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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령 Jul 03. 2019

맹장염 수술 후 뜻밖의 강제 디톡스

 누군가 또 날 흔들어 깨웠다.

 '여긴 어디... 참, 병원이었지.'

 비몽사몽으로 습관처럼 다시 잠들려고 했다. 간호사는 이제 더 잠들면 안 된다고 눕지 말고 앉으라 하더니 마취 가스를 삼키면 안 좋으니까 헛기침을 하며 계속 빼내라고 했다.

 "무통 주사니까 아프면 이 초록색을 눌러요. 많이는 안 좋으니까 적당히 조절하시면서요."

 밀려오는 잠을 억지로 참아내며 앉는데 배가 너무 겼다. 흠흠 헛기침을 하니 쓴 약 맛이 계속 올라오는데 몸에 안 좋다 하니 최선을 다해 헛기침을 했다.


 월차를 내고 짐을 챙겨 온 동생이 옆에 앉아

  "아까 간호사가 불쌍했는지 니 걱정하더라. 나도 짐 챙기러 가서 아무도 없는데 수술하러 혼자 들어갔다고."

 내 손을 꼭 잡고 들어가 주신 그분인가 보다. 사실 그때도 몽롱한 정신이라 수술실에 들어가는 자체가 겁이 날 뿐이지, 옆에 가족이 아무도 없다는 그런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도 누군가 곁을 지켜준다는 느낌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오히려 지금에 와 다시 생각할수록 따뜻했던 그 손은 더 고맙고 감동이다.


 시간이 흐르자 마취가 깨는지 수술 부위의 아픔이 폭풍처럼 몰다. 는 앓는 소리를 내며 아까 간호사가 말했던 초록색을 찾아 조절이고 뭐고 미친 듯이 눌렀다. 그래도 아픔이 가시지 않아 계속 끙끙거렸다. 한참 후, 알게 됐는데 내가 초록색 몸통 중에 엉뚱한 부분을 누르고 있었다.

 "아, 이게 아니고 이건가 봐. 난 정신도 없었는데 니가 좀  듣지"

 동생과 나는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뭐래, 나한테 고마워해라. 내가 병원 가자 안 했으면 넌 떼굴떼굴 구르다 복막염까지 갔겠지. 물구나무까지 아주 잘만 서더니."

 전날까지 물구나무 서고 있던 내 모습이 떠올라 킥킥대는데 배가 너무 아팠다. 항상 아프고 나면 모든 곳이 소중하다. 기침 하나, 웃음 하나에도 이렇게 내가 배 근육, 허리 근육을 많이 썼었나 싶어 새삼 놀랍다. 옆으로 누우면 장기가 다 쏟아지는 느낌이라 자는 것도 불편했다.


 정신이 좀 드니 수술비가 슬슬 걱정됐다. 그래도 바로 그 전년도에 보험을 들어놓아 다행이었다. 예전에 사촌언니가 소개해준 지인에게 보험을 들었다가 실비 하나 남겨두지 않고 깨버리는 바람에 이제 법이 바뀌어 그 조건으로는 다시 못 넣는다고 언니한테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예전에는 실비가 100프로였다면 지금은 80프로로 돌려받는다. 하여튼 일을 벌이기 전에 상의를 하지, 꼭 사고부터 치고 전화를 한다는 거다. 그때는 어고 일도 들쑥날쑥이라 매달 내는 보험료가 아까웠다. 잠시 정지해두는 개념도 모르고 20년 납 이런 것도 전부 평생 내야 하는 줄 알고 그냥 깨버렸다.  

 병에 걸려도 난 병원에 누워서 지내고 싶지는 않다, 그냥 시골에 들어가 자연 치유하면서 살거나 그냥 운명을 받아들이겠다, 그리고 난 병에 걸릴 것 같지도 않다, 차라리 그 돈으로 내가 적금을 들겠다, 이런 마음이었다. 사고는 별나라 우주여행만큼이나 나랑은 더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몇 년 전 자전거를 타고 가다 골목에서 나오는 차와 부딪쳐 사고가 났었다. 작은 사고였지만 그때 이후로 세상이 내 맘 같지 않고 사고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란 생각에 보험이 간절해졌다. 다들 실비라도 빨리 들라고 해도 그냥 미루고 있었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역시 충격요법이 제일이다. 그래서 바로 전년도에 보험을 들어놓았던 것이다.

 보험 아주머니께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 실비는 물론 다른 것도 적용이 돼서 수술비보다 더 나올 테니 걱정 말라고 하셨다. 그 말에 안심이 되고 꽁돈까지 생긴다니 기분이 좋았다.


 의사가 와서 배꼽 쪽에 구멍 하나만 살짝 내고 아주 예쁘게 꿰매 놓았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구멍 세 개가 아니라 하나라서 다행이다 싶었지만 거즈로 덮어놓은 수술 부위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내 배꼽 뻥 뚫려있는 거 아니야?'

 병원에 있는 동안 누워서 소독을 할 때마다 당장이라도 앉아서 수술 부위를 내려다보고 싶었지만, 고개를 숙여 보기엔 배도 당기고 아직 아물지 않았을 상처를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목이 너무 마르고 칼칼한데 가스가 나올 때 까진 물도 마시지 못하게 해 더 고통스러웠다. 링거를 꽂고 있어서 그런지 배는 고프지 않아 신기했다.

 '내가 배가 고프지 않다니. 신기한 경험이야. 다이어트가 절로 되겠군."

 그나마 목요일 밤에 입원을 해서 주말 동안은 일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가스가 나오지 않았다. 간호사는 올 때마다 가스가 나왔냐는 말로 안부를 대신했다. 더 움직이라고 했다. 다음 날 저녁까지도 소식이 없자 슬슬 불안했다. 링거 거치대에 빵을 올둔 채 잡고 복도를 더 열심히 왔다 갔다 했다.

 "가스만 나오면 아무거나 먹어도 돼요?"

 "안돼요, 나와도 우선은 물만 드셔야 해요."

(1차 시무룩)


 다음날 아침 드디어 가스가 나왔다. 간호사에게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저 이제 물 마셔도 되죠?"

 간호사는 안쓰럽게 웃으며 조금만 더 이따가 조금씩 마시라고 했다. (2차 시무룩)


 나는 월요일에 퇴원했지만 도저히 걸어 다닐 자신이 없어 수요일까지 쭉 쉬었다. 얼마 뒤 수술 부위를 소독할 때 보니 신기하게 상처가 잘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수술 부위가 꿰맨 자국처럼 볼록하게 그때보다 더 잘 보인다) 출근을 하니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얼굴이 더 좋아졌다고 했다.

 "푹 쉬어서 그런가 봐요"

 수업을 가도 어머님들이 내 얼굴이 더 좋아졌다고 하셨다. 나는 엄청 아픈데 이러다 꾀병으로 오해받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친구들도 말했다.

 "진짜 안색이 더 밝아졌어. 술 먹고 배달음식 먹고 한 게 오래되어서 그런지 엄청 칙칙했는데 신기하네."

 수술 전에 한창 친구들과 효소 디톡스를 알아보던 때였다.

 "나 진짜 금식하면서 강제 디톡스 됐나 봐. 내 의지로는 절대 못 할 일인데."






 몇 주 뒤에 나는 까무러칠 뻔했다. 화장실을 갔다가 익숙하지 않은 까칠한 느낌에 고개를 숙였는데 나의 소중한 부위 위쪽이 깎여있어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걸 이제야 알았다는 게 또 한 번 놀라웠다. 도대체 여길 왜 깎은 걸까. 누가 깎았을까. 복강경 수술 시 세 개까지 구멍을 뚫으면 이쪽까지 가는 걸까 하고 혼자 탐구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누구 아시는 분 답 좀)

 이럴 줄 알았으면 화끈하게 내가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러 갔을 텐데. 이렇게 까까머리 꼬마로 만들어 놓다니 쩝.






 얼마 뒤 나는 대박 꿈을 꾸었다.

 꿈에 현직 대통령이 나온 것이다. 어떤 큰 건물에서 내가 열심히 무언가를 팔며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봉사활동 중이었다. 격려차 방문 한 대통령이 나를 보고 활짝 웃어 주어 기분이 좋았다. 건물을 한 바퀴 돌더니 나에게 다시 와 수고가 많으시다며 또 웃어 주셨다.

 난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흥분했다.

 어머, 이건 사야 해!

 어디선가 대통령은 로또 꿈 중 하나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 길로 로또 명당에 가 로또를 샀다. 하지만 달랑 5천 원만 걸려 김이 샜다.

 얼마 뒤, 보험금과 종소세 신고한 금액이 환급되었는데 합쳐서 100만 원 정도가 되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꿈 얘기를 해주며, 비록 내 몸의 일부분(?)을 잃었지만 안색은 더 좋아졌고 로또만큼은 아니지만 꽁돈이 생겨 신기하다고 했다. 어찌 보면 원래 받아야 될 돈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때맞춰 보험을 든 나의 선견지명에 감탄했고 역시 난 행운아라며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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