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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이게 방이야? 돼지우리야?

모전여전

by 커리어포유
IC... 진짜...

딸아이 옷장 문을 연 순간, 옷더미가 우르르 쏟아졌다.
양팔은 순식간에 점령당했고, 발등 위엔 돌돌 말린 청바지 하나가 굴러 떨어졌다.

건조가 끝난 양말을 넣어주려 했을 뿐인데 난데없이 공격당한 기분.

그 순간 쏟아진 건 옷만이 아니었다.
한숨, 분노, 피로감...
내 안에 켜켜이 쌓여 있던 감정들도 덩달아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정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렇게 쏟아지나 싶어 옷더미를 밟고 멍하니 서 있었다.

순간 다시 정리를 할까 했지만
그 마음은 옷보다 먼저 흐트러졌다.

이 꼴을 집에 와서 직접 보라고 그대로 놔두기로 했다.

이걸 보고도 아무렇지 않다면 그건 진짜 심각한 거라고.

아이 스스로 느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그냥 귀찮았던 거다.

그렇게 돌아서려는 순간, 방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책상 위엔 뚜껑도 채 닫히지 않은 화장품들이 널브러져 있고, 그 옆엔 비닐 포장도 뜯지 않은 간식 봉지가 나뒹굴고 있었다.

침대 위엔 벗어놓은 잠옷과 인형들이 뒤엉켜있고 바닥엔 벗어놓은 양말이 돌돌 말려있었다.

책가방에서 쏟아진 책들이 삐져나와 흩어져있고 휴지통은 가득 차 뚜껑이 반쯤 열려있었다.

"아... 진짜 이게 방이야? 돼지우리야?"

숨이 한번 크게 들이켜졌다.

내 안에서 잔소리 생성 시스템이 삐-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한 느낌.

그 감정을 꾹 눌러두고 나는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다.

그리고 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을 기다렸다.

"야... 너 방 꼴이 저게 뭐야?"

"아... 나 약속 늦어서 급하게 나가느라... 집에 와서 치우려고 했는데..."

"치우긴 뭘 치워... 맨날 말만... 내가 옷장 정리해 준 게 얼마나 됐다고 저 모양인데?

그리고 왜 맨날 양말은 벗어서 저렇게 쌓아두고 있는 건데... 빨래통에 갖다 넣으면 어디가 덧나?

휴지통이 찼으면 비워야 할 거 아냐?

그리고 먹지도 않는 군것질거리들은 왜 쌓아두고 있는 건데...

이러니 책상에 책 한 권 놓을 공간이 없지... 이런 데서 무슨 공부를 한다고.. 에휴..."

"치울 거야..."

딸은 슬금슬금 방으로 들어가 인형을 침대구석에 밀어 넣고,

화장품을 한쪽으로 쓸어 모으고,

책가방에서 흘러나온 책을 대충 책상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이런 방에서 집중이 되겠냐고...

공부든 뭐든 엉망인 공간에선 아무것도 안 돼.

제발 정리 좀 하고 살아.

니 방 보면 니 성격도 다 보여.

치우는 것도 습관이야.

그렇게 게을러서 어떡해?

너 이거 다 제대로 싹 치우기 전까지 방에서 나오지 마."

으름장을 놓고 방문을 쾅 닫고 나와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시야에 들어온 건... 내 방 화장대였다.

... 아...
거기도 똑같았다.

파우더가 묻은 퍼프, 쓰다만 샘플 파우치, 다 쓴 지 한참 된 에센스 빈 통, 머리카락이 뒤엉켜있는 빗, 어느 날 주머니에 넣었다 꺼낸 영수증, 화장솜으로 가득 찬 휴지통까지...

딸아이에게 던졌던 말들이 순식간에 U턴해서 내 안으로 되돌아왔다.

“정리 좀 하고 살아.”
“네 방 보면 네 성격이 다 보여.”
“치우는 것도 습관이야.”

모.전.여.전.

아, 진짜 이 말만큼 정확한 표현도 없겠다.

사실 나도 안다.

안 치운 게 아니라,

그저 미룬 것뿐이라는 거...

그냥 내일 하자 하고 미뤄둔 게 이틀, 일주일, 한 달이 되기도 한다는 걸....

우리는 서로를 닮았다.
그리고 그 사실이 그렇게 민망할 수가 없었다.

딸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마음이었을까.

딸이 방을 치우는 사이 서둘러 나도 화장대를 정리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그 아이를 핑계로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일이다.
그저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통해 나의 민낯과 마주하고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되묻게 되는 여정이다.

그래서 잔소리 대신 먼저 나부터 바꿔보는 것.
그게 내가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단단하고도 따뜻한 교육일지도 모르겠다.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을 먼저 내 안에서 실천해 보는 일.
완벽하지 않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그 불완전함 속에서 함께 배우고 함께 성장해 가는 일.

그 길 위에 서 있는 '엄마'는 오늘, 한없이 겸손해진다.


아이라는 거울 앞에서

나는 오늘도 조금씩 다듬어지고 조금씩 자라고 있다.

그렇게 나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배우고 삶을 다시 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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