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화. 친구 같은 엄마는 개뿔

코치도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는 흔들립니다

by 커리어포유

“다녀왔습니다.”

현관문이 열리고, 딸이 들어섰다.
예상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친구와 통화 중이다.

“밥 먹을 거야?”

“으으응~~”

먹는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대답 같지도 않은 대답을 남기고 딸은 그야말로 ‘스치듯’ 내 시야를 지나 방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닫힌 딸아이의 방문은 밤 11시가 넘도록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문틈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웃음소리.

통화 중이다. 여전히. 계속. 아주 신나게.
시험은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전화 끊고 공부해.”
혹시나 전화기 너머 딸의 친구에게까지 내 잔소리가 생중계될까 봐
입 모양으로만 조심스레 말했다. (난 교양 있는 엄마니까...)

딸은 대답도 없이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올렸다.

'오케이'란다.


그로부터 30분이 지났다.
방 안의 웃음소리는 여전히 활기찼고, 공부의 기척은 1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엔 문을 살짝 열고 고개만 쏙 내밀었다.

“전화 끊고 공부 좀 하라고!”

여전히 교양 있는 엄마인 척 목소리에 짜증을 실리게 하고 싶지 않아 톤을 살짝 눌렀다.

"넹~"

음표가 붙은 듯 경쾌한 말투...

'알았으니 그만해'로 들린다.


그러고도 다시 30분이 흘렀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딸아이 방문에 귀를 살짝 갖다 대본다.

그런데... 역시나... 아직도 통화 중이다.

"전화 끊으라고!"

순간, 방 안의 웃음은 사라졌다.

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나도 그 시선을 똑바로 마주쳤다.

그렇게 몇 초 간의 시간이 흐른 뒤 딸은 슬그머니 이어폰을 뺐고 나는 그대로 돌아서 나왔다.




나는 딸에게 좋은 엄마이고 싶었다.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는 감정코치가 되고 싶었고, 친구 같은 엄마이고 싶었다.
하지만 딸 앞에서 나는 늘 감정적으로 흔들리고, 결국 '버럭'이라는 방식으로 감정을 쏟아낸다.

코칭 대화니 뭐니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정작 가장 가까운 내 아이에게는 말보다 감정이 먼저 터지고,

질문보단 명령이 먼저 나오는 걸...

하지만 그게 아이를 위한 것이라 믿으며 내 정당성을 굳게 붙들게 된다.


사실, 딸에게 이렇게까지 “공부 좀 해라”는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딸에게만큼은 따뜻한 코칭 대화를 시전 하며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조언보다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그런 엄마이고 싶었다.

하지만 딸이 고등학생이 되고부터 부쩍 잔소리가 늘었다.

‘왜 저렇게 안일하지?’
‘지금 다들 공부하느라 난리일 텐데...’
‘시험이 코앞인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

그리고
‘날 무시하나?’
이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기 시작했다.

딸이 공부 안 하는 게 문제였다기보다, 내가 딸에게 통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진 것...
그게 더 아팠다.
내 말은 벽처럼 튕겨 나오고, 나는 점점 소리의 크기로 사랑을 증명하려 들었다.




나는 코치다.
감정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고, “말보다 마음을 먼저 들어야 해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내 아이 앞에선, 그 말이 자꾸만 거꾸로 나간다.


만약 그 순간,
내가 엄마가 아닌 코치로서 딸을 대했다면
분명 이렇게 물었어야 했다.

요즘 공부 말고 뭐가 제일 신경 쓰여?

친구랑 얘기하고 있을 때가 제일 마음 편한 거야?

혹시 시험 얘기만 꺼내도 괜히 부담스럽고 숨 막히고 그러니?

그리고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엄마는 네가 지금 무얼 느끼는지, 하루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지나고 있는지가 정말 궁금해.

난 사실 걱정이 돼. 네가 나중에 지금 이 시간을 되돌아봤을 때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할걸...’ 하고 후회할까 봐.

친구랑 통화하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지금은 시험기간이니까 공부에 조금 더 우선순위를 두는 건 어떨까... 그건 너 자신을 위한 선택일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코치이기 전에 엄마였고, 그 엄마는 또 한 번 감정에 무너졌다.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