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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령 Jun 04. 2019

방문 열고 놀아, 이 자식들아

미니 투룸에 살 때는 거실 겸 방 하나는 아예 옷을 다 넣어 두고 한 방에 동생과 함께 썼다.

이사를 오고 나서는 동생이 굳이 각방을 쓰겠다고 엄포를 놓더니 이유가 있었다.

직업군인인 남자 친구를 주말마다 보는데 어느 순간부터 남자 친구를 집에 데려와서 자기 방에서 같이 자겠다고 한다.

안 그러면 계속 모텔을 가야 하는데 모텔비도 아깝고 화장품이며 세면도구 등을 매번 챙기는 것도 번거롭고 귀찮다며.

세상 말세다.

이때까지 동생과 너무 프리한 19금 토크를 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부끄러운 줄 모르나 보다.

사실 내가 남자 친구가 생겼다 해도 아마 허구한 날 집으로 들였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미친년이라며 반대했다.


"돌았냐? 니 남친이 오겠다 해도 니가 반대해야지 지금 니가 귀찮고 번거롭다고... 참나 어이가 없어서! "

그렇게 몇 번의 실랑이를 하며 그때마다 동생과 감정만 상했다. 괜히 그놈이 미웠다. 빨리 헤어져 버려라 하고 빌었다.

얼마 뒤 결혼을 하겠다 했다. 정말 돌았나 싶었다. 그런데 빈말이 아닌 것 같았다. 잠깐 그러다 말겠거니 했는데 진짜 곧 가족이 될 것 같았다.


"너희가 정말 결혼할 거 같으면 집에 데리고는 와도 돼. 근데 자고 가는 건 오바 아냐? 늦게라도 집에는 가라고 해"


나는 샤워하고 바로 옷 입는 것을 싫어해 몸이 완벽하게 뽀송뽀송해질 때까지 나체로 다닌다. 샤워하고 나오는 것도 불편하고, 니 방이랑 화장실이 가까운데 화장실 쓰는 것도 불편하고, 배 아파도 신경 쓰여서 똥은 어떻게 싸냐는 둥 별 핑계를 다 대며 막으려 했다.


"뭐 어때. 화장실 그냥 편하게 써. 문 꼭 닫고 내 방에만 들어가 있을 건데 뭐"


'뭐?? 그게 더 싫다!!!!!'

무슨 감정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흡사 딸이 남친을 집에 데려왔는데 방문을 꼭 닫고 안에서 둘이 노는 꼴이 못마땅한 아빠의 마음 같았다.

'저 도둑놈 같은 놈이 감히 순진한 내 딸을 꼬셔?'

절대 시집 못 간 노처녀 언니의 히스테리는 아니다. (아닐 것이다)


동생이 스무 살이 되고 대구에 나오면서 거의 10년을 계속 함께 살았으니 더 각별하다.

우리는 4남매인데(엄마 아빠 애국자) 동생과 나는 6살  터울이다. 그래서인지 항상 코흘리개 같고 늘 어렸고 귀찮은 존재였다. 내가 하는 건 다 따라 하고 싶어 하고, 어딜 가든 따라가고 싶어 했다. 그런 동생이 성가셨다.

어릴 때는 방학이면 항상 김해에 있는 큰집에 놀러 가곤 했는데 나와 언니, 사촌언니, 사촌동생은 나이가 비슷해서 같이 놀았다.

하루는 우리끼리 작당을 하고 나가서 놀려는데 6살이던 동생이 따라가겠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다. 그래도 우리는 몰래 나가버렸다.

어른이 되어 동생과 얘기를 하는데 그때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어서 놀랐다.

"그때 나 안 데리고 가서 계속 울어가지고 할매가 데리고 나가 빵 사주고 했었는데"

쓸데없이 그런   잘도 기억한다.


그렇게 성가시고 늘 어리기만 하던 동생이 같은 20대가 되고 성인이 되자, 다르게 느껴졌다. 가끔은 나보다 더 언니 같고, 남동생을 챙기는 걸 보면 나도 좀 챙겨달라고, 니가 그냥 내 언니였으면 좋겠다 했다. 대놓고 삥 뜯을 수 있게.


어릴 때 세뱃돈을 받고 돈이 생기면 꼭 화투판을 펼쳐 사기를 치며 동생의 코 묻은 돈을 다 따갔다. 처음엔 잃어주는 척하며 나중엔 다 쓸어갔다. 어른의 세계나 아이의 세계나 별 다를 게 없다. 돈을 잃고 울면서도 계속하자고 보챘다.(자기가 핫바지인 줄 절대 모른다)


지금은 머리가 굵어진 동생에게 그때처럼 사기를 칠 순 없지만 백수로 지내는 동안 계속 삥을 뜯었다.

'그래도 니가 언니인데 자존심이 있지' 하고 친구들이 나무랐다. 백수에게 자존심은 사치다. 체면 따위 없다. 정신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의지할 수 있는 형제자매를 많이 낳아준 엄마 아빠에게 고마울 뿐이다.

"언젠가 배로 다 갚아줄게. 나 40까지만 기다려봐"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어느덧 내 나이 30대 중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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