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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령 Jun 04. 2019

쌤은 그냥 엄마한테 돈이나 받아 가세요

방문학습 쌤의 애환

그날따라 하기 싫어 부쩍 투덜대더니 글쓰기 포트폴리오에 시작부터 글씨를 엉망으로 적는 아이에게

"그래도 이왕 쓰는 거 예쁘게 좀 쓰자,

쌤이 너 애먹이려고 쓰게 하는 것도 아니고 예쁘게 쓰든 날려 쓰든 어차피 똑같이 연필 쥐고 써야 되는 건데, 시작부터 이렇게 날려쓰는 건 힘들어서 그런 것도 아니잖아?"

하며 지우개로 지웠다.


그러자 더 투덜거리며

"아 왜 지워요!! 내가 날려 쓰든 말든 왜 상관해요 쌤은 그냥 엄마한테 돈이나 받고 가요 쌤도 어차피 돈 벌러 왔잖아요"


초딩 3학년 개구쟁이 남자아이의 깜찍한 도발이었다.

아마 중3이 그렇게 말했으면 멱살을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 얘한테 말했던 것처럼 똑같이 대답해줬을 것 같다.


멱살만 잡아도 벌금 100만원


난 그렇게 무섭게 아이를 혼내거나 휘어잡는 스타일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사람이 못된다.

애들은 그냥 철이 없으니 애들이지. 까불거리고 말 안 듣는 것도 애들이니까 그런 거지 한다.

무엇보다 난 아이들의 편이다. 뭐든 억지로 공부하는 것보단 그냥 아이들이 독서의 즐거움을 알고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지금 배우고 느낀 순간순간의 통찰들이 인생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이왕이면 행복을 찾으면서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자기도 모르는 새 사회에, 인류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사실은 엄청난 욕심.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인드 컨트롤하며 정신승리 중이다.


"난 아이들 가슴속에 예쁜 꽃씨를 심어주고 있어"


그래서인지 이 꼬맹이의 도발에도 생각보다 난 의연했다.


"그래 선생님 돈 벌러 왔는데 가르치고 돈을 받는 거니까 가르치고 가야 되겠지? 그리고 이왕 가르칠 거 쌤도 보람 좀 느껴보자 이렇게 맨날 하기 싫어하고 투덜대면 쌤도 지치고 힘들어. 자꾸 그러면 그냥 엄마한테 말해서 그만둔다 하고, 돈 안 받고 안 가르칠래"

나름 아이에게 맞춘 눈높이 교육이다.






이렇게 내 나름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일하지만 때려치우고 싶은 순간도 어마어마하다.

뚜벅이인 나는 아이들 교재를 짊어지고 가는 것이 무겁고 힘들다. 무엇보다 교재가 아니라도 내 가방은 늘 잡동사니가 많아 미니멀한 삶과 거리가 멀다.

한쪽으로만 가방을 메는 습관 때문에 어깨나 골반까지 삐뚤어진 느낌이다. 백팩을 메어 보기도 하지만 옷과 어울리지 않는 날엔 구려지는 패션 때문에 우울하다.

이 일을 하면서 여자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하이힐과 바이바이 한지는 이미 오래다. 늘 편한 운동화나 단화다.

그래도 날이 좋은 요즘 같은 계절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삶의 만족도가 올라갔다. 바구니에 교재를 넣 타고 다니니 무겁지도 않고 오랜만에 타니 재미도 있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엔 타지 못해 가방에 우산까지 짊어지고 다녀야 해서 다시 우울해지곤 한다. 나는 쉽게 행복해하고 쉽게 우울해지는 인간인가 보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지 못할 때 난 쉽게 분노한다. 거의 짐승 같은 수준이다.

배고픈데 밥을 못 먹는다거나 잠을 잘 못 잔다거나 할 때.

이 일은 아이들 학교 마치고부터 밤까지 일이 계속되기 때문에 저녁을 챙겨 먹지 못한다. 그래도 집집마다 간식을 챙겨주시는 고마우신 엄마들이 많아 그걸로 때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끔 성에 차지 않아 야식으로 폭식한다. 열심히 걷고 자전거를 타면서도 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가 그 간식들 때문인 것 같다며 먹지 말라는 친구에게 말했다.

"엄마들이 챙겨 주시면 배가 불러도 먹게 돼. 잘 먹어야 계속 주시는데 안 먹고 남겨 놓으면 저 쌤은 잘 안 드시나 보다 하고  나 배고플 때 안 주실까 봐"

무엇보다 잘 먹는 게 내 식복의 비결이라며 계속 잘 먹어서 식복을 유지하겠다는 나의 지론이다.

그 순간 웃프다며 날 바라보던 친구의 촉촉한 눈길을 잊을 수 없다.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지 못하는 또 다른 경우는 몸의 생리적인 욕구를 바로 해결하지 못할 때이다.

말을 계속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늘 목이 마르고 따끔거려 물을 자주 마셔야 하는데 물을 마시기가 늘 조심스럽다.

물 종류를 마시면 바로 내려가 닿는 직 요도와 개미만 한 방광을 가졌는지 마셨다 하면 금방 오줌이 마렵다. 그리고 한 번만에 시원하게 비워지지 않고 또 금방금방 다시 마렵다. 

피부가 건조해 보인다며 물을 많이 마시라는 나에게 그게 귀찮아서 못 마시겠다고 하니 누군가 무릎을 탁 치는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다.

원래 물기 있는 촉촉한 땅에 물을 부으면 흙이 그 물을 스윽 흡수하지만 가물어 쩍쩍 갈라진 땅 위에 물을 부으면 바로 흡수되지 않고 겉돈다고.

하지만 그러고도 난 지금까지 물을 많이 마시진 못한다.


수업 중에 오줌이 마려워서 화장실을 가게 되면 수업에 집중도 안될뿐더러 시작 전이나 후에 쓴다고 해도 남의 집 화장실을 쓰는 건 여간 송구스럽다.

무엇보다 어떤 커뮤니티에

'우리 집에 방문학습 오는 아줌마 쌤이 있는데 그 쌤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화장실을 쓴다. 그게 너무 싫고 찝찝하다'

하는 글이 올라와 돈 적이 있다. 댓글엔 고맙게도 '무슨 화장실 쓰는 것 가지고 그러냐, 그럼 오줌 마려운데 계속 참냐? 방바닥에 지려봐야 정신을 차리지' 하고 글쓴이를 비난하는 글도 있었지만, '이해가 간다, 올 때마다 계속 쓰면 좀 그럴 것 같다' 하고 옹호하는 글도 있었다. 아무래도 수업하는 패턴이 있다 보니 비슷한 시간에 계속 가게 되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다.

어쨌든 그 글을 보고 더욱 화장실 쓰는 게 힘들어졌다. 지금도 장예민러 쌤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어제 매운 거 먹어서 그런지 수업하다가 똥꾸멍 터질 뻔했잖아요 웃을 일이 아니에요 진짜 식은땀 나고 술이랑 혀 끝이 달달 떨렸다구요"

정말 남일이 아니다.


옆에 듣고 있던 어떤 선배 쌤이 말하길,


첫째, 그냥 요즘 유행성 독감이나 질병이 많으니까 집에 들어가자마자 무조건 "어머니 손 좀 씻고 올게요" 하고 청결한 선생님 코스프레를 하며 들어가 물  틀어놓고 볼일을 본다.

둘째, 그래도 큰일을 보고 싶을 땐 남의 집에서 민망하니 주변에 공원이나 도서관, 관리 사무소, 아파트 내 독서실 등등에 딸린 화장실 위치를 아파트마다 미리 다 파악해둔다.


그래도 힘든 건 매한가지지만 오늘도 난 방광을 부여잡고 꽃씨를 뿌리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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