은 아무렇지 않은 듯해도,
그 안엔 아직 닿지 않은 아픔이 있을 수 있고,
이미 흉터가 된 줄 알았던 기억이
사실은 여전히 덧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 한마디에 무너지는 사람도 있고,
말 한마디에 겨우 숨을 고르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런 마음 위에
밴드를 붙이는 마음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땐 어떤 마음이었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은 뭐였나요?"
"지금 가장 위로가 필요한 감정은 뭘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그저 조용히, 부드럽게, 함께 바라봐주는 것.
그게 내가 하는 일이고,
엄마로서도, 코치로서도 내가 지키고 싶은 태도다.
나는 바란다.
누군가의 마음이 조용히 욱신거릴 때,
그 아픔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다만,
그 마음에 너무 성급하게 손대지 않도록.
섣불리 위로하거나,
서둘러 결론 내리지 않도록.
그저 천천히,
가만히,
곁에 머물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나, 마음이 좀 아파요"라고 말해준다면
그 말 위에
조용히, 조심스럽게,
내 마음을 살며시 덧대주고 싶다.
아프지 않게.
아프더라도, 혼자 아프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