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인정하고 연결하는 '관계 온도' 맞추기
오늘 아침 날씨 완전 마음에 들었어
3주간의 방학을 마치고 어제 개학을 한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내게 건넨 첫마디다.
오전 강의가 있어 딸보다 일찍 나가는 바람에 등교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학교 간 소감을 물어보려던 찰나,
먼저 꺼낸 얘기는 학교 얘기도, 친구 얘기도 아닌 날씨 얘기였다.
"와... 진짜 나는 대한민국 여름 기온이 오늘 아침 같으면 살 것 같아."
6월에 태어난 딸아이는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탄다.
딸이 태어났던 2008년은 더위가 일찍 찾아왔다.
산후조리원 예약 날짜를 놓치는 바람에 집에서 산후 도우미를 불러 조리하기로 한 나는,
출산 사흘 만에 퇴원해서 집으로 왔다.
낮에는 엄마나 어머님이 와 계시고 도우미도 있어서 모유 수유 시간 외에는 내 몸 회복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문제는 밤이었다.
밤에는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과 나, 초보 엄마 아빠 둘이서 딸을 봐야 했다.
하루는 무난히 넘겼다.
'육아, 생각보다 별거 없네.' 하는 오만한 생각도 잠시.
집에 온 이틀째 되던 날, 딸이 밤새 울어댔다.
안아도 울고, 눕히면 당연히 더 울고...
동네 사람들 다 깨울 것 같아 차에 태워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다행이다 싶어 침대에 살포시 눕히면 또다시 으앙~~~
그날 밤, 동네를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푹 잠들 때까지 한참을 안고 있다가 눕혀도 등에 센서가 있는 것 마냥 바로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나중엔 나도 반쯤 넋이 나갔다.
그러다 "에라 모르겠다" 싶은 심정으로 그 작고 여린 아이를 '탁'하고 침대에 던지듯 내려놨다.
숨 넘어가듯 울어대는 아이 대신 내가 울고 싶었다.(아니... 솔직히 같이 울었다.)
보다 못한 남편이 말했다.
"장모님께 전화드려볼까?"
그렇게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친정에 전화를 걸었다.
"애가 뭐가 안 맞나 보다. 데리고 와 봐."
집에서 10분 거리에 친정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엄마는 방에 에어컨을 약하게 틀어놓으시고 행여 외손녀 모기라도 물릴까 봐 모기장까지 쳐 놓으셨다.
눕히면 또 울까 봐 조심조심 내려놓았는데... 놀랍게도 울지 않았다.
그렇게 혼자 누워 노는가 싶더니... 그냥 잔다... 헉...
엄마 말씀으로는 아무래도 더워서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남편이 어디서 듣고 와서는 산후조리 할 때 에어컨 바람은 좋지 않다며 구입을 미루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차에서는 약하게나마 에어컨을 틀고 있었으니 잠이 들었다가, 집에 들어가면 다시 온도와 습도가 맞지 않아 깨서 울고... 이게 무한반복이었던 거다.
그날 우리는 알았다.
우리 딸이 유난히 온. 습도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그 후로도 이유 없이 보챌 때 온. 습도계를 보면 어김없이 적정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그때 생긴 방안 온. 습도 체크 습관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다.(우리 집엔 무려18년 된 온. 습도계가 아직도 있다.^^)
여름이면 "덥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딸 때문에
우리 집 에어컨은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열일을 한다.
하지만 딸과 달리 나는 더위를 별로 타지 않는다.
오히려 추위에 민감하고 땀도 많지 않아 웬만한 더위는 선풍기나 에어컨 없이도 잘 견디는 편이다.
그래서 딸과 같이 자던 그 시절, 여름밤은 매일이 눈치싸움이었다.
에어컨 온도를 1도만 높여도 금세 깨서 반응하는 딸 때문에 나는 한여름에도 솜이불을 덮고 자야 했고,
맞춰놓은 타이머가 끝나면 기가 막히게 알아채는 딸 때문에 타이머를 껐다 켰다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한 침대 위에서도 우리는 완전히 다른 계절을 살고 있었다.
지금이야 각자 방에서 각자의 온도대로 잠을 자니 별 문제가 없지만
그 시절 우리는 같은 방, 같은 공기 속에 있으면서도 편안하다고 느끼는 '온도'가 달랐다.
생각해 보면 사람마다 제각각의 '온도'가 있다.
누군가는 서두르지 않아야 편하고,
누군가는 속도를 내야 마음이 놓인다.
누군가는 깊은 대화를 원하고,
누군가는 가벼운 안부 정도가 좋다.
누군가는 하루 계획이 미리 세워져 있어야 안정되고,
누군가는 그날의 기분과 상황에 맞춰 움직일 때 살아 있다고 느낀다.
누군가는 일에서 성취를 맛볼 때 가장 행복하고,
누군가는 관계 속에서 따뜻함을 느낄 때 만족한다.
누군가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변하지 않는 일상을 답답해한다.
코칭을 하다 보면,
이 '각자의 온도'를 인정하지 못해 관계가 서서히 식거나, 반대로 데이는 경우를 자주 본다.
좋은 관계는 내 온도를 고집하는 것도,
그렇다고 무조건 상대의 온도에 맞추는 것도 아니다.
서로의 온도를 '다름'으로 받아들이고,
그 차이를 조율할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결국 중요한 건 온도를 똑같이 맞추는 게 아니라, 서로의 온도를 알아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와 다른 온도 속에 사는 그 사람이 지금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는지,
그 계절에 어떤 공기와 빛, 그리고 바람이 스며 있는지.
그걸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다가갈 때,
우리는 같은 온도에서 만나지 않아도 충분히 따뜻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