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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출 Apr 14. 2016

소요유(逍遙遊) 소요유다

거대한 땅, 중국에 가다②(2-9)

거대한 땅, 중국에 가다②





여행 첫날은 바쁘게 움직였다. 상해에서 3시간여를 달려 항주에 도착하였다. 항주의 도심은 온통 증·개축공사로 구간마다 정체와 지체를 반복했다. 2016년 제11차 G20 지도자정상회의가 이곳 항주에서 오는 9월에 개최한다. 이 회의를 앞두고 항주는 새단장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것이다. 사람 사는 곳 어디에든 경제발전은 눈부시다. 이곳 항주[항저우]는 저장성의 성도이다. 푸춘강 하류 유역뿐 아니라 수력발전소가 있는 신안강 유역까지 넓은 지역을 관장하고 상해만으로 흘러들어오는 첸탕강 어귀의 북안에 있다. 

 진대에 처음 첸탕 현이 들어섰고, 오대에는 오월의 수도였다. 남송도 이곳을 수도로 삼았으며, 명·청 시대에는 부로 승격하였다. 909년 상해로 가는 철도가 개통되고 1937년 장시성·후난성으로 가는 철도가 건설되면서 상해의 상업적 역할이 커졌다. 1937~1945년에는 일본에 의해 점령되었다. 1949년 이래 중국 정부는 상해의 풍치지구와 관광명소를 보존하면서 공업 중심지로도 발전시켰다. 또한, 문화의 중심지로 항저우대학교, 저장대학교, 저장농업대학과 그 밖의 많은 고등교육기관이 있다.

 안후이((安徽)성 남부에 있는 황산풍경은 1990년 유네스코세계유산위원회에 의해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으로 등록된 중국의 10대관광지로서 경관을 자랑하며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북적댄다. 이번 여행에는 일정에 없는 안후이((安徽)성을 가보지 못해 무척 아쉬웠다.
  여행의 즐거움은 시각과 미각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이는 모든 것은 새롭다. 이곳 음식들이 입맛에 맞을지가 걱정이었다. 혹시나 해서 컵라면 몇 개를 지참했고 형제들은 고추장과 깻잎 장아찌, 김치와 김, 그리고 더덕무침까지 준비해왔다. 매콤한 사천요리와 소동파가 즐겨 먹었다는 동파육, 마파두부 등 특별하게 거부반응은 없었다. 그래도 몇 끼를 먹고 나니 김치와 된장국이 그립다. 이곳에서는 호텔을 대주점(大酒店)이라 한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조용하고 깨끗했다. 종일 관광버스를 타고 구경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고 호텔에 돌아오면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 되었다. 자유여행과 단체여행의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이번 여행에서 중국어와 약식으로 표기한 한자를 모르다 보니 정확한 뜻을 잘 몰라 매우 답답했다. 눈앞을 스치는 새로운 풍광에 매료되어 여행 안내원의 설명은 귀가로 스쳐 지나갔다. 
  서호(西湖)가는 길은 일요일인데도 정체와 지체를 반복했다. 도롯가 양쪽으로는 수림이 울창하고 가로수 플라타너스는 모양이 독특했다. 사람 팔다리처럼 제멋대로 자란 아름드리가로수들은 우리의 시선을 유혹했다. “너희 나라에 우리 같은 나무 못 봤째?” 여행 안내원에게 물었더니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 제멋대로 자라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나의 눈에는 신기하기도 했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지상에는 항주와 소주가 있다."는 말처럼 항주의 지상낙원 서호는 (西湖)는 항주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다. 항주는 4천 년 전부터 고대 문화인 양저(良渚)문화가 번성하였으며 춘추시대에는 오·월 두 나라가 패권을 다툰 곳이기도 하다. 진(秦)나라 시황(始皇帝)이 6국을 통일한 후 이 지역에 전당현(錢糖縣)을 설치한 것이 항주 역사의 시작이었다. 도시 명칭은 수(隨) 개성(開星) 9년(589)에 처음 쓰였으며 그 후 항주는 오월(893~978년) 남송(1127~1279년)의 도읍으로 번성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절강성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가 됐으며 서호(西湖)를 중심으로 한 명승지 항주는 중국 화동지방의 고도(古都)이다. 서호는 원래 첸탕강(錢塘江)과 연결된 해안의 포구이며 진흙·모래로 막혀 육지의 인공호수로 조성된 곳이다.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서호는 계절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 여러 번 보아도 그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곳이다. 서호가 풍경과 명승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까닭은 아름다운 산수의 지세를 지녔을 뿐 아니라 14명의 제왕의 수도였던 항주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송(南宋)왕조 이래 항주가 성도가 된 후 서호 부근에는 관료와 부호가 운집했고, 그들의 정치적 배경이 되어 많은 문인과 묵객들의 소재가 되어 시와 그림으로 옮겨졌다.
  또한, 이곳은 중국의 4대 미인 중 하나인 서시(西施)의 고향이고 미인과 용정차로 유명하며 중국 10대 명승지 중 하나이다. 월나라 미인 서시(西施) 에 비유해 '아침에도 좋고 저녁에도 좋고 비 오는 날에도 좋다'고 할 만큼 아름답다는 것이다. 일명 서자호(西子湖)라는 이름도 소동파가 서호의 아름다움을 월나라의 이름난 미인이자 오나라를 망하게 했던 항주의 여인 서시에 빗대어 붙인 이름이다. 소동파는 생전에 항주 백성들이 그의 행적을 기리고자, 누각 가운데 그의 초상을 모셔놓고 생사(生祠)를 삼았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화황공원에서 서호를 유람할 수 있는 매표소까지 걸었다. 공원에는 내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댔다. 공원의 산책길에는 동백꽃이 붉게 피어있고 이름 모를 나무들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녹색공원으로서 고풍이 스며있는 공원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서호십경의 화황관어도 구경했다. 중국 여러 지방에서 단체관광 온 중국 내국인들의 말투가 우리 경상도 사투리보다 더 시끄럽다. “와, 중국 사람들 말소리가 싸움하는 것 같데이”
 바다처럼 넓은 서호를 유람하다 보니 마음이 바람처럼 시원하다. 서호에 떠있는 많은 유람선은 은빛 물결을 가르며 봄날을 즐기고 있었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여행 안내원의 통솔에 잘 협조해야 가능한 일이다. 한사람의 실수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이 단체여행이다. 우리 일행은 일사불란하게 잘 따르고 협조했다.
  서호를 유람하고 느지막한 오후에 송성(宋城)으로 이동했다. 이름만 듣던 그 유명한 ‘송성가무쇼’이다. 남송(南宋)시대에 있던 성곽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항주의 대표적인 테마파크인 송성은 건물은 물론 문화나 풍습, 복식도 재현해 테마파크 안에 들어서면 마치 남송시대로 여행 온 듯하다. 송성테마파크에는 한마디로 인산인해다. 어디에서 모여든 사람들인지 놀랍다. 역시 세계 3대 쇼답다. 매일 3000석 규모의 자리가 꽉 찰만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공연을 위해 송성그룹에서 80억 원을 투자해 대형극장을 만들었고, 제작비 또한 56억 원을 들여 첨단 과학기술이 결합돼 환상적인 무대를 선사한다. 200여명의 배우들이 매일 출연하는 만큼 스케일 또한 남다르다.

 송성가무쇼는 총 5막으로 이뤄졌다. 제1막 양저지광(良渚之光)= 문명의 태동 5천 년 전 석기시대로 돌아가 단발문신의 원시인 춤이 현란한 조명과 요란한 음악 속에 펼쳐진다. 제2막 송궁연무(宋宮宴舞)는 송나라의 창궐과 남송의 가장 융성했던 때를 각종음악과 춤으로 묘사한다. 제3막 금과철마(金戈鐵馬)는 금나라의 침략과 악비(岳飛) 장군의 항전을 씩씩하고 웅장한 남성적 군무와 전투장면으로 재현했다. 제4막 서자전설(西子傳說)은 각종 전설과 이야기들을 춤과 다양한 연출로 보여준다. 제5막 매력항주(魅力杭州)는 아름다운 도시 항주를 미녀들의 춤과 무수한 나비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하지만 송성가무쇼는 한국인들에게 슬픈 역사를 보여주기도 한다. 2막에 나오는 송중연무에서 한복을 입은 무희들이 부채춤을 추고 아리랑과 함께 상모돌리기를 하면서 한국 관광객들은 모두 와~ 하고 함성을 지르는데 여기에도 곡절이 있을 것 같다. 아리랑이 마음 깊숙이 와 닿지 않았다. 좀 낯설었다.

 거대한 중국도 이제는 어느 정도 여유가 묻어나온다. 여행의 즐거움을 아는 듯 온통 사람들로 넘쳐난다. 차창 너머로 펼쳐지는 거대한 땅 중국의 봄날을 따뜻하다. 농촌 들녘이 스쳐지나가고 드문드문 모여 있는 마을은 3층짜리 단독건물들이다. 가끔 오성홍기가 나부끼기도 한다. 다시 황주 시내로 들어와 서커스로 관람하고 어둑어둑해서 오산(吴山) 성황각에 올랐다. 성황각은 중국의 4대 누각 중 한 곳이다. 오나라 왕 손권이 진을 쳤던 곳으로 유명하다. 4층 난간에 오르면 동쪽으로 첸탕강, 북쪽으로는 항주 시내, 서쪽으로는 서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4층에 전시한 남송시절 궁궐 조형물과 풍습도가 담긴 전시물을 구경하고 항주 시내의 야경을 구경했다. 시간 상 구경을 다 못하고 걸어서 오산공원을 내려와 ‘청하방옛거리’를 구경했다. 청하방은 민속, 중약, 시전, 음식 등 4대 문화를 융합한 거리가 되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주어진 30분이 금방 지나갔다. 명동 못지않게 볼거리가 많았다. 옥 공예품이며 비단 용품이며 멋거리로 활기가 넘쳐났다. 구경도 구경이지만 집 떠나오면 고생이란 말이 퍼뜩 떠올랐다. 내일의 여정을 위하여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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