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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그깟 돈 얼마나 번다고?

자존감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에서 자란다

by 커리어포유
그깟 돈, 얼마나 번다고? 내가 생활비 더 주면 되잖아.


남편의 이 말은 한동안 정화(가명)의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결혼 전부터 줄곧 이벤트 기획사에서 일해온 그녀는 현재 팀장을 맡고 있다.

야근도 마다하지 않으며 수많은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냈고, 대표와 동료들의 신뢰도 두터웠다.

하지만 그런 성과가 남편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 일 해서 돈 좀 벌면 뭐 해? 차라리 애나 더 잘 챙기지.”

그는 자신의 사업이 잘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정화의 일을 대놓고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남편의 무시는 습관처럼 반복됐고, 정화는 점점 자신의 일을 의심하게 됐다.

처음에는 속으로 반박했다.
‘이 일, 내가 얼마나 애써서 버텨온 건데... 밤새 기획서 수정하고, 클라이언트 눈치 보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는데...’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반박이 힘을 잃어갔다.

남편의 말이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마음이 무너졌다.

'정말 그럴지도 몰라. 이 일, 가족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걸지도 몰라.'

그때부터였다.

누군가 칭찬을 해도 믿지 않았다.
“팀장님 아니었으면 우리 진짜 망했을 뻔했어요.”
“이번에도 감각이 살아있네요. 역시 팀장님이셔요!”

그럴 때마다 정화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한 게 뭐 있다고요..."
그러면서 속으로는 되뇌었다.

‘진짜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분위기상 해준 말일 거야.’

그 무렵부터 정화는, 자신의 능력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일까?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긴 한 걸까...’


어느 날, 대표가 그녀를 불렀다.
신상품 론칭 쇼케이스의 총괄 기획을 맡아달라는 제안이었다.
기획 규모도 크고, 회사 입장에서도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김팀장이라서 믿고 맡기는 거야."

팀원들도 기쁜 얼굴로 덧붙였다.
"팀장님이 하시면 저희가 더 자신 있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정화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요... 아직 자신이 없어요. 그건 저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이 해야 할 것 같아요.”




집으로 돌아온 정화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맡아보라고 하네.”

남편은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지도 않고 말했다.
“그래서 한다고?”
“고민 중이야...”

잠시의 침묵. 그리고 툭 내뱉는 말.

“뭘 그렇게 고민해? 그깟 일로 얼마나 더 벌겠다고...
괜히 무리해서 애 힘들게 하지 말고, 그냥 적당히 눈치껏 다른 사람에게 넘겨.”


그 말에 정화는 말없이 일어났다.
입술이 살짝 떨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 한 컵을 따라 마셨다.
목이 마른 게 아니라, 마음이 마르던 참이었다.

'그래... 역시... 내 능력 밖의 일이야...'


며칠 뒤, 복도에서 대표가 정화를 불렀다.

"김 팀장은 자신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
주변에서도 다 김팀장이 제일 잘할 거라고 하던데..."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길, 막내 팀원도 조심스럽게 말했다.

"팀장님, 이번 프로젝트 꼭 하셨으면 좋겠어요.
팀장님의 저희 회사 '에이스'이시잖아요."

정화는 그저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 안에는 고마움과 두려움, 기대와 불신이 얽혀 있었다.

회사에서는 믿어주고, 집에서는 무시당하는 이 온도차 속에서
정화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진짜 나는 누구일까.
신뢰받는 리더일까, 아니면 아직도 미완성인 사람일까.’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응원의 말이,
정화에게는 그저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해왔고 수많은 프로젝트를 혼자 감당하며 무너지지 않았는데

그런데도 정작 그녀 자신은, 그 모든 걸 인정하지 못했다.

왜일까.
남들은 믿어주는데, 정작 자신이 믿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자존감이란,

해낸 일의 크기가 아니라 해낼 수 있다는 믿음에서 자란다.


"칭찬을 들어도 전혀 실감이 안 나요."
"사람들은 괜찮다는데, 저는 하나도 못 느끼겠어요."
"차라리 무시당하는 게 편해요. 기대가 생기면 더 불안하니까요."

이런 말들 속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 적이 없다는 것...

누군가의 말에 나를 맡긴 채,
그 말이 곧 나의 모습이 되어버린 시간들...


자존감은 타고나는 게 아니다.
사소한 말에 금이 가고, 따뜻한 시선에 다시 자란다.
흔들리고, 다시 단단해지는 과정을 거치며 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코칭은 그 단단함을 되찾는 시간이다.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언어로 나를 다시 써 내려가는 일...

"나는 이런 사람이다."
그 말 한마디를 망설이지 않고 꺼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내 편’이 된다.


자존감은 누가 대신 붙여주는 이름이 아니다.
내가 나에게 건네는 시선, 그 첫 한 줄에서 시작된다.

살다 보면 누군가의 말에 휘청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나를 세우는 말은 언제나 내 안에서 자란다.


*오늘의 질문*
: 지금, 당신은 누구의 말에 가장 오래 머무르고 있나요?

우리가 오래 붙잡고 있는 말은, 생각보다 깊숙이 우리를 흔들 수 있어요.
그 말이 당신을 지지하고 있는지, 아니면 조용히 무너뜨리고 있는지 차분히 들여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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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