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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령 Jun 05. 2019

나에겐 모든 것이 문학이고 예술이 된다

일상에서 글감 찾기

삶을 예술가처럼 살고 싶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기니까.


그중 가장 오랜 꿈은 진부하지만 작가로 사는 것이다. 나는 배포가 커서 이왕 꿈은 품, 뭣도 모르면서 제일 있어 보이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되겠다고 했다. 몇 년이 지나 노벨이고 나발이고 그냥 스테디셀러 작가가, 몇 년 후에는 다시 베스트셀러 작가, 그리고 다시 평생 작가로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시 몇 년이 지나 부업으로라도 좋으니 그냥 내 이름 걸고 책 출간만 할 수 있어도 좋겠다 했다(물론 여전히 잘 팔려야 한다는 건 변함없다). 나에게 장르는 상관이 없었다. 시, 에세이, 소설, 칼럼 등 뭐든 닥치는 대로 써지면 그만이었고 글로 벌어먹고 살 수 있다면 뭐든 좋았다.


초등학교 때는 산문으로,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운문으로 도대회에서 매번 상도 받고 나름 왕년에 이름 좀 날렸었다.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문학 공모전을 여러 차례 도전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난 주특기인 정신승리로 마인드 컨트롤했다. 다음은 나의 정신승리를 도와준 몇몇 사람들이다.



먼저 <빨간 머리 앤>을 쓴 루시 모드 몽고메리. 자신의 어린 시절 체험과 시골생활을 바탕으로 약 18개월의 기간 동안 <빨간 머리 앤>을 완성했다. 신생, 중간층, 대형 출판사 두루두루 원고를 보냈지만 받아주는 출판사가 없어 실망하고 포기한 채 방 안 옷장 안에 처박아두었다. 2년 후에 그 원고를 발견하고 다시 읽어보았는데 자기가 썼지만 너무 재미있고 처박아두긴 아까운 원고였다. 이후 거듭된 투고 끝에 드디어 <빨간 머리 앤>은 빛을 보게 되었다. 릴 때 생각 없이 그저 재미있게만 봤던 만화영화를 백영옥 님의 에세이 <빨간 머리 앤이 하는 말>을 통해 다시 보게 되면서 앤이야말로 진정한 정신 승리자임을 깨달았다.


루시는 출간의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출판사에서 오늘 새책이 왔다. 고백하건대 진정으로 자랑스럽고 멋지고 가슴 두근거리는 순간이었다. 내 의식이 품은 모든 꿈과 희망과 야심과 몸부림의 물질적 결정체인 내 첫 책이 바로 내 손에 놓여 있다. 위대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책, 나의 책, 나의 책, 내가 창조해 낸 바로 나의 책이다......!


이런 명작도 사람들이 몰라봐 줬었는데 결국 빛을 보았다. 나도 사람들이 잠시 몰라봐 주는 것뿐이다. 언젠가는 누군가 알아봐 줄 것이다. 나도 잠시 어둠의 길을 가고 있는 것뿐이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니까.


두 번째, 무라카미 하루키.

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한다. 가끔 읽다가 미궁으로 빠지기도 하지만 묘하게 빠져든다. 소소한 19금은 덤이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육아휴직 대체로 짧게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어쩌다 그의 에세이까지 읽게 됐다. 에세이도 재밌길래 이 아저씨 매력에 푹 빠 검색을 해보다 나와 같은 염소자리에 소띠인 것을 보고 혼자 과하게 인연을 맺었다. 나랑 그렇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때까지 쭉 평행이론을 이어 나가 보자고.


셋째, 해리포터 작가 조앤 K. 롤링. 

홀로 아이를 키우며 정부 보조금에 의존할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던 이혼녀였지만 우연히 기차 연착이 되면서 상상에 잠기고 거기에 살을 덧붙여 출간하게 된다. '아동서로는 절대 돈을 벌지 못한다'는 출판사 관계자 말을 들으며 적은 돈으로 선인세를 받아 시작했지만 몇 년 후에 그의 말은 틀린 것으로 증명된다.


처음엔 이렇게 힘들게 시작했던 작가들이 많았다는 것이 나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이렇듯 루시도 자신의 어린 시절이 바탕이 되었고 조 앤 링이 쓴 <해리포터> 주인공의 성인 '포터'도 어린 시절 자신의 절친이었던 친구의 이름에서 따왔다. 덤블도어와 스네이프의 성격은 학창 시절에 만난 여러 교사에게서 가져왔다고 한다.


나도 몇 년 전 지역 축제 백일장에서 내 경험을 토대로 쓴 것이 상을 받은 적이 있다.

'문열공 매운당 이조년 선생 추모 전국 백일장'이었는데 가까운 곳이고 나의 고향이라 가서 도전해봤다. 사실 그전에도 도전했다 탈락했던 쓰린 경험이 있지만, 가까우니 한번 더 이 몸이 행차해주신다 하는 마음으로 재도전했다. 이번에는 남들이 잘 안 할 것 같은 시조에 도전해봐야지 하며 나름 머리를 굴린답시고 이조년의 시조를 검색하며 갔다. '다정가'로도 불리는 이 시조는 언젠가 들어본 것이었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하얗게 핀 배꽃에 달은 환히 비치고 은하수가 보이는 깊은 밤에, 배꽃 한 가지에 서린 봄날의 정서를 소쩍새는 알고 저리 우는 것일까마는, 다정도 병인 양 잠 못 들어 하노라)


임금을 그리워하는지, 몰래 님을 그리워하는지 모르겠다만 참 제목만큼 다정하고 낭만적이다.


 나는 학창 시절 배운 시조 형식을 생각했다.

초장, 중장, 종장, 3434... 종장 처음은 3음절, 중간은 5음절... 에라 모르겠다. 현대시조라 우기고 대충 시조 느낌만 살려보자.


다른 소재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중 하나가 내가 쓴 '국밥'이었다. 백일장 전날도 밤새 24시 국밥집에서 거나하게 국밥을 놓고 소주를 즐기고 있었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 쓰린 속을 부여잡고 그냥 가지 말까 오천구백구십 번은 번뇌했다. 평소 같으면 당연히 안 갔을 텐데 이상하게 술에 취해 술김에 간 건지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며 버스에 올랐다. 소재에 쓰인 국밥을 보는 순간, '훗, 난 당연히 저거지' 싶었다. (그 시절 나를 위로해주었던 국밥과 소주, 지금은 끊었다. 아니 줄였다. 친구들이 안색이 안 좋다며 간이 안 좋아 보인다, 얼굴이 썩은 것 같다, 너 요즘 알콜성 치매인 거 같다, 조심해라 하며 겁을 많이 주었다. 난 예술가는 원래 술에 절어 살아야 한다며 술과 축제의 신 디오니소스가 내 친구다 하는 멍멍이 소리를 해댔지만 결론은 끊었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줄였다. 끊게 된 결정적 계기는 다음에)


국밥

친구여 나와 노세 국밥이나 한 그릇 혀 정답기도 하구나 도란도란 나누는 정
한 그릇 말아먹으니 속이 다 든든허네

소주 생각 간절한데 한잔 기울여볼 텐가 쓰디쓴 그 입가엔 고달픈 청춘예찬
이 또한 즐기면 그뿐, 욕이라도 실컷 하자

나라가 이 꼴이라 내 모양 요 꼴이라
괜스레 탓해보네 우리네 인생살이
어릴 땐 이 나이 되면 멋들어지게 살 줄 알았지

정말이지 나란 놈 큰 인물 될 거라고
배짱만은 두둑하게 큰 소리 뻥뻥 치며
웃으면 그만 인 게지 호탕하게 하하하

한두 잔 꺾다 보니 날은 또 저무는데
우리의 청춘만은 저물지 않았노라
등 한번 토닥여주니 이렇게도 좋구나

시시껄렁 덧없는 농 주거니 받거니
세월이 흘러서도 이렇게만 살자고
지금이 그저 좋은데 무엇이 더 필요하리

얼마 뒤 수상작들이 책으로 만들어져 집으로 우편물이 왔다.

여기저기 보이는 오타가 구타를 유발한다

 나의 첫 인세는 문화상품권으로 그쳤다. 다시 봐도 대상감인데 장려상에 그쳤다. 려와 장려는 이제 충분하니 그만 장려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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