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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내 글 써 줘잉~~

나의 첫 번째 독자(讀者)

by 커리어포유
엄마, 내 글 진짜 안 써?


학원에서 돌아온 딸이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날 보며 한마디 툭 던졌다.

"응... 진짜 쓸 게 없어."

"아... 진짜... 왜? 내 화요일 낙인데... 글 써줘. 내 글. 내 얘기 써 줘~~~"

장난 반, 애교 반, 억울함까지 뒤섞인 목소리에 웃음이 났다.

화요일마다 딸과의 에피소드를 올리고 있는데 매주 몰래 챙겨 읽고 있었나 보다.


이번 주는 유난히 글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을 아무리 뒤적여봐도 특별한 이야기가 없었다.

마침 두통까지 겹쳐 컨디션도 영 아니었고, '에이... 그냥 이번 한 주는 넘어가야겠다.' 하는 마음이 슬며시 올라왔다.


"딸... 오늘 니 글 써야 하는데... 쓸 거리가 없다. 사고 한번 칠래?"

학원 가는 딸에게 농담처럼 던졌는데 , 그래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가 무언가를 쓰지 않았을까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브런치에 새 글은 없고, 엄마는 소파에 앉아 TV만 보고 있으니...

기대가 무너진 자리에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몇 년 전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100일 동안 매일 한 편의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도무지 무슨 얘기를 써야 할지 막막했다.

"딸... 엄마가 이번에 100일 동안 글을 쓰기로 했는데 어떤 주제로 써야 될지 모르겠어."

그때 딸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엄마, 그냥 내 얘기를 써."

정말 그럴까?

그래... 한번 해보자...

그렇게 딸과 함께 하는 일상을 쓰기 시작했다.

딸과의 일상을 일기처럼 기록하고 마지막에는 소통 강사, 부모교육 강사로서의 경험을 살려 자녀와의 대화 팁도 덧붙여보기로 마음먹고 매일매일 글을 써 내려갔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단 일주일 만에 소재는 바닥났고, 표현에도 한계가 왔다.

일상을 애써 정보글로 포장하려니 글이 더 이상 흘러가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딸에 대한 글이 줄어들었다,

그러자 딸은 어제처럼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엄마, 요즘은 왜 <with OO - 당시 딸과의 일상을 공유하던 글 카테고리 제목> 안 적어?

그게 제일 재밌는데..."

그래서 처음 계획을 수정했다.

대화 팁은 내려놓고 평범한 일상이라도 솔직하게 남겨보기로.

또 하나, 감사일기를 쓰면서 딸에게 감사한 순간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 덕분에 내 감사일기에는 거의 매일 딸이 등장했다.

"엄마, 오늘 일기 썼어?"

딸은 매일 밤 엄마의 감사일기를 기대하며, 옆에서 슬쩍 훔쳐보기를 즐기던 아이였다.

자신의 얘기를 글로 쓰라던 딸은

"오늘은 왜 내 얘기가 없어?"

"엄마, 오늘 이랬어? 우와... 저랬어?"라며 엄마의 하루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 블로그를 가장 먼저 읽고 반응해 주던 사람.

나의 첫 번째 독자는 다름 아닌 딸이었다.




결국 나는 어제 글을 쓰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하지만 딸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내 화요일의 낙인데... 내 얘기 써줘'

협박 같은 부탁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달콤한 응원이기도 했다.

결국 그 말이 나를 다시 노트북 앞에 앉게 했다.

그래서 이렇게 하루 늦었지만 <코치와 엄마 사이> 새 연재글을 쓰고 있다.


딸이 나의 첫 번째 독자라면,

브런치에서 내 글을 읽어주는 분들은 내가 '다음 글'을 계속 써 나갈 수 있도록 조용히 등을 밀어주는 분들이다.


20년 넘게 "말"을 업으로 삼다 보니 "말"이 주는 책임감에 대해서 늘 생각한다.

무심코 내뱉는 나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요즘은 "글"이 주는 책임감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한다.

말은 흩어지지만, 글은 흔적으로 남는다.

그래서 책임의 유효기간은 더 길 수밖에 없다.


내 책을 서점에서 만나는 기적에 아주 더디지만 그래도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는 요즘...

나의 글을 읽어주는 브런치 독자들이 큰 힘이 된다.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훗날 내 책을 읽어 줄 고마운 독자들을 위해,

한 문장을 쓰더라도 조금 더 진실되게, 조금 더 정성스럽게, 조금 더 책임감 있게 글을 써보자 다짐한다.


글은 독자를 만날 때 비로소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바로 내 옆에 있다는 건,

그 어떤 원고료보다도 값진 응원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내 글을 읽고 미소 지어 줄 한 사람을 떠올리며 글을 쓴다.


나의 첫 번째 독자,

나의 글을 기다려주는 사랑스러운 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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