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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Sep 08. 2022

고단한 남부장

이중 문건 hwp

그는 자주 메일을 보냈다. 

업무를 전달하는 내용이 태반이래도 그는 편지처럼 메일을 썼다. 뭐 이렇게까지 싶게 정성을 담았다. 메일엔 소소한 유머도 있고 감사한 마음이 있고 격려의 말이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는 이런 메일을 팀원들에게 보냈다. 그날 보낸 메일도 그런 것 중 하나였다. 인쇄된 이메일이 휴게 공간에 놓이기 전까지 말이다. 메일이 이중 문건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중 문건]      


모든 악몽이 시작된 이후에 그는 종종 자신에게 물었다.   


‘어쩌다 그 메일이 인쇄된 걸까.’ 

‘인쇄된 메일은 어쩌다 휴게 공간에 놓였을까.’ 

‘최초에 그걸 발견한 사람은 누구지?’ 

‘그걸 주변 사람에게 돌려 보자고 한 사람은 누구일까.’ 

이 모든 질문이 향하는 곳은 결국 이것이었다. 

     

‘내가 쓴 메일에 무슨 문제가 있나.’ 


한 달 후 간담회 자리에서 그의 메일이 이중 문건이라며 공개되었을 때 그는 화면을 보면서도 그것이 자기가 쓴 메일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곳곳에 형광펜이 칠해져 있고, 그 문장의 속뜻이라고 화살표로 표시하며 주석을 달아놓은 문서를 보았을 때 그는 그저 멍했다. 특히 이 문장이 짙은색으로 강조가 되어있었다. 

[.. 이건 우리만 알고 있으면 되겠어요..]

그의 메일을 사납게 공개한 사람들은 전후 맥락에서 읽혀야 할 이 문장을 두고 이중 문건이라는 걸 보여주는 핵심 증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저게 왜 저기서 나오지?’ 

이게 노래 가사 때는 우습기라도 했는데 저기서 나올 리가 없는 메일이 나오는 상황은 조금도 우습지가 않았다.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가 등을 냅다 후려갈긴 것처럼 얼얼했다. 자신을 향해 쏟아진 시선을 느끼며 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만큼 그의 입술은 핏기를 잃어갔다. 그가 쓴 메일이 공개되었다는 사실에 그는 부끄러웠다. 그게 이중 문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무서웠다. 팔에 오소소 돋은 소름을 쓸어내리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화면을 쳐다보면서도 그는 부끄럽고 무서웠다. 이게 뭣들 하는 짓이냐고 소리를 빽 지르고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무섭고 부끄러워서. 


이후 추가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십여 명의 사람이 한 달 전부터 그가 쓴 메일을 돌려 보았다는 것. 그 사람 중 어느 한 사람도 매일 같이 얼굴을 마주하는 그에게 사실을 전하지 않았다는 것. 그에게 그 사실을 전하기는커녕 그 메일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폭로할까 고민했다는 것. 모여서 의견을 모으고 방법을 찾는 회의를 했다는 것.  

그는 한 달 동안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함께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그 사람들이 그에게 품고 있었을 속마음을 상상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부끄러웠다. 진즉 색을 잃은 그의 입술은 곳곳이 부르트고 물집으로 빼곡했다.  


부끄러웠기 때문에 그는 매일같이 사과했다. 사과를 하려고 마음먹으니 잘못한 일 투성이었다. 이런 메일을 쓴 것에 대한 사과는 이런 메일을 쓰려고 마음먹은 것에 대한 사과로 나중엔 여기에 그가 있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로까지 나아갔다. 사과를 하면 할수록 그의 진심은 저울에 올려졌다. 미안하다는 그의 말에 정말이냐는 질문이 날아왔을 때 그는 스스로가 다트판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슴에 1점부터 10점까지의 과녁을 품고 있는 다트판. 그의 사과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은 1점짜리 타격을 주기도 10점짜리 타격을 주기도 했다. 화살을 날린 건 그들인데도 그걸 그렇게 맞고 있어서 되겠느냐는 말까지 쏟아졌다.  


그의 거듭된 사과를 비웃기라도 하듯 메일은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갔다. 담당 부서에서 시작해 담당 의회로 급기야 법원으로. 뜻밖의 사람이 그의 메일에 대해 안다고 해도 이제 그는 처음처럼 놀라지 않았다. 멍하지도 무섭지도 부끄럽지도 않았다. 뭘 느낄 새가 없었다. 매일 같이 다양한 항의와 비난이 쏟아졌다. 그의 뜻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는 그가 뭘 잘못했고 뭘 사과해야 하는지도 헷갈렸다. 다트판이 된 그의 가슴팍은 사람들이 집어던지는 화살로 온전한 데가 없었다. 

시간이 우습게 지났다. 우습게 지나는 시간을 알아채지도 못했다. 그의 시간은 메일이 공개된 그 순간에 멈춰있었다. 아니 그의 시간은 그 순간의 무한 반복이었다. 메일이 공개됐다 이어서 사람들이 이중 문건이라고 비난한다 그리고 그는 사과한다 이어서 메일이 공개되었다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하루. 


사과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날을 겪고 보니 이젠 그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그는 억울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한참 전에 도를 넘은 사람들의 비난에 대해 새삼스럽게 화가 났다. 

‘씨발, 니들이 뭘 안다고 함부로 떠들어?’ 

그제야 그는 벌건 얼굴을 벅벅 문지르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르튼 입술을 거칠게 물어뜯었다. 입술에선 빨간 피가 흘렀다. 짭조름한 피 맛을 느끼며 그는 이를 악물었다. 이어서 그는 들을 귀가 없는 사람에게 사과하는 것을 멈췄다. 그의 한마디를 열 번씩은 꼬아대는 사람들을 향해 입을 다물었다. 그는 더 이상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하루 그리고 하루를 손가락으로 세어가며 버텼다.  




일 년 후 상황을 마무리하고 그곳을 떠났다. 그제야 모든 일에 끝이 있다는 사실이, 멈춰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도 흐른다는 게 보였다. 

어두운 곳에서 프로젝터가 켜지고 이어서 화면이 환해질 때마다 두근거리던 가슴이 진정될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 일이 있었지 정도의 무게감으로 그때 일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 후 그는 생각한다. 

‘나는 왜 화를 내지 않았지?’  

그가 사람들에게 너무 쉽게 사과했다는 뒤늦은 후회였다. 그를 지키기 위해 필요했던 건 사과가 아닌 분노였는데. 함부로 그에게 화를 쏟아내는 사람들을 향해, 멱살을 움켜쥐는 것처럼 날것의 말을 쏟아붓는 사람들에게, 똥을 싸듯이 생각나는 대로 떠들며 억지를 부리는 사람에게 그는 왜 화를 내지 않았나.

생각을 하다 보니 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붉은 그의 얼굴은 조금의 부끄러움도 담고 있지 않았다. 지금 그의 얼굴을 빨갛게 만드는 그 피는 순도 높은 분노로 가득했다. 붉어진 얼굴조차 부끄럽지 않다. 일 년 전 그에게 필요한 건 이런 분노였다. 


법원일을 진행하기 위해 만난 변호사는 이런 말을 했었다. “같이 개똥밭에 구른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해요.” 들을 당시엔 너무 과장하는 거 아닌가 싶었고 실제로 해보니 변호사와 함께 구른 건 개똥밭이라기보다는 문서 밭에 가까웠다. 그의 주변엔 쓰고 다시 쓰고 고쳐 쓰기를 반복하면서 쌓인 문서가 가득했다. 

이제와 그는 생각한다. 그때 개똥밭에 구른다는 건 그를 향한 서슬 퍼런 분노에 시뻘건 분노로 맞서는 것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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