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해 줄 거면서... 왜 그렇게까지 화를 냈을까?
“엄마, 타코야키 먹고 싶어.”
며칠 전 딸이 학원 가기 전, 용돈으로 타코야키를 시켜 먹겠다고 했다.
밥을 먹고 갔음 싶었지만 뭐 자기 용돈으로 시켜 먹겠다는데 어쩌겠는가.
먹고 싶다니... 시켜 먹으라고 했다.(근데 나중에 알았지만 결국 자기 용돈이 아니라 아빠찬스를 썼더라.)
타코야키가 도착했고, 딸은 비빔면까지 끓여서 야무지게 저녁 한 끼를 해결했다.
어느 정도 배가 불렀는지 타코야키는 몇 개 남겨둔 채 그대로 식탁의자에서 몸만 쏙 빠져나와 방으로 들어가는 딸...
"먹었으면 좀 치워."
"가기 전에 타코야키 2개 더 먹을 거야."
‘더 먹을 땐 먹더라도 먹은 건 치워야 할 거 아냐.
비빔면 봉지도 그대로고 그릇도 그대로고...식탁도 엉망이구만.
먹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어?'
라는 말이 또다시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오려는 걸 일단 눌렀다.
사실 오전부터 비가 내린 탓인지 하루 종일 몸이 무거워 잔소리할 기운도 없었다.
학원 갈 시간까지 20분도 채 남지 않았으니 식탁을 치우고 갈 거란 기대 따윈 버린 지 오래다.
그냥 딸 학원 가고 나면 일어나서 치워야겠다 생각하고 잠시 침대에 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딸 방에선 학원 가기 5분 전을 알리는 알람 소리가 들렸고(이 알람소리가 날 때 나가야 학원 차를 놓치지 않는다.) 결국 2개 더 먹겠다던 타코야키는 못 먹고 가겠구나 싶었다.
알아서 챙겨서 가겠거니 하고 누운 그대로 잠시 눈을 감았다.
현관문 닫히는 소리는 한참 후에나 들렸고 10분만 더 누워있다 일어나야겠다 생각하며 반대쪽으로 돌아누웠다.
그. 런. 데.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우산도 없고 학원 차도 없어."
"우산을 왜 안 갖고 가? 오늘 계속 비 왔는데..."
"나는 조금밖에 안 오는 줄 알았지. 근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밖에 나가보지도 못하겠는데 학원차가 안 보여. 지나간 것 같아."
"그래서 어쩌라고?"
우산이 있으면 걸어서라도 갈 텐데 우산도 없단다. (차로 가면 10분이 채 안 걸리지만 걸어서 가려면 족히 20분은 넘게 걸리는 거리다.)
"그럼 올라와서 우산 갖고 걸어가."
"......"
"너 진짜 맘에 안 들어. 주차장으로 와!"
결국 겨우 몸을 일으켜 옷을 갈아입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너는 비가 오면 미리 우산을 챙겨야 할 거 아냐.
그리고 학원 갈 시간이 되면 알아서 내려가야지 뭐 하다 차를 놓쳐?"
"엘리베이터가 늦게 왔어."
"엘리베이터가 너만 기다리고 있어? 몇 분만 더 일찍 나가면 될걸...
"......"
"지금 딱 차 막히는 시간인데... 비까지 와서 집에 돌아오는 길 엉망일 텐데..."
"......"
"안 그래도 몸도 안 좋은데..."
"......."
와이퍼가 빗물을 휘저으며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내 화도 함께 왔다 갔다 했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고, 차창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들이 마치 내 짜증을 따라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조수석에 앉은 딸은 말이 없었다.
휴대전화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더 얄미웠다.
"아... 진짜 너 맘에 안 들어. 그냥 미리 준비하고 있다 시간 맞춰 가면 될 것을 꼭 사람 피곤하게..."
"......."
입안에서 화가 끓어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머리가 아팠다.
몸도 무거웠고, 잔소리할 힘도 없었지만, 그 순간 딸에게 퍼붓지라도 않으면 그 화를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학원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딸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빨리 내려.”
딸이 사라지고, 혼자 차에 남았다.
순간 온몸에 힘이 빠졌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와이퍼가 빗물을 지워내듯,
내 속에서 끓어오른 감정도 지워낼 수 있었다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했다.
딸을 향한 잔소리 속엔 ‘네가 더 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보다,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외침이 더 컸던 걸까.
'어차피 해줄 거면서... 왜 그렇게까지 화를 냈을까?'
'어차피 해줄 거면서... 그냥 기분 좋게 해 줄걸.'
그래...
앞으로는 안 해줄 거면 몰라도 해줄 거면 그냥 기분 좋게 생색이라도 내면서 해줘야지...
그. 런. 데.
방금 또 학원차를 놓쳤다고 전화가 왔다.
"야!!! 너는 진짜...... 그냥 걸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