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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Sep 13. 2022

고단한 남부장

누울 자리 ppt

아침부터 혼자서 중얼거리는 남부장. 

이게 다 이곳을 누울 자리로 생각하는 직원들 때문이다.         


작은 이벤트 회사에서 올해로 근속 10년 차인 그는 안다. 대부분의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세상에 그렇게 특별한 일은 없다는 걸 말이다. 일은 그냥 일이다. 그걸 아무리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해도 그 순간 그 일이 특별해지는 건 아니다. 홍보고 경영이고 인사고 회계고 이런 일이 분야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 사람이 하는 일 인 거다.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각자 다르다고, 특별하다고 하는 그 일을 그가 조금씩 다 해봤기 때문이다.  

10년 전 그를 포함해 세 명이 시작한 회사에서 지금은 50명이 일한다. 그 사이에 그는 처음에는 사업 운영을 하고 그다음에는 회계를 담당하고 다음에는 노무를 담당했다. 홍보야 뭐 그냥 사업 운영에 필요한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하게 되는 일이었다. 이 일들을 조금씩 해보면서 그는 알았다. 결국, 다 사람이 하는 일이구나 이거. 결국 어떤 일이냐 보다 어떤 사람이 그 일을 하는지가 중요한 거구나. 

안팎으로 일선에서 물러설 때가 되었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일선에 그것도 푹 빠져있는 것만 같다. 다 하는 거 그게 경영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제 그는 회사의 전체를 그러니까 경영을 그러니까 전부를 조금씩 다 하고 있는 셈이다.  

제일 먼저 출근해서 곧잘 제일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있는 이유는 그렇지 않고는 좀처럼 혼자 있을 만한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늘 일찍 출근하고 매일 늦게 퇴근하는 그를 보며 회사의 앞날에 대해 그럴듯한 계획을 세운다고 생각하려나. 그는 그저 그 시간에 혼자 자리에 앉아서 숨을 쉰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보니 아차 싶은 게 있다. 

‘아 맞다. 직원들은 나한테 관심이 없지? 암, 그렇고말고.’ 


제일 멀리 살지만 제일 일찍 오는 P가 도착했다.

“부장님, 안녕하세요” 

늘 ‘안녕하세요’에서 ‘안녕’은 그를 빼꼼히 쳐다보면서 하고 ‘하세요’는 저만치 걸어가면서 인사를 하는 P. 사계절 내내 그가 출근할 땐 얼음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들리면 P가 왔구나 했다. 이미 저만치 걸어간 P의 뒤통수에 인사를 하고 그는 모니터 전원을 누른다. 그가 오늘 해야 할 일과 굳이 오늘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구분하고 그가 만나야 하는 사람과 만나지 않아도 되지만 만날 약속은 잡아야 하는 사람들을 빈 일정 사이사이에 집어넣고 보니 어느새 직원들의 자리가 거의 찼다.


“안.. 명.. 하. 세.. 요..” 

인사라기보다 혼잣말에 가까운 소리를 웅얼거리며 자리에 앉는 J. J가 출근했다는 건 전 직원이 출근을 했고, 누군가는 일을 시작했고, 어느 팀에서는 회의를 시작했다는 뜻이다. 늘 제일 늦게 사무실에 도착하는 직원 J, 늦은 건 본인인데 주변의 애를 태우고 눈치도 보게 하는 J, 팀장 회의에서 종종 J에 대해 담당 팀장이 고민을 털어놓곤 했다. 그래도 좀 지켜보자고, 일은 정성껏 하는 편이니 시간을 두고 고민해보자고 팀장을 달래면서 왔는데 그런 J가 그만두겠다고 하면서 팀장에게 모진 소리를 한 모양이다. 이 일로 담당 팀장까지 그만두겠다고 나선 참이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잊고 있던 두통이 다시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이고 머리야.  

J를 보니 새삼 K가 생각났다. 그에게 ‘누울 자리’라는 화두를 던져준 K가 말이다.



K는 늘 늦었다. 

그때만 해도 그는 억압적이지 않고 부드러운 직장 상사의 모델이라는 환상에 빠져있었다. 작고 사소한 직원의 제안에 열려있는 모습과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팀 분위기를 만드는 것. 그렇게 팀워크도 좋고 성과도 좋은 팀을 만드는 것. 그 당시 그는 지금이라면 듣는 순간 의심부터 하고 볼 이 말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제 롤모델은 남 부장님이에요.” 혹은  

“저는 남 부장님 보면서 진짜 많이 배워요.” 혹은  

“제가 이 일이 힘들어도 계속하는 이유는요, 남 부장님 때문이에요.” 이런 종류의 말 말이다.  

그래서 그는 K의 지각에 대해서 관대했다. 조금 늦는 거야 뭐, 조금 지각하는 거야 뭐, 쿨하게 넘겨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렇게 관대함을 베풀면 K의 지각도 서서히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의 기대와는 달리 K의 지각은 제시간에 왔다는 것이 뉴스가 될 만큼 잦아졌다. 일주일에 3일 이상 늦기도 하고 처음엔 10분이었던 지각이 60분이 넘어가기도 했다. 그때를 돌아보며 그는 자신에게 질문했다. 

‘조금씩 매일 늦는 것과 가끔 많이 늦는 것 중에서 뭐가 더 해로울까’

지금의 그는 답이 바로 나온다. 

‘고르고 말고 가 뭐가 있어. 그냥 다 해롭지’

그렇게 지각이 일상이 되는 걸 보니 K의 지각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어 따로 불러 몇 마디 조언을 했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회사 전체 워크숍을 가는 날, 합정역 3번 출구에서 비좁은 봉고차에 전 직원이 한 시간 동안 K를 기다렸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자리에 앉은 K는 워크숍 장소에 도착하기까지 쭉 잠을 잤다. 그런 K를 보면서 오히려 그가 몸 둘 바를 몰랐다.   

(빼기엔 너무나 악습관이긴 하나) 늦는 것만 빼고 K는 일을 곧잘 했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새로운 제안을 하며 일에 정성을 쏟았다. 그랬기에 늘 늦는 K와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래 좀 늦으면 어때’ ‘조금씩 나아지겠지’ ‘그래도 할 일을 안 하는 건 아니잖아’라고 그는 자신을 달랬다. K를 달래서 제시간에 출근하게 하는 것보다 그 자신을 달래는 게 더 쉬웠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K가 갑작스레 퇴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K가 우물쭈물 대답했다. 

“그게.. 저는 여기서 일하는 것도 좋고 일도 재밌어요. 근데.. 엄마가 성당 아는 분 소개로.. 지금도 좋긴 한데 거기서 일해보는 것도 저한테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요.” 

지금 하는 일이 좋고 재밌다고 말하면서는 살짝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소개해 준 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뜻밖에 대기업의 이름이 나왔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아직 젊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을 테니까. 거기서 잘해봐.” 

그는 기쁜 마음까지는 아니어도 K의 앞날을 기원했다.      


시간이 지난 후 K와 여전히 가깝게 연락하며 지내는 직원에게 K의 안부를 물었다. 사실 그는 이게 가장 궁금했다. 새로운 회사에서 K는 지각을 할까, 안 할까. 

“아, 그 회사는 삼진아웃제? 뭐 그런 게 있대요, 회사에. 

지각을 할 때마다 표시가 되고, 세 번 지각하면 뭔가 문제가 좀 복잡해지고 그런가 보던데요?  

근데 K가, 그렇게 늦던 K가,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늦었다는 거 있죠?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부장님?”  

해맑게 그 소식을 전하는 직원에게 하나도 안 신기하다고 말할까 하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 그의 머리에 번뜩이며 떠오른 단어는 이거였다. 


‘누울 자리’   


여기가 K의 누울 자리였구나라는 생각 말이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직장이 직원의 누울 자리가 된다는 게 뭐 나쁘기만 한 일일까. 그게 직원들이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며 일하는데 도움이 된다면야. 그런데 K의 경우를 생각하고 J의 경우를 보니 그렇게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K가 그리고 J가 누울 자리라고 생각해서 한 행동이 누군가의 배려와 누군가 더 많은 일을 해서 얻어진 것이라면 그건 문제다. 다른 직원이 앉을자리를 빼앗은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이번에 그만둔다는 J에게 이 문제만큼은 명확하게 전달을 하리라 그는 다짐한다. J가 다리를 뻗은 그 자리는 누군가가 그만큼 서 있거나 자리를 내어준 덕분이라는 걸 꼭 전하고 말리라. 모두가 서 있을 필요는 없지만 누구 하나만 누워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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