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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령 Jun 14. 2019

자본주의 노예의 불순한 정신개조기

내가 왜 이렇게 노예로 살 수밖에 없는지 사회 시스템에 강한 불만을 품으며 노예 해방을 꿈꾸게 된 건 불과 몇 년 전인 것 같다.


그전엔 남들도 다 이렇게 사니까 꼬박꼬박 주 5일 근무를 하고 그나마 카드 할부를 해서라도 가끔씩 여행을 할 수 있는 정도에 다행이라 여겼다.


세상은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고, 더불어 나보다 잘 사는 사람도 많았다.

돈이 돈을 번다고, 그것도 부모 잘 만난 덕에 그 밑천으로 또 잘 사는 거라며 가난한 내 부모 탓을 하기도 했다. 내가 뭔가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였다.

이런 현대판 자본주의 노예였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불순한 마음을 품기 시작하고 주인 몰래 정신개조기에 들어갔다. 나의 그런 자연스러운 인식이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고 이런 삶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기득권 층이 심어 놓은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자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지어 나의 부모조차도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줬다는 생각에 화가 났지만 그 시대를 겪어온 부모님 세대에는 그것이 당신들에게는 당연한 것들이었기에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옛날, 노비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자신의 운명에 당연하다는 듯 순응하고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가슴속에 뜨거운 열망을 품었고 지금의 시대가 도래했다. 결과적으로는 또 다른 현대판 노예가 탄생했지만 이제 당당히 외칠 수 있는 세상이다. 나는 노예 해방을 원하노라고!

추노꾼이 날 잡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언제부터인가 왜 이렇게 더욱 자유를 갈망하게 되었는지 최재붕 교수의 <포노 사피엔스>를 보면서 의문을 풀게 되었다.


인간이 어떻게 생각을 만드는지는 이미 많은 학자들이 이론적으로 정리한 바 있습니다. 대표적인 학습이론이 바로 복제 이론 Meme Theory입니다. 정보를 보고 그것을 뇌에 복제해서 생각을 만든다는 이론입니다. 카피copy가 학습의 기본이라는 거죠. ...

스마트폰이 등장한 뒤 사람들이 보는 정보는 달라졌고, 그래서 36억 인구의 생각이 달라져버렸습니다. ...

아침에 신문이 배달되면 73퍼센트의 국민이 같은 시간 대에 모두 같은 걸 보고 복제하는 나라, 그래서 언론의 힘도 막강했고 사회 전체가 갖는 대중 의식도 매우 견고한 사회였습니다. 대중 의식의 복제는 우리나라 사회 유지의 근간이라고도 할 수 있었습니다. ...

스마트폰을 손에 든 인류는 정보의 선택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알아버렸고 그에 따라 정보를 보는 방식도 진화한 것입니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통해 자기가 좋아하는 정보만을 보고 복제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생각은 모두 개인화되었습니다. ...
과거에는 관행이라 생각되던 일들이 이제는 받아줄 수 없는 범죄 행위가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개인화된 대중들은 더 이상 개인의 행복과 권익을 침해하는 어떤 불합리한 권력도 용인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 개인의 행복과 권익을 침해하는 어떤 불합리한 권력도 용인할 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쌓 온 사람의 생각이나 고정관념은 바뀌기 어렵다는데 나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가치관이 무수히 변해가는지 이 나이 되도록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리고만 있는 것 같은 내가 한심했다. 하지만 이 글을 보는 순간 안심이 되었다.


그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한쪽만 보고 섣부른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 모든 것을 알고 판단할 때는 더 머리가 복잡해져 고민일 때도 많지만 그래도 알고 결정하는 것이 진짜 내 선택인 것이다.


좁은 연못의 개구리에게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고  여름 한철 사는 벌레에게 얼음을 말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많이 보고 듣고 알고 싶다.


내가 왔다리 갔다리 마음이 복잡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또한 책을 쓸데없이 너무 많이 읽어서라며 책을 끊으라는 이도 몇 있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 읽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많은 답을 얻었고 앞으로도 책 속에서 많은 답을 얻으리라는 확신에 변함이 없다.


나는 원래 편독이 심한 타입이어서 내가 주로 읽는 것들은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덕분에 이것저것 다양한 글들을 쉽게 접하게 되고 자연히 관심 분야도 늘게 되면서 독서의 범위도 넓어지게 되었다. 전혀 읽지 않던 경제 분야도 그중 하나로 깊이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조금이라도 읽려고 했다. 그러면서 돈에 대한 가치관이 180도 바뀌어 버렸다.


예전의 난 '돈이란 사람의 욕심을 만드는 나쁜 것'이란 인식이 컸다. 로또에 당첨이 되어 벼락부자가 되면 그것이 독이 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히려 당첨 전보다 불행해졌다, 돈이 많다고 행복하지는 않다 같은 말들을 순진하게 믿었다.


대놓고 돈을 밝히는 사람은 속물 같고 어린 나이에 돈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하여 이해를 못했으며, 돈이야 늘 어떻게든 생기겠지 하고 나중에 정 돈이 없으면 어디 산골이나 고향 촌구석으로 돌아가 나물 뜯으며 독야청청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마음속 깊은 한 구석에서 돈이 없는 미래의 늙은 나를 생각해 보았을 때 답답함이 밀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비나 약값도 없이 늙고 아픈 몸을 이끌고 죽지 못해 살아야 하는 평균 수명 100세 시대가 과연 축복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관련되지 않은 삶이란 있을 수 없다. 내가 가장 원하는 자유를 위해서라도 경제적 자유가 제일 중요했다. 가족들과 행복한 추억쌓을 수 있는 여행, 부모님이 편히 쉬실 수 있게 보살펴드릴 수 있는 여유, 곰팡이 없는 안락한 집, 먹고 기분 좋아지는 맛있는 음식들까지 돈이 없고서는 하나도 가지지 못할 것들이다.


어느 순간부터 돈이란 건 없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곧 '일단 나의 밑천이자 밟고 디딜 언덕이 될  돈 많은 남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낳았으나 그 생각도 곧 바뀌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더 쉽고 빠르게 갈 수 있겠지만 남의 마음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는 없고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은 결국 나 자신뿐이다. 그런 로또 같은 확률에 내 인생을 거느니 내가 스스로 바뀌기로 했다.

4차 산업 혁명의 시대, 큰 자본이 있어야만 할 수 있었던 사업도 지금은 적은 자본과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플랫폼을 기반으로 누구나 '부'를 가질 수 있는 세상이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라도 돈은 꼭 필요하다. 옛날엔 가난한 사람들이 말랐었지만 지금은 부자들이 날씬하다. 이스라엘의 역사 학자 유발 하라리도 <호모 데우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벌리힐스에 사는 부자들은 양상추 샐러드와 퀴노아를 곁들인 찐 두부를 먹는 반면,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은 트윙키 케이크, 치토스, 햄버거, 피자를 배 터지게 먹는다


나는 지금 가난해서 돼지로 화 중이다. 

하지만 곧 건강한 초인류로 진화할 것이다. 나는 강하지 못해도 변화에 잘 적응하는 잡초 같은 생명력을 가졌으니까.




내가 최근에 이사 온 집은 오래된 아파트지만 예쁘고 깔끔하게 리모델링이 되어 있었고 오래된 탓에 월세도 저렴했다. 하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 했던가. 난 이 곳에 와서 난생처음 두드러기로 고생 중이다.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사는 친구도 나보다 조금 더 일찍 이 곳에 살게 되었는데 내가 여기 오겠다고 할 때 두 손 두 발 들고 뜯어말렸었다. 여기 배수관 고쳐 주러 온 아저씨가 이 아파트는 너무 오래되었는데 한 번도 고치지 않아 녹물이 심하다, 그냥 최대한 빨리 이사 가는 게 답이다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사람 사는 데 다 똑같겠지 하며 자신 있게 이사 왔다.


얼마 뒤, 기분 탓인지 동생에게 어느 순간부터 샤워하고 나면 간지럽고 따갑게 느껴지지 않냐 했더니 자기도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타고난 건강 체질인 동생은 더 이상의 증상은 없었고 내 몸에는 두드러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병원을 가도 소용없었고 연수기를 달아도 소용이 없다. 침대를 새로 산 탓인가 하여 동생 방으로 피신하여 자기도 해봤지만 나을 기미가 없다. 이때까지의 내 나쁜 식습관과 숨쉬기 외에는 전혀 운동을 하지 않는 생활 습관 등이 여기에 오면서 시너지를 폭발시킨 것 같다. 4주에서 6주가 넘어서면 만성으로 본다는데 난 이미 만성이 되어 버렸나 보다. 하루빨리 나아서 두드러기 치유기를 쓰고 싶다.


지금 이사 온 곳은 월세인데도 아파트라 2년 계약이다. 이제 겨우 3개월 정도 지났는데 빨리 이 집을 탈출하고 싶다. 그래서 난 돈을 많이 벌 것이다.


비록 두드러기를 얻었지만, 희망적인 것이 있다면 나의 노예 탈출을 위한 의지가 더 강해졌 미약하나마 내 삶은 좋아지고 있다. 원룸에서 미니 투룸으로, 그다음은 거실 따로 방 두 칸으로.


그래서 나는 더 나아져있을 내일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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