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고 사랑이 많은 아이
엄마 브런치 글 읽는 사람들한테 내 이미지 어쩔 건데?
브런치에 딸, 아들과의 일상을 남기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동생은 사랑스럽게, 자신은 말 안 듣고 철없는 캐릭터로 묘사되는 게 맘에 안 든단다.
"그렇다고 내가 없는 얘기를 지어서 쓰지는 않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ㅇㅇ이는 세상 다정한 아들이고 난 세상 나쁜 딸 같잖아."
말끝을 흐리며 억울해하는 표정이 어찌나 귀엽던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하지만 어쩌겠어.
브런치북 설정이 그런 걸...ㅋㅋㅋ
그래도 오늘은 내가 큰맘 먹고 네가 얼마나 다정하고 사랑이 많은 아이인지 브런치 독자들에게도 알려주마.
얼마 전 아들 학교 공개수업에서 잠깐 정신을 잃을 정도로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던 날...
혼자 집에 누워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보려고 애쓰고 있을 때,
학교를 마치고 딸이 돌아왔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날 보며 놀란 딸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왜 아파? 119 부를까? 아님 아빠한테 전화할까?"
딸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 배어 있었다.
내가 아픈 걸 보면서도 뭘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딸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든든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이상하게도
그 순간 딸에게 엄살을 부리기 시작했다.
"엄마, 숨이 잘 안 쉬어져. 엄마 너무 힘들어. 나 너무 아파."
마치 엄마에게 어리광 부리는 아이처럼
딸에게 힘들다고, 아프다고 징징거리듯 말해버렸다.
그런데 신기하리만큼, 그러고 나니까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만 하는 고통처럼 느껴졌던 그 시간이
딸에게 한마디 툭 내뱉은 순간
덜 외롭고, 덜 무섭고,
조금은 괜찮아졌다.
그리고 다음 날.
병원을 갔다 집에 막 들어서는데 톡 알림이 울렸다.
학교에 있는 딸이었다.
학교에서는 휴대폰 사용이 금지되어 있지만,
수업 중 사용하는 태블릿으로 가끔 급한 일이 있을 때 톡을 보내곤 한다.
또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확인한 문자엔
딱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병원 갔어?"
그 문자를 보는 순간, 괜히 울컥했다.
그 말 안에,
'오늘은 좀 나아졌어?'
'어제 진짜 많이 아파 보여서 걱정됐어.'
'빨리 나아.'
수없이 많은 마음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저 한 줄이었지만,
그 짧은 문장이 내 마음 깊은 곳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 한 줄이
그날 받은 어떤 약보다도 더 큰 위로였다.
그렇다.
딸은 어릴 적부터 따뜻하고 사랑이 많은 아이였다.
딸이 초등학교 3,4학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도 아파서 종일 먹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엄마, 일어나서 이것 좀 먹어봐."
접시 위에는
손으로 한 알 한 알 껍질을 곱게 벗기고,
씨까지 다 발라낸 포도 알맹이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포도 몇 알을 먹고 정말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단순한 과일이 아니었다.
그건 딸의 손길이 닿은 작고 다정한 응급처치였다.
(딸과 아들은 다섯 살 터울이다)
아들이 두 돌쯤 지났을 무렵
자꾸만 블록통 위에 올라가 놀곤 했다.
그날도 또다시 그 위에 올라서려는 아들에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넘어지면 다쳐. 내려와.”
하지만 아들은 들은 체도 않고 다시 블록통에 올라섰다.
그리곤 순간 중심을 잃고 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부터 질렀다.
"그럴 줄 알았어! 그러니까 엄마가 뭐랬어! 올라가지 말라는데 왜 말을 안 들어!"
그런데 나와 동시에
옆에서 놀고 있던 딸은 동생에게 다가가 말했다.
“괜찮아? 안 다쳤어?”
나는 그때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혹시나 아들이 다치진 않았는지 살펴보기보다
왜 내 말을 안 들었냐는 화부터 낸 나.
그런 나와는 달리 동생의 안위를 먼저 걱정했던 딸.
그게 우리 딸이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사람이 아플 때 제일 먼저 걱정해 주고
진심을 건네는 아이.
말보다 마음이 먼저 도착하는 아이.
그 마음이 지금도 변함없이 자라고 있음을
미처 몰라줬던 게 그저 미안할 뿐이다.
딸...
이 정도면 어떻게 이미지 회복 좀 됐을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