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말에도 온도가 있다

마음의 온도를 1도 높여주는 언어

by 커리어포유

이번 주 내내 한파가 이어지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날씨 앱부터 켜고 기온을 확인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어깨를 움츠리고, 두 손을 주머니 속으로 깊이 찔러 넣은 채 걷는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목도리를 단단히 여며도 찬 공기는 틈을 찾아 몸 안쪽으로 파고든다.


잠시 외출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계산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는데,

앳된 얼굴의 알바생(처럼 보이는)이 내 앞에 서 있던 손님에게 물었다.

"봉투에 담아 드릴까요?"

그러자 그 손님의 날 선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럼 이걸 지금 손으로 들고 가라는 거예요?"

순간 편의점 안의 공기가 바깥바람보다 더 차갑게 굳어버렸다.

봉투가 필요한지 묻는 지극히 당연하고 친절한 확인이

추위에 지친 그 손님에겐 불필요한 절차 혹은 날 선 공격처럼 들렸던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몸을 녹이는 게 패딩과 목도리, 따뜻한 차 한잔이라면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건 뭘까.


아마도, 말일 것이다.
말에도 온도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추운 날에는 그 온도가 평소보다 훨씬 더 예민하게 느껴진다.


추울수록 사람은 여유가 줄어든다.

몸이 먼저 굳고, 마음도 따라 굳는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추운 날엔 말도 쉽게 뾰족해진다.

"이 정도 날씨에 엄살은...."

"거봐, 내가 따뜻하게 입고 나가라고 했잖아."

"너만 추운 거 아냐. 다들 추워."

틀린 말은 아니다.
현실적이고, 상황을 정리해 주는 말일 수도 있다.

말하는 사람은 어쩌면 도와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말이 떨어지는 순간,
듣는 사람의 마음에는 차가운 서리가 내려앉는다.


이 말들이 차갑게 느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상대의 마음에 머무르기 전에 너무 빨리 결론으로 가버리기 때문이다.

공감보다 판단이 먼저 나오는 말.

이미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그 말은 조언이 아니라 얼음송곳처럼 꽂힌다.

반대로 말 한마디로 공기가 달라지는 순간도 있다.

"여기까지 오느라 추웠지? 따뜻한 차 한 잔 마셔."

"추위 많이 타는 너 걱정되더라. 따뜻하게 챙겨 입어."

"감기 조심해. 넘 춥다."

이 말들엔 거창한 해결책이 없다.

문제를 정리하려는 의지도 없다.

그런데도 마음이 한결 느슨해진다.

왜일까.

그 말들은 뭔가를 바꾸려 들지 않는다.

상황을 정리하지도, 감정을 설명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 순간을 지나치지 않고 거기에 그대로 함께 머물러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 신체적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듯, 심리적 여유도 함께 줄어든다.

그럴 때 내가 무심코 던진 차가운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으로 붙잡고 있던 인내심을 무너뜨리는 고드름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겨울엔 말을 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 느리게,

조금 더 다정하게.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에게 따뜻한 말을 건넬수록 그 온기는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따뜻한 말은 상대에게 가 닿기 전, 내 입술을 먼저 거쳐 가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향해 고른 다정한 말들은 그 사람보다 먼저 내 안의 굳어 있던 마음을 건드린다.

차갑게 남아 있던 자리를 조금씩 포근하게 데운다.

결국 타인을 향해 뻗은 내 말이 나를 먼저 안아주는 셈이다.


이 글을 읽고 나서 거창한 말을 떠올리지 않아도 괜찮다.

바로 옆 사람에게,

혹은 오늘 하루를 버텨낸 나 자신에게 말해보자.


"오늘 많이 추웠지. 애썼다 정말."


말 한마디로 마음의 온도가 1도쯤 오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