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가령 Jul 01. 2019

맹장 터진 날 물구나무서기

 2018년 5월의 어느 날. 배가 아파도 너무 아팠다. 퇴근 후 늦은 저녁부터 배가 아프다고 계속 찡찡대며 동생을 귀찮게 했다.

 "가스가 찬 건가, 속도 메스껍고 배가 너무 아파 미치겠어. 나가서 박카스 좀 사다 주라."

 지난번 배가 아프고 가스가 찼을 때 박카스 효과를 본 터라 이번에도 좀 사다 달라고 했다. 동생은 화장도 다 지웠는데 귀찮게 하지 말라며 니가 나가 사 먹으라고 매몰차게 말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더 못생기게 구겨져가는 내 인상에  심각함을 느꼈는지 결국 나가서 한 박스를 사 왔다.


 한 병을 비우고 화장실을 계속 들락날락했지만 도무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생리통처럼 뭔가 배가 아파서 억지로 똥이라도 싸고 싶은데 나오지 않을 때의 그런 느낌이랄까. 설사를 몇 번 하기도 했지만 장염과는 또 다른 느낌이고 미칠 노릇이었다. 박카스를 세 병까지 비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파오는 듯했다. 나는 폰으로 초록창에 '배에 가스 찰 때', '소화 잘 되는 요가 자세' 등을 검색하며  아기 자세, 활 자세, 고양이 자세, 낙타 자세 등 온갖 동물이 되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벽에 대고 물구나무도 서보았다. 지쳐서 누워 잠들고 싶었지만 아픔은 새벽까지 지속되어 끙끙 대고 있었다. 두시가 넘어서면서 선잠이 들었던 동생이 자다 깨서 말했다.

 "응급실이라도 가보자."

 

 보통 같으면 병원을 무서워하는 나는 배 아픈 걸로 무슨 병원을 가냐며 바로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 가자."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으며 그 와중에도 걱정을 했다.

 "화장 지우기 전에 저녁에 갔다 올 걸. 이 얼굴로 어떻게 가지? 새벽이니까 택시 타고 후딱 갔다 오면 괜찮겠지?"

 "참나, 이거 꾀병 아냐? 그 와중에 쌩얼 타령이냐."

 "나 진짜 꾀병 아냐. 너무 아프단 말이야. 죽을 것 같다고. 근데 잠깐만. 아, 진짜 병원 가야 하나. 가기 전에 한 번만 더."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다시 물구나무를 섰다. 동생이 어이없다며 웃었다.


 대로변으로 나가 택시를 잡고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새벽이라 다행히 병원은 조용했다. 한 의사가 와서 내 배를 여기저기 누르는데 '악' 소리가 절로 났다. 어딜 눌러도 다 아픈 것 같은데 오른쪽 아랫부분이 가장 아팠다. 소변검사, 혈액검사를 해야 한다길래 "피 뽑아요?" 하고 두려움의 눈빛을 발사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주사 맞는 걸 너무 무서워해서 학교에서 단체로 무슨 주사를 맞는다고 줄을 서있다가 운 적도 있다. 몇 살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정도로 컸던 기억이 난다. 울면서도 부끄러웠었다. 그래도 어른이 되어 들어 주사 바늘은 다행히 내 기억 속의 아픔보다는 덜 한 느낌이었다. 간호사가 다시 와서 이제 Xray랑 CT도 찍어야 할 수도 있으니 속옷을 벗으라 했다. 이미 왼 팔에는 링거가 꽂혀있어 움직이기가 불편했다. 앓는 소리를 내며 누운 채 등 뒤로 오른손을 뻗어 브래지어 후크를 풀려고 하는데 어딘지 찾아지지도 않았다. 동생이 풀어주려고 손을 넣었는데 동생도 못 찾는지 허우적거리며 "대체 후크가 어디 있는 거야?" 하며 헤맸다. 순간 아뿔싸! 하며 혼미해져 가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생도 못 찾고 있자 옆에 있던 간호사까지 거들었는데 내 등 뒤를 보고 '어머' 하는 것이었다. 간호사와 나는 서로 민망한 웃음을 지었고, 동생은 나를 부끄러워하며 팔뚝을 때렸다.


 하필 그 날 입고 벗어 던져둔 속옷을 그대로 주워 껴입고 왔는데 섹시해도 너무 섹시한 속옷을 입고 와버렸다. 얇은 끈이 x자로 복잡하게 꼬여 있고 후크는 앞에 있는 것이었는데, 보통 브라는 어깨에 거는 줄 부분이 앞뒤로 거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 줄만 뺄 수도 있는 반면에 그것은 패드 부분과 일체형이었다. 입을 땐 그냥 머리 위로 쑤욱 입었던 것이 벗을 때는 난감해졌다. 결국 윗옷을 다 벗어야 브라도 벗을 수 있는 것이었다. 간호사는 그제야 침대 옆 가리개 커튼 같은 것을 쳐 주었다.

 "병원 오는데 뭐 이런 걸 입고 와 가지고."

 "내가 이렇게까지 될 줄 알았나 뭐, 주사나 한 방 맞고 올 줄 알았지."

 쩝. 겸연쩍은 웃음을 짓고 걸어 둔 링거 용액을 뺀 뒤 곡예하듯 벗었다. Xray를 찍은 뒤 기다리는데 다시 의사가 왔다.

 "맹장일 수도 있는데, 여성분들은 골반염일 가능성도 커서 CT도 찍어봐야 할 것 같아요."

 맹장? 골반염? 무슨 말을 들어도 다 무서웠지만 너무 아프니 그저 네, 네,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더 무서운 소리를 했다.

 "찍으려면 조영제를 투여해야 하는데 이게 아주 적은 확률로 쇼크사하는 경우도 있어요."

 "네??"

 "걱정 마세요. 그런 일은 거의 없는데 그냥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거의 없는데 그런 말은 왜 하시는 거죠? 그런 무시무시한 걸 꼭 투여해야 하나요? 하고 속으로만 외친 채, 네 하고 울먹이며 대답했다. 난 겁쟁이 쫄보라고요.


 곧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불쾌했다. 속이 계속 울렁거리는 듯했다. 의사가 다시 왔다.

 "지금 봤을 때는 충수염, 보통 맹장이라고 아시니까. 맹장인 것 같은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골반염과 구별이 잘 안 가는 부분이라 내일 담당 선생님께서 출근하시고 확진해 주셔야 수술을 하실 수 있어요."

 "네? 저 지금 너무 아픈데 내일 아침까지 이렇게 있어야 해요?"

 의사는 진통제를 놔줄 것이라며 안심시켰지만 생각보다 점점 길어지는 병원행에 내일 출근이 걱정되었다.

 '에이씨, 아파 죽겠는데 출근 걱정이나 하고 있고.'

 나는 회원모들에게 문자를 돌리고 약기운에 취해 잠이 들었다.


 다음 날, 간호사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더니 옆에 그토록 기다리던 의사 선생님께서 와 계셨다.

 "확인해보니 급성 충수염이 맞습니다. 복강경 수술을 할 건데 배꼽 쪽으로 적으면 구멍 하나, 많으면 세 개 까지 뚫어서 수술할 수도 있습니다. 최대한 상처 안 보이게 예쁘게 해 드릴 테니 걱정 마시고요."

 '구멍이 세 개?'

 나는 순간 어릴 때 보았던 만화영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크리링 이마가 떠올랐다.


 

 말도 안 돼. 내 배에 구멍이...

 간호사가 나를 가여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동생 분이 수술을 해야 된다고 해서 짐을 가지러 집으로 가셨어요. 선생님 시간 때문에 지금 바로 수술실로 가셔야 하는데 괜찮으시죠?"

 고맙게도 침대 채로 누워서 수술실로 이동하는 동안 간호사는 내 손을 꼭 잡아 줬다. 수술실 문이 열리고 들어가는 순간, 냉장고 안에 들어왔나 싶을 만큼 너무나 서늘한 공기에 소름이 돋았다. 온갖 생각이 다 들면서 무서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저 누워만 있어야 하는 내가 그렇게 나약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내 존재 자체가 제일 작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마취를 시작하겠다는 말과 함께 코와 입 위로 드라마에서 보던 것이 씌워졌다.

 '영화처럼 마취 중 각성 같이 깨어나는 건 아니겠지, 너무 긴장해서 마취가 안되면 어쩌지."

 하나 둘 들이쉬고 내 쉬는 박자에 맞춰 숫자를 세는데, 내 걱정이 무색하게 난 금세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거노인 준비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