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가령 Jun 17. 2019

해파리를 동경하는 여자

나는 어릴 때부터 반짝이는 걸 참 좋아했다. 별, 큐빅, 보석, 에나멜 구두, 떨어질 듯 말듯하게 맺힌 물방울, 불꽃놀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물결, 심지어 깨진 조그만 유리 조각 파편까지.


젠가 한 수족관 앞에서 반짝이는 빛에 정신이 팔려 멍하니 오래도록 서 있었던 적이 있다. 투명한 푸른빛을 발하며 유유히 떠다니는 생명체였는데 처음엔 그것들이 뭔지 몰랐다. 한참을 바라보다 수족관 유리 오른쪽 밑에 해파리라고 적힌 걸 보고 그제야 알았다. 해파리... 해파리냉채 해 먹을 때 그 해파리??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실제로 해파리란 걸 처음 실물로 보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가짜라서 더 예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문득 해파리가 부러웠다. 느릿느릿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명상에 빠진 초월자의 모습처럼 여유로워 보였다. 그때 생각했다.


아, 나도 해파리처럼 살고 싶다


언젠가 내가 그러한 이유로 해파리처럼 살고 싶다는 얘기를 했을 때 나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던 구 남친이 생각난다. 나는 그때 일도 자주 갈아치웠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나의 그런 모습을 한심해한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냐고, 너만 힘든 거 아니라 한다.


하지만 여러 일을 해본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사람마다 자기가 느끼기에 분명 더 힘들고 덜 힘든 일은 있다는 것.

그리고 뭔가 억울해진다. 나도 열심히 살지 않는 것은 아니.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지 않을 뿐이지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러다 힘들면 남들보다 더 느긋하게 쉴 뿐이다. 에너지를 쓰는 방법이 다른 것이다.

누군가는 늘 평균의 비슷비슷한 에너지로 일을 한다면 난 몰입해서 한 번에 쏟아붓고 푹 쉬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난 늘 프리랜서인 직업을 원했다. 한 친구가 그 말을 듣고 말이 좋아 프리랜서이지 백수나 다름없다고 했다. 그래도 난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조율해서 쓸 수 있는 삶을 원한다. 물론 게으름이 심해서 잘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아마 일하는 시간보다 여유를 부리는 것에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할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일과 취미가 통합되는 것이 최선이다.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면 그 일이 싫어진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 못 해봐서 공감할 수 없다.


어쩌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은 늘 한결같았는지도 모른다. 개미와 베짱이를 보면서도 난 베짱이 편이었다. 마지막에 추운 겨울 베짱이가 개미를 찾아간 장면에서 어떤 책은 개미가 친절히 먹을 것을 나눠 주지만, 어떤 책은 쫓겨나 굶어 죽는다. 난 그것을 보고 화가 났다. 타고난 능력을 직업으로 못 써먹었을 뿐이지, 개미가 일하는 동안 그들이 신명 나게 노동요를 불러다. 초대가수처럼 돈을 받고 일했어야 했다. 하지만 세상은 베짱이에게 냉담했다. 대놓고 베짱이 근성을 드러내면 눈총을 받는다. 그래서 나는 해파리를 본 날 이후로 유레카를 외쳤다. 열심히 촉수를 움직이며 놀면서 남들에게는 열심히 일하는 모습처럼 보일 수 있다.


이름 시 쓰는 것을 부업으로 하고 있는데 쓰고 꾸미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뿐이지, 이름 시를 짓는 데는 가끔씩 빼고는 사실 크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금방 지어서 사람들에게 주면 대충 지었다 생각하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 보내주면 고심했다고 생각한다. 히트곡도 아주 쉽고 빠르게 떠올려  것들이 많다는데 말이다. 그 점을 이용해서 일부러 시간을 두고 보내주는 요령을 피운다.

난 결국 해파리로 환생한 베짱이다. 내가 하고 싶고 즐거운 일만 찾아, 먹고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한량이 제일 부러웠다. 만약 조선시대에 부잣집 도령으로 태어났다면 나는 벼슬길에 올라 높은 관직을 차지하는 것보다, 유유자적 풍류를 즐기는 삶을 원했을 것이다. 권력은 내가 원하는 가치는 아닌가 보다.

황진이처럼 예쁘고 기예에 뛰어난 기생들과 벗하며 사시사철 꽃놀이 단풍놀이를 다녔을 것이다. 시도 읊고 음주가무를 즐기며 바로 앞에서 뛰어난 공연 감상은 덤이다.

그리고 백수라는 눈총을 받지 않기 위해 시와 그림을 모아 시집을 내야지.

난 베짱이처럼 당하고 살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호구로 본다면 언제든 쏘아버릴 해파리처럼 살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파랑새는 돈을 물고 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