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나 좀 그렇게 열심히 하지...
어머니, ㅇㅇ이 담임입니다.
지난주 목요일, 딸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학교에서 전화가 오면 순간 긴장하게 된다.
특히 아이가 학교에 있는 시간에 선생님께 전화가 온다는 것은 아프거나 다쳤을 때, 그것도 아니면 사고 쳤을 때가 대부분인지라...
"다름이 아니라 ㅇㅇ이가 이번 체육대회 때 저희 반 대표로 플래카드를 만들기로 했는데 재료를 사야 한다고 해서요. 점심시간 잠시 외출을 허락해도 될지 여쭤보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체육대회에 이렇게나 진심이라고? 공부나 좀 그렇게 열심히 하지...’
"엄마, 나 오늘 좀 늦을 것 같아."
그날 오후, 딸은 늦은 귀가를 통보했다.
그 열정이 대견하면서도, 공부도 저렇게 좀 열심히 했으면 하는 마음이 스쳤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도 학창 시절 응원단장을 도맡아서 할 정도로 체육대회에 진심이었다.
그런 나를 쏙 빼닮은 딸이라 뭐라 할 말이 없네... 쩝...
통보대로 늦게 들어온 딸에게 '그 열정으로 공부 좀 하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체육대회까지 딱 하루만 더 참기로 했다.
"그래서 플래카드는 잘 만들었어?"
"응."
피곤해 보이는 얼굴에 성취감, 기대감 같은 것이 언뜻 스쳐보였다.
"근데 엄마, 나 내일 아침에 태워줄 수 있어? 친구들이랑 7시 10분에 만나기로 했는데..."
셔틀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가겠다는 딸...
굳이? 왜?
체육대회 당일...
깨우지도 않았는데 일찍부터 일어나 꽃단장 중인 딸...
'시험기간에나 그렇게 일찍 일어나서 공부 좀 해 보지...'
결국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약하게 빗방울이 떨어졌다.
하필 비 예보가 있는 날이라 걱정했지만 다행히 오후시간까지는 약한 비만 오락가락해서 체육대회는 별 무리 없이 끝이 난 모양이다.
"엄마, 나 오늘 친구들이랑 놀다가 저녁 먹고 들어갈게. 학원은 다음 주에 보강한다고 미리 얘기했어."
체육대회 뒤풀이를 가신다는 딸...
얼씨구... 학원 스케줄까지 미리 조정하는 치밀함 보소...
'그래... 딱 오늘까지만 봐준다.'
저녁시간이 되면서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좀처럼 그칠 줄을 몰랐고 바람까지 심하게 부는지 안내문자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우산도 없이 나간 딸이 걱정돼서 연락을 했더니 친구랑 같이 쓰면 된단다.
빨리 들어오라는 말을 에둘러했더니 전혀 눈치를 못 챈다. (아님 모르는 척하는 것일지도...)
들어오겠다고 약속한 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뒤 결국 버스정류장에 데리러 나와달라는 딸...
남편이 데리러 나간 사이 나는 잔소리 시전을 준비했다.
'야, 우산도 없이 나갔으면 비 많이 오기 전에 빨리빨리 들어와야 될 거 아냐.
그리고 체육대회를 하면 하는 거지 학원은 왜 빠지는 건데? 그냥 마치고 와서 가면 되지...
고등학생들이 뒤풀이는 무슨... 그런 정성으로 공부나 좀 하지...
체육대회 준비한다고 놀고, 체육대회 했다고 놀고...
그렇게 해서 도대체 공부는 언제 할 건데?'
하지만 체육대회가 딸에게는 소중한 추억이라는 걸 알기에, 잔소리를 삼켰다.
승패와 상관없이 친구들과 함께 뛰고, 소리치고, 웃으며 하나가 되는 날... 그 마음을 모를 리 없기에...
"따님... 이제 체육대회도 끝났으니 공부 좀 하시려나요?"
"네네... 이제부터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을 번쩍 드는 딸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근데 엄마 있잖아. 우리 반 체육대회 꼴등했어... 하하하... 피구 빼고 다 졌어... 그리고 있잖아.... 내가 동아리 회장이라서 후배들 아이스크림을 사 줬는데 이게 체육대회 전통 비슷한 그런 거거든... 근데 아이스크림 할인점은 넘 멀어서 그냥 편의점 갔더니 넘 비싼 거야. 그래서 2+1이랑 1+1만 골라 담았는데도 2만 원이 넘었어... 아... 맞다... 그리고 또 있잖아... 우리 반 오늘 단체사진 찍었는데... 봐봐..."
아.. 이 눈치는 없고 해맑기만 아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래... 내가 딱 오늘까지만 잔소리 참아준다.
그. 런. 데.
다음날... 아니 그다음 날까지...
토, 일 이틀 내내 피곤하다며 잠만 자는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