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다고 말하면서, 이미 실망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30초 전..."
"띠-띠-띠-띠-"
"다녀왔습니다... 헉, 헉..."
시험이 끝난 딸은 요즘 매일같이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외출을 한다.
지난 금요일에는 같은 반 친구들과 시험 해방을 만끽하느라 밤 11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왔다.
늦게까지 노는 것도 마음에 안 들지만 사실 더 걱정되는 건 밤길이다.
요즘 워낙 세상이 험하다 보니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에 결국 잔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늘은 시험 끝난 날이라 봐주지만 너무 늦게 다니지 마. 제발 좀..."
그리고 어제.
또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오후 늦게야 집을 나서는 딸에게 물었다.
"몇 시에 들어올 거야?"
"한.... 10시쯤...?"
"뭐? 10시?"
입에서 바로 ‘안 돼’가 튀어나올 뻔했지만 한숨만 길게 내쉬었다.
눈치가 있다면 이 한숨의 의미를 알아챘겠지? (그런데 우리 딸은 눈치가 없었다고 한다...ㅋㅋ)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마침 남편이 딸이 있는 쪽으로 갈 일이 있어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가 9시쯤 그 근처 지날 것 같은데 데리러 가라고 할까?"
"음... 아니... 그냥 버스 타고 갈게."
몇 번이고 물어도 그냥 버스를 타고 오겠다는 딸...
쳇...
버스 타고 오려면 기껏해야 20분쯤 더 노는 거잖아.
나 같으면 그냥 차 타고 편하게 들어오겠다.
결국, 참다못해 한마디 툭 던졌다.
“너 10시에서 1초라도 늦으면 쫓겨날 줄 알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애써 포장하려 해도 결국 협박이었다.
그리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21:50
"카운트다운 들어간다."
21:57
"3분 전..."
21:58
"2분 전..."
21:59
"1분 전..."
"50초 전..."
"40초 전..."
"30초 전..."
"띠-띠-띠-띠-!"
"다녀왔습니다... 헉, 헉..."
딸은 신발도 벗지 못한 채 그대로 거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은 턱끝까지 차올라 있었고 볼은 발갛게 달아 있었다.
딱 봐도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이 하도 어이가 없어 웃었더니
"와... 나 진짜 버스 내려서 뛰어 오면서 기도했잖아. 엘리베이터 제발 1층에 멈춰 있으라고..."
그렇다.
환승하는 버스가 1분이라도 늦게 도착했다면,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춰 있지 않았다면...
딸은 아마도 10시를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순간 우주의 모든 기운이 딸아이에게 닿았다.
사실, 나는 딸을 믿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들어오겠다고 했을 때부터 이미 늦게 들어올 거라고 단정했고,
딸이 도착하기도 전에 실망할 준비를 마친 채 속으로 어떻게 혼을 낼지 혼자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라는 말을 마음속에서 먼저 꺼내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약속을 지켰고, 나는 그런 딸을 의심한 내가 부끄러웠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속도로 성장한다.
조금 느려도, 잠시 멈춰도, 설사 돌아가더라도,
결국은 자기 길을 찾아간다.
코치는 그것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이다.
코치는 재촉하지 않고, 단정하지 않으며, 그 사람이 자기 속도로 길을 찾아가도록
묵묵히 곁에 서 있는 사람이다.
나는 코치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내 아이 앞에서는 늘 불안이 먼저였다.
혹시 어긋나진 않을까, 이번에도 실망하게 되진 않을까.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자꾸만 선을 긋고, 기대 대신 의심을 택했다.
그러면서도 말한다.
“너를 믿는다”라고...
하지만 믿음은 말이 아니라 태도에서 드러난다.
그 아이가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조용한 확신,
늦더라도 스스로 깨닫고 돌아올 수 있다는 느긋한 기다림.
그게 진짜 믿음이고,
그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아야 할 사람이 바로 '엄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아이 앞에서는 쉽게 흔들리는 엄마다.
걱정이 앞서고, 불신이 고개를 들고,
사랑이란 이름 아래 조급함이 섞이곤 한다.
그리고 나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쓰는 줄 알았다.
딸도 ‘괜찮은 딸’이 되기 위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오늘도 완벽하진 못했다.
믿는다고 하면서 의심했고, 기다린다고 하면서 재촉했다.
그런데도 딸은 약속을 지켰고, 나는 또 한 번 배웠다.
서툰 나도, 그 아이도 조금씩 나아지는 중이다.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한 뼘 더 성장할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