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엠제이 Sep 06. 2022

고단한 남부장

면담docx

면담을 신청합니다’      


메일을 보자마자 그의 입에선 얕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글자 하나가 10킬로그램씩 족히 80킬로그램은 되는 것처럼 다가왔다. 그걸 보고만 있었는데도 목과 어깨가 그리고 허리가 아팠다.  

이번에도 어째, 딱, 감이 왔다. 


‘이번엔 어떤 말로 그만둔다고 하려나.’  


그래도 그는 일말의 기대를 품었다. 이번엔 좀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말이다. 비록 결론은 같더라도 서로 성숙한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커피를 마실까라는 생각을 밀어 두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회사를 함께 만드는 가족 같은 게 되어달란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신규 직원을 뽑는 자리에서 지원자들은 가족 같은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렇게 뽑은 직원들은 처음엔 그런 분위기에 만족하며 생활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번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하면 먼저 말한 적 없는 가족 같은 분위기를 증거인 양 들이대며 체계가 없다고 직원을 아낄 줄 모른다고 그가 무책임한 아버지라도 되느냐 날을 세웠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피로감이 더해져 면담이고 뭐고 다 그만두라고 하고 싶었다. 그래도 그럴 수는 없었다. 직원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는 사측을 대표하는 사람이니까. 달아나서도 안 되는 자리에 그가 있으니까 말이다. 얕은 한숨을 뱉은 그는 ‘그래도 가-좆같다로 끝난 인연도 많다고 볼 수는 없으니까’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위안하고 들어오는 직원을 보면서 몸을 바로 세웠다.   


회의실에 마주 앉았다. 순간 이 자리 이 배치가 면담을 요청한 직원에게 부담일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지금 와서 자리를 어설프게 바꾸는 게 더 어색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커피를 진즉 내려올걸 그랬다는 생각을 하려는 찰나 면담을 요청한 직원이 자리에 앉자마자 핸드폰을 펼치며 적어온 글을 보고 말을 시작한다.   

“어제 하셨던 말씀이요, 그거 있잖아요. 제가 감정적이다,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그런 식의 말이요. 저 여기 말고 다른데 어디서도 그런 얘기 들어본 적 없거든요? 그거 인격 모독이자 인신공격 인 건 아시죠?”

곧추세우고 있던 그의 허리가 저절로 힘을 잃었다. 직원의 말이 가진 무게가 80킬로그램에서 800킬로그램은 되는 것처럼. 800킬로그램의 짐이 사방으로 사납게 떨어졌다. 그의 어깨로 떨어지고 가슴을 치고 결국 발등에 떨어졌다. 아이고 어깨야 아이고 가슴이야 아이고 발등아. 

이쯤 되면 막 나가자는 거지 싶은 순간 이어서 직원이 줄줄 쏟아내는 이야기가 가관이다. ‘직장 내 괴롭힘’ ‘부당한 지적’ ‘그만두라는 말이나 다름없음’ ‘폭력적인 평가’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하고 이어가야 할까. 아니, 그게 다 소용은 있는 건가. 그저 고단하다. 꽥 소리를 지른 후에 그 자리를 피해서 방에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깊고 잠을 자고 싶을 뿐이다. 고단하다, 고단해. 어디 보자 직장 내 괴롭힘이라. 그는 그 말에 담긴 뜻을 헤아릴 틈도 없고 그 속뜻이 가늠도 안된다. 괴롭힘이라면 지금 이 직원이 나한테 하는 것도 거기 해당이 되는 건가, 아니 그건 안 되는 건가.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자꾸만 비스듬히 올라가는 입꼬리에 힘을 주고 다음 말을 시작 하는 그의 얼굴색이 흙빛이다. 


말을 시작하면서도 그는 안다. 지금 그가 하려는 말과 직원에게 다가갈 그의 말은 이미 상영을 시작한 영화의 결말 같은 거라고. 그가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그의 마음과 직원의 마음이 통하고 그래서 결론이 달라질 일 같은 건 없을 거라고 말이다. 서로의 다름을 그 차이를 거듭 확인할 뿐이고 그 차이가 빚어낸 오해로 넘실대는 이야기 속을 그와 직원이 각자 헤맬 뿐이라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도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다’로 말을 시작해야 하는 게 그의 자리다. 그 말이 담고 있는 진심은 상대방이 솔직하게 말했다는 것 정도. 고맙긴 뭐가 고마워. 그는 직원이 한 말 중에서 도저히 사실이라고 할 수 없는 부분을 짚고, 그 상황과 맥락에 대한 설명을 하고, 이런 말을 듣게 되어 무척 당황스럽고 속이 상한다는 마음도 전해보려고 애를 썼다.  


“말씀 잘 들었고요. 뭐, 저는 더 이상 여기서 일할 수가 없겠다는 확신이 드네요. 그만둘게요.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니 내일까지 이틀 시간을 드릴게요.”

그래, 그랬었지. 서로 잘해보자고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본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었지. ‘아, 오늘 점심은 특별히 맛있는 걸 먹어야 하는데 뭘 먹지.’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그는 숨을 쉰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 덕분에 그는 그나마 여기 멀쩡히 앉아있다.   


상. 황. 수. 습.

이제 그가 할 일을 부르는 그럴듯한 말이다. 그리고 그의 전문이라고 일컬어지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감정을 쏟아내는 사람이기보다는 바닥에 함부로 떨어진 감정과 거친 말을 주워 담아서 분류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는. 

그는 마음을 비운다. 이 일에 자신의 기분이나 마음이나 감정 같은 것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도록. 만약 그런 게 조금이라도 들어온다면 결코 그는 이 일을 해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심호흡 하기 그리고 거리를 두기, 그가 하는 일이 곧 그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기. 입는 옷이 그를 말해주는 전부가 아닌 것처럼, 그가 하는 일은 그저 그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적어도 감정에 못 이겨 함부로 말을 쏟아내는 직원과 같을 수는 없으니까.

그는 곳곳이 뚫린 자루를 하나 들고 거기에 미움과 원망 그리고 상처받았다고 떠들어 대는 말을 집어넣는다. 뚫린 구멍으로 자꾸 비어져 나오는 감정을 아무렇지 않은 채하면서 쑤셔 넣고, 이제 이 자루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생각한다.  


점심은 부대찌개가 좋겠다. 부대찌개에 있는 햄과 라면과 다진 고기 사이에 이 자루에 담긴 것들을 다 풀어 넣고 한소끔 푹 끓여서 먹고 마는 거다. 그거면 그는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테지.


작가의 이전글 나란 사람 사랑 설명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