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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우리 집에 수박 먹는 귀신이 살아요

호불호가 확실한 아이

by 커리어포유

"엄마, 집에 수박 없어?"

냉장고에 머리를 쏙 들이밀던 딸이 이내 실망한 듯 나를 돌아봤다.

"응... 어제 마트 갔을 때 안 샀어."

"아... 수박 먹고 싶은데..."


딸은 어릴 때부터 수박을 참 좋아했다.

여름이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수박을 찾았고,

그 때문에 나는 수박이 떨어지지 않도록 부지런히 사다 날랐다.

심지어 한겨울에도 수박이 먹고 싶다고 조르는 바람에 비싼 값을 주고 계절도 무시한 채 사다 먹인 적도 있었다.

수박 한 통을 사 와 그 자리에서 한입 크기로 잘라 밀폐용기에 담아두면 일주일도 채 안 돼 또 사 와야 했다.

그런데 이번만은 그냥 지나쳤다.

올해 날씨가 유난히 더워서일까.

수박들이 겉은 멀쩡해 보여도 막상 잘라보면 속이 너무 익어 물컹한 게 많았다.

지난주에 사다 나른 수박 두 통은 유독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어제 마트에 갔을 때 수박이 떨어질 줄 알면서도 굳이 사지 않았다.

"참외 깎아 줄까?"

"아냐... 괜찮아."




딸은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확실한 편이다.

좋아하는 음식은 몇 날 며칠을 달아서도 먹지만

싫어하는 건 아예 쳐다도 안 본다.

햄버거와 피자, 치킨 같은 메뉴는 1년에 몇 번이나 먹을까 싶다.

대신 한식을 선호한다.

서너 살 무렵, 한식 뷔페를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어린아이가 도라지나물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신기하셨는지

사장님께서 "안동 약도라지예요. 귀한 거니까 많이 드세요." 하시며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그 작은 아이가 도라지를 입에 넣고 천천히 꼭꼭 씹던 모습이

지금의 '취향 확실한 아이'의 시작이었던 것도 같다.

샤부샤부와 초밥은 딸의 최애 메뉴였다.

그래서 우리 가족 외식 메뉴는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마라탕이 그 둘의 자리를 밀어냈다.

매운 음식을 썩 잘 먹는 편도 아니면서, 그렇게 마라탕 타령을 한다.

계란 노른자는 질색이고(이건 나랑 똑같다ㅎㅎ)

익힌 양파, 파, 마늘은 귀신같이 골라낸다.

그러면서도 생양파, 생마늘은 잘도 집어 먹는다.

입맛의 기준을 도무지 알 수 없어 물어보면
자기만의 논리를 내세운다.
"익히면 이상한 단맛 나잖아. 그게 싫어."

팥은 아예 안 먹는다.
팥빙수 위에 얹힌 팥도
언제나 고스란히 마지막까지 바닥에 남아 있다.
팥죽, 단팥빵, 팥앙금 든 떡... 전부 다 밀어낸다.

붕어빵도 꼭 슈붕만 먹는다.

반면 나는 팥을 무척 좋아한다.
어릴 적 내 생일엔 친정엄마께서 늘 팥밥을 해 주셨다.
그 따끈하고 고소한 붉은 밥 한 그릇에
기쁨과 축복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믿으며 자랐다.

하지만 딸이 팥밥을 싫어해서 우리 집 생일상에서 팥밥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어릴 땐 그저 편식이라 생각해 한두 번 억지로 먹이려 시도도 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알게 됐다.
이 아이는 단순히 음식투정을 하는 게 아니라,
'나는 이런 걸 좋아하고, 이런 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라는 걸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었던 거다.

어쩌면 음식 하나하나에 대한 선호도는
이 아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가 권해도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줄 알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입맛을 분명히 주장하는 모습.
그게 때로는 고집처럼 느껴졌지만,
돌이켜 보면 그것도 나름의 '자기 선택'이었다.


입맛뿐만이 아니다.

이 아이는 사람을 대할 때도,

물건을 고를 때도,

항상 자기 기준이 뚜렷하다.

그 선택들이 아주 단순하거나 충동적인 건 아니다.

딸은 늘 자기 안의 어떤 감각을 따라가고 있었다.

'나는 이런 게 좋고, 이건 좀 불편하고, 이건 지금 내 기분과 맞지 않아.'

그 감각에 정직하게 반응하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나는 코치다.
고객이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고,
그걸 지켜나가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하지만 딸 앞에선 그 기준을 자꾸 바꾸고 싶어 했다.

'조금만 타협하면 더 편할 텐데',
'좀 유연해지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으로
딸의 '분명함'을 자주 걱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본다.
좋고 싫음을 명확히 아는 아이는
세상 앞에서도 자기 선택을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랄 것이다.

취향을 표현하는 건,
어쩌면 자기를 지키는 연습일지도 모르겠다.


좋고 싫음이 분명한 그 태도 안에서

나는 이 아이만의 질서와 감각을 본다.

아직은 괜한 고집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작은 선택들이 분명 언젠가

자기 삶의 방향을 지켜줄 거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밀어내는지를

조용히, 놓치지 않고 바라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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