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엄마의 응원
엄마가 하면 '말' 같은데, 왜 내가 하면 '소' 같아?
딸이 수행평가 발표 연습을 하다 말고 툭 던진 말이다.
엥? 이게 뭔 소리여?
"소 같다"는 황당한 표현을 듣고 웃음부터 터졌지만,
그 말 속엔, 엄마의 ‘잘남’이 때로는 얼마나 큰 부담이 되는지에 대한 솔직한 속마음이 숨어 있었다.
말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엄마.
수없이 많은 무대에 서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일이 일상인 엄마.
그런 엄마 앞에서, 딸은 자신의 말이 한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언젠가는 이렇게도 물었다.
"엄마는 강의하거나 행사 사회 볼 때 하나도 안 떨리지?
난 마이크 잡으면 엄청 떨리는데..."
"엄마는 당연히 하나~도 안 떨리지..."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딸아... 무대 앞에선 누구나 긴장을 한단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자각한 아이의 작아진 마음,
엄마 옆에 서면 유난히 또렷하게 드러나는 '나는 왜 안 되지?'라는 물음표.
그 말이 “소 같다”는 재밌는 표현 속에 녹아 있었다.
엄마의 ‘자신감’이 부럽고,
엄마의 ‘능숙함’이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그게 때론 너무 커서 그 옆에 선 자신은 작아진다는 말이었다.
딸은 무대를 좋아하는 아이다.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즐기고, 사람들 시선을 받으며 반짝이고 싶어 하는 아이다.
(꼭 어릴 때 나를 보는 것 같다. 이래서 피는 못 속인다고 하나보다.)
초, 중학교에선 전교회장을 맡으며 교내 방송이나 행사 진행도 곧잘 하며 제법 존재감이 있었다.
(아, 맞다. 초등학교 때는 공중파 방송에도 두 번이나 출연했다.)
그런데 그렇게 무대를 즐기는 아이도
‘잘하고 싶은' 순간, 긴장에 사로잡힌다.
자기만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을 스스로 넘고 싶어 하는 아이.
그래서일까.
무대에 서는 경험이 늘수록 기대보다 걱정이 먼저 밀려오는 듯했다.
딸의 중학교 졸업식 때
딸은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딸 덕분에(?) 때문에(!) 학부모회장이었던 난 학부모 대표로 축사를 맡았다.
"엄마 뒤에 내가 말하면 비교되잖아..."
졸업식 며칠 전 툭 내뱉던 딸의 말...
그 투덜거림 속엔 진심이 숨어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잘하고 싶은 날'이었을 테니...
주인공이어야 할 자신보다 엄마에게 더 많은 시선이 쏠릴까 봐 내심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딸은 종종 학교 발표 시간에 내 얘기를 한다고 했다.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바로 '엄마'라고...
미디어 분야를 전공하고 싶다는 딸아이의 말엔
내가 살아온 길을 존중하고, 닮고 싶어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하지만 어쩌면 딸에게 나의 존재는 자랑이자 동시에 부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를 향한 동경과 아직은 서툰 자신에 대한 아쉬움 사이에서 종종 던지던
'엄마는 잘하니까 그렇지...'라는 한 문장이
날 향한 칭찬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는 도구처럼 작동했음을 이제야 안다.
무대를 좋아하지만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아이.
주목받는 걸 좋아하면서도 시선의 무게가 아직은 버거운 아이.
잘하고 싶은 만큼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자신이 초라했을 아이.
그런 딸 옆에서
나는 너무 쉽게 조언했고,
너무 자주 가르치려 들었고,
너무 빨리 결론을 내려주곤 했다.
딸아...
엄마는 지금 네가 잘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큰지 알아.
그래서 더 긴장하고, 더 조심스러워지는 것도 알아.
지금 네가 느끼는 떨림...
엄마도 예전에 똑같이 느꼈던 거야.
누구보다 잘하고 싶고, 그럴수록 내가 더 작아지는 기분...
그 감정을 엄마도 누구보다 잘 알아.
그런데 말이야.
지금의 넌 실수해도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최선을 다 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엄마는 네가 가슴 뛰는 일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그러니 남들 눈치 보지 말고,
틀릴까 봐 주저하지도 말고,
조금 서툴러도,
길이 멀어 보여도,
가슴이 움직이는 쪽으로 걸어가렴.
엄마는 알아.
그 길 끝엔 결국 네가 가장 빛나는 모습으로 서 있을 거라는 걸...
그러니까 오늘은, 그 마음 하나만 믿고 한번 해보자.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니까.
방에서 수행평가를 준비하는 딸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그런데 아무리 참으려 해도 자꾸만 신경 쓰여 또 한마디 거들고 만다.
"거기선 말의 속도를 좀 더 천천히 해봐."
"말의 강약을 살려야지... 너무 단조롭잖아."
"핵심 메시지가 명확해야지. 뭘 얘기하고 싶은 건지 도통 모르겠어."
아... 그게 그렇게 안 되나?
야... 제발 '말' 같이 좀 하라고.
'소' 같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