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인내심은 한계초과
1학기 중간고사가 시작됐다.
딸의 시험과 동시에 나의 인내심도 시험에 들었다.
시험기간 동안만큼이라도
잔소리 대신, 믿음으로 버텨보자.
스스로 다짐 중이다.
말이야 쉽지...
시험공부를 하면서 딸은 스터디 카페를 고집했다.
집에서는 집중이 안 된다나.
하긴 니 방 꼴(꼬락서니라고 하고 싶었으나 난 교양 있는 엄마니까 언어순화했음)을 보아하니
집중이 안 되기도 하겠다... 에휴...
차라리 내 눈에 안 보이는 게 낫겠다 싶어 그러라고 했다.
그런데 스터디 카페를 갈 때마다 준비만 한 시간이다.
공부하러 간다면서 뭘 그리 꽃단장을 하는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수도 없이 쏟아내고 싶은 말들이 맴돌았다.
"나 같으면 귀찮아서라도 그냥 가겠다.
공부하러 간다면서 도대체 화장은 왜 하는 건데?"
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나는 꾹 삼켰다.
"야, 그 시간에 문제라도 하나 더 풀겠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왔지만 꾹꾹 누른 나 칭찬해.
걸어서 오가려면 4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라서 데려다주겠다고 해도 한사코 괜찮단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날은 걱정도 돼서 데리러 갈 테니 미리 연락하라고 해도 그냥 문을 열고 들어온다.
내가 낳았지만 참 이해할 수 없는 종족이다.
그런데 어제는 또 스터디 카페 가는 게 귀찮았는지 그냥 집에서 공부를 하겠단다.
니 마음대로 하세요...
시험기간만 되면 먹고 싶은 게 부쩍 많아지는 딸...
어제는 간장 베이스에 약간 매콤한 찜닭이 먹고 싶다나 뭐라나?
마침 저녁 준비도 귀찮던 참이라, 찜닭을 시켜줬다.
혼자 먼저 조금 일찍 먹고는 공부하겠다고 방으로 들어간 딸.
'그래도 내일부터 시험인데 오늘은 집에서라도 좀 하겠지.'
믿어보기로 했다.
물론, 불신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애써 눌렀다.
"믿자. 오늘은 좀 하겠지."
인기척 하나 없는 방...
몇 번이고 문을 벌컥 열어 확인하고 싶었지만
'양심이 있으면 오늘은 공부 좀 하겠지' 싶어 참고 또 참았다.
한참 뒤, 가족들 모두 저녁을 먹고 뒷정리까지 끝낸 뒤 과일 한 접시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잠깐 나와서 먹으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공부를 하고 있는지 슬쩍 확인하고 싶었다.
그. 런. 데...
문을 열자 딸이 화들짝 놀랐다.
큰 별쌤은 화면 속에서 열변을 토하고 계시는데 딸은 그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럼 그렇지...
"야! 지금 잠이 오냐? 내일이 시험인데...
동영상 강의는 틀어놓기만 하면 공부가 절로 되는 거야?"
라고 또다시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다시 한번 꾹 눌러 삼켰다.
"잠 오면 세수라도 해."
조금 뒤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온 딸...
머쓱했는지 웃는다.
"내일 브런치에 지금 이 얘기 써야겠다."
그랬더니 딸이,
"내가 엄마 글 쓰라고 일부러 잔 거야." 란다.
으이구, 말이라도 못 하면...
스터디카페 다니면서 공부를 하긴 한 건지, 어느 정도나 준비가 됐는지 물었더니
남은 일정동안의 공부계획을 술술 읊기 시작했다.
"일단 내일은 한국사 한 과목만 치니까 오늘 밤에 좀 보고, 내일 1·2교시 자습시간에 마저 보면 될 것 같고... 내일 학교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영어 공부를 하다가 저녁 먹고부터는 어쩌고... 저쩌고... 그리고 나면 시험 끝...!!!"
"딸, 넌 다 계획이 있구나!"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었더니, 딸도 따라 웃는다.
"오~ 완벽해! 그대로만 하면 전교 1등 하겠다!"
오늘 아침...
피곤한 얼굴로 간신히 눈을 뜬 딸.
오늘은 특히 자신 없어하는 한국사 시험이 있는 날이다.
"어젯밤에 좀 봤어?"
조심스레 물었다.
"응... 한 번은 더 보고 잤어. 근데 잘 모르겠어."
"그럼 오늘 자습시간에 첨부터 끝까지 다 보려고 하지 말고 한 부분만 딱 찍어서 공부해. 거기서 시험문제가 많이 나오면 대박이고 아니면 망하는 거고...."
딸이 피식 웃었다.
그래도 긴장이 조금은 풀린 것 같아 다행이다.
축 처진 어깨로 나가는 딸 뒷모습을 보며 또 한 번 다짐했다.
'완벽한 믿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믿어볼게. 시험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지금쯤이면, 넌 시험지를 받아 들었겠지?
제발... 봤던 데서 많이 나와라...
시험 끝나고 친구들이랑 밥만 먹고 오겠다는 딸...
나는 또 믿었다. 아니, 믿어보려 애썼다.
그런데 학교는 12시 20분에 마쳤는데 3시가 넘도록 오질 않는다.
결국 참다 참다 전화를 했더니 이제 막 집 엘리베이터를 탔단다.
'아... 1분만 더 참을걸...'
근데 천하태평 들어오는 딸을 보며 나의 얇디얇은 인내심이 깨졌다.
"야, 지금 몇 시야?
밥만 먹고 바로 와서 공부한다며?
다음날 시험 치는 거라도 공부를 해야 될 거 아냐?
진짜 어떡하려고 그래?"
참아왔던 말들이 쏟아졌다.
"좀 이따 스카 갈 거야."
"스카만 가면 뭐 해? 공부를 해야지 공부를..."
오늘도 나는,
엄마와 코치 사이 어딘가에서 휘청휘청 흔들리다
결국 또 버럭 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