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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령 Jun 16. 2019

내 파랑새는 돈을 물고 온다

나는 일찍이 '나의 삶'과 '나라는 존재'에 관심이 많았다. 이 생에 태어나 죽기 전까지의 유일한 숙제는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다 가는 것뿐이라던데,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행복할까?



행복은 어쩌다 한번 있는 커다란 행운이 아니라 매일 발생하는 작은 친절이나 기쁨 속에 있다
-벤자민 플랭클린



삶의 목표가 행복이라는 사람은 어리석다고 했다. 내가 마음속에 그리는 '행복'이란 단어 자체가 관념적이다. 눈에 보이게 확실한 목표를 두더라도 마찬가지다. 만약 '10억을 모으면 난 행복할 거야'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실제 10억을 모았을 때 한동안은 행복할 수 있겠지만 인간의 감정이란 게 24시간 늘 똑같이 쭉 가지는 않는 법이다. 행복도 기쁨, 우울, 분노처럼 그저 감정의 하나일 뿐이다.


내가 주 감정이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행복의 순간들을 많이 만들어 놓고 죽어야겠다 싶었다.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 사람마다 느끼는 행복은 저마다 다르고, 파랑새는 내 곁에 있는 것이니 난 내가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들을 사소한 것일지라도 되도록 많이 찾고 기록해두고 싶었다.


그래서 많은 경험을 해 보는 것에 대해 늘 두려우면서도 꿈꾸는지 모른다. 이러이러한 경우에는 나란 사람은 무조건 이럴 것이다 하고 확신했던 것도 막상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다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건 내가 정말 잘할 것 같은데 싶던 것도 막상 해보면 별 소질 없는 것도 있었고, 이건 정말 내 스타일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다 싶던 것도 막상 해보면 재미있는 것도 많았다.


그래서 일단 뭐든 입으로 뱉고 보  직접 겪어보지 않고 말하는 것에 대해 조금은 조심스러워졌고 고작 내 행복 리스트를 작성해보는 작은 것도 머뭇거렸다. 하지만 완벽함은 좋음의 적이다. 변덕쟁이라 언제 또 변할지 모르지만 나는 현재의 행복 리스트를 작성해보기로 했다. 내 행복이기에 제든 수정은 가능한 것이니까.


1. 일하고 싶지 않을 때 하지 않을 자유를 위한 충분한 돈과 시간
2. 맛있는 것을 먹을 때
3. 친구들과의 수다
4. 초록이 예쁜 화분들
5. 안락하고 쾌적한 보금자리, 예쁜 인테리어, 정돈된 방
6. 내가 좋아하는 향기를 맡을 때
7. 스탠드로 은은한 간접 조명
8. 따뜻한 햇살
9. 파릇파릇 연둣빛 새싹
10. 눈 내리는 풍경
11. 쌀쌀하게 비 오는 날 나가지 않고 따뜻한 차 마시며 창문 너머로 바라볼 때
12. 아가야 웃음소리
13. 아기가 몸에 촤악 감겨 안기는 느낌
14. 화장실 진열장에 뽀송한 수건이 돌돌 말려 정리된 것
15. 침대에 누워서 책 보기
16. 최애 과자 바나나킥
17. 화장이 예쁘게 잘 된 날
18. 무념무상 샤워하기
19. 기분 좋아지는 노래
20. 급 떠나는 여행
21. 계획되지 않은 일탈
22. 친구들과 노래방
23. 색색깔 색연필
24. 늦잠
25. 추운 날 살 맞대고 잠들기
26. 초록 들판 보기, 자연에서 휴식
27. 별 보기
28. 겨울에 따뜻한 방구석 이불속에 누워 까먹는 귤
29. 흐드러지게 핀 채 낙화하는 벚꽃(많이 달려있는 채로 많이 떨어지는 날)
30. 상추쌈 싸 먹기
31. 더운 여름 스타벅스 쿨라임 한 잔
32. 더운 여름 에어컨 빵빵한 카페에서 책 읽기
33. 건강(아플 때 확실히 기분까지 다운됨) 34. 책이나 그림 그리기 등 무언가에 몰입해서 시간이 훌쩍 갔을 때
35. 기가 막힌 가사나 구절 발견
36. 예쁘고 편안한 잠옷
37. 빵빵한 스피커 사운드
38. 선물하고 좋아하는 모습 보기
39.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때 아무것도 안 하기
40. 사랑하는 연인과의 스킨십
41. 간식 먹으면서 재미있는 티비 시청
42. 마사지받기
43. 훌쩍 드라이브
44. 제주도, 경주
45. 글이 잘 써질 때
46. 추운 겨울 곡물 핫팩 배에 올려놓기
47. 무언가 새로 시작할 때의 설렘
48. 초, 모닥불처럼 타오르는 따뜻한 불을 바라볼 때
49. 노을
50. 찰떡같이 어울리는 옷을 산 날



한번 해보면 생각보다 50개를 채우는 것이 쉽지 않다. 최대한 자세하 구체적일수록 좋다. 그런데 자연이 주는 몇몇 행복들을 빼면 모두 돈이 들지 않는 것이 없다.

내 파랑새는 돈을 물고 온다. 젠장. 심지어 자연이 주는 행복도 그것을 느낄만한 삶의 여유가 있어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큰돈은 들지 않는 것들이라 내가 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해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고 앞으로도 쭉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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