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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Sep 18. 2022

고단한 남부장

전지적 관찰자 시점 xlsx

혹시 전지적 관찰자와 함께 일해본 적이 있는지? 이런 사람과 동료가 되었을 때 불쑥불쑥 터지는 분노와 살 떨리는 외로움을 아는지. 


“제가 볼 때 이 문제를 그냥 덮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회계 측면에서 볼 때 이건 분명 문제거든요. 어떤 맥락에서 이렇게 하셨고, 이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도 이해는 하죠, 제가. 근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알 듯 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C의 말을 들으면서 그는 정훈희의 노래 ‘안개’를 떠올렸다. 차라리 이 말이 안개라면 그렇다면 말이 되는 것 같은데 말이다. 노랫말이 떠오른다.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가다오’ 제발, 바람이건 소나기건 우박이건 C의 말에 담겨있는 이 안개를 걷어가다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에 C는 빠르게 답했다. 

“그건 제가 모르죠. 제가 쉽게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요. 저는요, 그냥 그렇다는 말씀만 드리는 거예요.”  

C의 대답을 듣고 그는 영화 ‘올드보이’ 속 오대수가 떠올랐다. 어딘지 모르는 곳에 잡혀 들어온 오대수의 첫날, 그리고 십오 년 만에 영문도 모르고 풀려난 오대수의 또 다른 첫날 그가 느꼈을 감정이 손에 잡힐 것 같았다. 당황스럽고 황당하고 어이가 없고 화도 나고 그런 거 말이다. 

그러니까 C의 말은 문제라서 말을 하긴 하는 거고, 왜 문제가 된 건지는 공감을 하는데,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말을 못 한다 이건대 말이다. 결론은 그에게 문제를 알고는 있되 문제의 해결 방법은 혼자 찾으라는 건데 말이다. 힌트 없냐고 물어보면 혹시 C가 말해 줄까 생각하는 찰나 앞에 앉은 C는 어서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엉덩이를 들썩였다.  

당연히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관리자이자 책임자인 그 자신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그 업무의 담당자라면 해결 방법을 말 못 해 줄 건 또 뭔가. 그래서 해결 방법을 알겠다는 건가 말겠다는 건가, 알지만 말 못 하겠다는 건가, 몰라서 말 못 하겠다는 건가. ‘아, 좀 쉽게 간편하게 말할 수는 없는 건가.’ 이제 그만 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에 사뿐히 일어나 제 갈 길 가는 C의 뒷모습이 얄밉다.  

가끔 그는 같이 고민할 거 아니면 그냥 입을 다물라고 직원들에게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문제 해결을 위한 첫 번째가 문제의 발견인 건 맞지만 그게 다는 아니지 않은가. 문제를 발견했다고 이게 문제인지 알았냐고 신이 나서 떠들다가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냐는 질문이나 함께 해결해보자는 제안에는 들은 척도 안 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다들 정말 아는 거 많아서, 잘나서 좋겠다, 아주, 좋겠어.’ 

이런 생각을 하는 그의 뒷 목이 뜨겁다. 

저만치 자리에 앉은 C의 책상에서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마저 얄밉다.  

첫 번째 타다닥이 ‘문제야’로,    

두 번째 타다닥이 ‘난 몰라’로,

세 번째 타다닥이 ‘메 에롱’으로,

C의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그에겐 이렇게 들렸다.  


이럴 때마다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를 대나무 숲을 찾을게 아니라 대나무를 심었더라면 지금쯤 몇천 평에 달하는 대나무 숲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꽤나 진지하게 하는 그.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땅을 알아봐야지.       




“저는요, 이게 안될 줄 알았어요. 이렇게 해서 될게 아닌데 싶더라고요? 근데 그렇게 하기로 했으니 제가 뭐 어쩔 수 있나요. 근데 보세요. 결국 이렇게 됐잖아요?”  

프로젝트팀까지 꾸려서 3개월간 매달려 회생을 시켜보자고 했던 사업을 결국 철수하기로 했을 때 다른 사람도 아닌 그 프로젝트팀의 일원이었던 Y가 말했다. 

손바닥을 들고 Y의 입술을 찰싹하고 때리는 상상을 잠깐 했다. 그 생각을 하면서 그는 잠깐 피식하고 웃어 버렸다.    

“부장님,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Y의 이 말을 듣고 그는 Y의 입술 감촉이 남아있는 손바닥을 바라봤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옛말을 빗대자면, 사공이 딴생각을 하면 결국 그 배는 아무 데도 못 간다. 그 배는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겠지. 근데 지금 Y가 하는 얘기는 딴생각을 넘어서 ‘에이, 제가 언제 그 산에 가고 싶댔어요? 그냥 배 타래서 탄 건데요 뭐’라는 건데 말이다. 차라리 사공이 많은 편이 낫겠다. 적어도 그 배는 산을 향해서라도 가긴 가지 않나. 

진즉 Y에게 “야, 너 내려”라고 말하지 못한 그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Y의 입술을 찰싹 때리는 상상 정도로는 해결이 안 되겠다. 거래처 미팅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겠다는 Y의 다리를 걸고, 넘어지는 Y가 내미는 손을 살짝 모른 척하고, 한바탕 나뒹구는 Y의 모습을 상상하며 함박웃음 짓는 그. 그의 상상이 한참이나 길고, 꿀처럼 달다.  




그는 C가 말한 문제라는 것과 Y가 말한 잘 안될 줄 알았다는 일에 대해서 생각한다. 

C가 말한 문제라는 것은 분명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해결 방법을 찾고 그걸 시도할 때쯤 C는 이렇게 말하겠지. 

“저도 그렇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 같긴 했어요. 근데 부장님 그거 아세요? 그렇게 해결하면요, 다른 문제가 생길 수도 있거든요.” 

더 좋은 방법이 있겠느냐는 그의 질문에 아마 C는 이렇게 답할 거다. 

“아니요, 저는 그냥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조금도 신선할 것 없는 기운만 빼버리는 지겨운 레퍼토리.  


Y는 아마 어떤 사업에 투입되고 좋은 결과가 나오게 되면 이런 말을 할 거다. 

“안 그래도 이 사업이 잘 될 것 같더라고요. 딱 보니까 그럴 거 같았어요 어쩐지.” 

참, 말이 쉽다 쉬워. Y가 이렇게 말을 하면 입술을 찰싹 때리고 넘어지게 다리를 거는 것이 어째 그의 상상으로만 그칠 것 같지 않다.  


C와 Y 같은 전지적 관찰자가 평생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것,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의외의 곳에서 발견하는 문제 해결 방법과 원래 계획한 것과는 다른 곳에서 나타나는 뜻밖의 성과 같은 것들 말이다.  

실제로 그는 C가 문제라고 한 부분과 Y가 안될 거라고 생각한 사업의 다음을 함께할 직원들을 떠올려본다. 관찰력이 부족하더라도 상황판단이 더디더라도 같은 시공간에서 땅에 발을 딛고 대화를 하며 일을 할 수 있는 직원을 말이다. 관찰자가 아닌 당사자가 될 사람을 말이다.   

  

관찰자들은 저만치서 또 어디 다른 걸 관찰이나 하고 있으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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