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4화. 손톱달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

by 커리어포유
엄마, 저기 봐봐.
구름 진짜 예쁘지 않아?
완전 솜사탕 같아...


여름휴가를 위해 지리산으로 향하던 고속도로 위.

뒷좌석 아이들이 조용하길래 둘 다 잠든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딸이 앞 좌석 사이로 얼굴을 쏙 내밀더니 하늘을 가리켰다.

딸 손 끝을 따라 올려다봤더니 맑고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떠 있었다.

몽글몽글한 구름 모습에 솜사탕이라는 표현이 딱이었다.

"그러게, 예쁘네..."

딸은 휴대폰 카메라로 연신 하늘을 찍었다.

"진짜 이쁘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혼잣말.

그 말속엔 감탄이 있었고,

그 감탄 속엔 감정이,

그리고 그 감정 속엔 이 아이만의 시선이 담겨 있었다.


딸은 어릴 때부터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던 아이였다.

세 살 무렵,

할머니 손을 잡고 동네 마트에 가던 길.

걷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구름을 따라가듯 하늘을 쳐다보다가

그만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고 한다.

"ㅇㅇ이가 구름 쳐다본다고 고개를 이~렇게 젖히다가 그대로 뒤로 자빠졌다 아이가.

아는 놀래가 우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웃기든지..."

어머니는 요즘도 가끔 그때 얘기를 꺼내며 웃으신다.


유치원 시절,

저녁을 먹고 산책 겸 동네 한 바퀴를 걷던 날도 생각난다.

"엄마, 손톱달이야."

그때 하늘엔 초승달이 떠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엔 빗방울이 춤춘다고 말하던 아이.

햇살이 눈부신 날엔 태양이 유리창에 뽀뽀한다고 표현하던 아이.


그렇다.

딸은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였다.

세상의 모든 것에 자기만의 언어를 붙이고,

느낌을 얹고,

작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아이.


그런데 나는 어느새 그걸 잊고 있었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저 '성적을 관리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때로 보이는 게으름만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제발 정신 차리고 공부 좀 해."

"지금이 그런 생각할 때야?"

"현실을 좀 봐."

나도 모르게 뾰족한 말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문득,

구름을 보며 마냥 들뜬 딸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 너는 그런 아이였지.

하늘을 올려다볼 줄 알고,

지나가는 풍경에도 감정을 실을 줄 아는 아이.'


어른이 되면 잊게 되는 것들이 있다.

하늘을 천천히 올려다보는 습관,

눈앞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

그리고 그 순간에 멈춰서 조용히 감탄할 수 있는 여유.


나는 언제부터 그걸 잊고 있었을까.


해야 할 일, 가야 할 곳, 끝내야 할 생각들.
머릿속은 늘 '다음'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나는 그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지금, 여기'를 자꾸 놓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달리는 차 안에서도 하늘을 본다.
구름의 모양에 감탄하고,
솜사탕 같다는 표현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저 고개만 돌려 하늘을 봤을 뿐인데,

딸의 한마디가

내 삶의 속도를 잠시 멈추게 했다.


딸을 보며 깨달았다.

세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커다란 사건이나 눈부신 순간이 아니라,

누군가는 그냥 지나칠 장면 앞에서

마음이 움직이는 바로 그 '감각'이라는 걸.

그리고 그 감각은

내 안에도 분명 있었다는 걸.

딸이 가리킨 하늘을 함께 바라본 그 순간,

잊고 지낸 나의 감수성이 조금은 되살아난 것 같다.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