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하는 마음'을 응원하다
엄마, 식초를 물에 타서 마시면... 홍초랑 맛이 비슷하지 않을까?
풋사과맛 홍초를 탄산수에 타는 날 보며 딸이 물었다.
처음엔 그냥 장난이겠거니 하고 웃어넘겼다.
그런데 딸의 눈빛이 진지했다.
"사과식초니까 비슷할 것 같지 않아?"
질문을 툭 던져놓고는 내 눈치를 살피는 눈,
머릿속 어딘가에서 연결고리를 붙잡은 듯한 그 표정은
호기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 신호였다.
"쓸데없이..."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을 꾹 삼켰다.
직접 해 봐야 안 되는 걸 알겠지.
어떻게 하나 보려고 그냥 놔뒀다.
딸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컵에 물을 붓고 식초를 조금 따라 섞더니 젓가락으로 휘휘 젓는다.
"제가 한 번 마셔보겠습니다."
조심스레 입을 갖다 대는 딸...
순간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단 맛이 없긴 한데 그래도 비슷한 맛이 나긴 해."
'그럴 리가...'
"레몬즙을 좀 타볼까?"
'그럼 그렇지...'
무슨 대단한 연구개발이라도 하는 양, 예리한 눈빛으로 계량을 하곤 다시 맛을 보는 딸...
"설탕을 넣어야 하나?"
'그만 좀 하지...'
계속 쳐다보고 있다간 결국 잔소리 폭탄을 터뜨릴 것 같아 방으로 들어왔다.
딸은 그 뒤로도 한참을 혼자 중얼거리며 뭔가를 계속 시도했다.
정체불명의 음료는 그 후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억지로 다 마셨는지,
아님 몰래 살짝 버렸는지
식탁 위엔 빈 컵만 남아 있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시간 낭비야."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우리는 너무 쉽게,
누군가의 시도와 실험을 '효율'이라는 잣대로 재단한다.
나도 다르지 않다.
그날도 그런 말들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기특하게도 꾹 참았다.
코치인 나는 잘 안다.
모든 탐색은 비효율에서 시작된다는 걸.
정답이 아닌 방향으로도 가봐야
비로소 자기가 찾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걸.
스스로 해보며 깨닫는 경험이
무엇보다 강력한 배움이 된다는 걸.
나는 그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실패해도 괜찮고,
쓸모없어 보여도 괜찮고,
결국은 자기 손으로 해보는 것.
그게 중요하다는 걸
말 대신 태도로 전하고 싶었다.
코칭의 본질은 '믿고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라는 이름의 나는
너무 자주 '재촉하고 단정 짓는 사람'이 된다.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시도를 막고,
사랑이라는 핑계로 방향을 틀어버린다.
그러곤 말한다.
"너를 믿는다"라고.
하지만 믿음은 말이 아니라 태도에서 드러난다.
그날 나는
아이가 뭘 하든
그 과정을 온전히 해보도록 두었다.
그리고 그게 생각보다 훨씬 벅찬 일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다.
딸은 결국 홍초를 만들어내진 못했지만
자기 호기심을 따라가 보는 방법을 스스로 학습했다.
그리고 나는 엄마로서의 믿음을 조용히 훈련하고 있었다.
아이는 아직도 자라나는 중이고,
엄마인 나도 여전히 흔들리며 자라는 중이다.
그래도 그날,
결과보다 과정을 응원한 하루였다.
혹시 당신도, 누군가의 엉뚱한 시도를 '쓸데없다'라고 속단한 적은 없는가?
그 실험이 실패로 끝나더라도,
그 안에 담긴 '궁금해하는 마음'을 응원해 준 적이 있는가?
어쩌면 진짜 믿음이란,
'잘하라'는 말보다
'해봐도 괜찮아'라는 허락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