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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Sep 29. 2022

고단한 남부장

돌 I와 어린 E. psd

누구의 딸이거나 아들이거나 할 

그의 곁을 스친 돌 I와 어린 E에게.  



S는 돌 I다.

S는 일을 좋아한다. 그리고 잘한다. 그건 아마  S도 알고 있을 거다. 나서서 본인이 한 일에 대해서 조잘대거나 으스대는 건 S의 스타일이 아니다. 멀찍이 떨어져서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해 은근슬쩍 만족해하는 것, 그게 바로 S다.  

S의 능력은 일이 시작되는 순간 빛을 발한다. 계획을 세우고 일정을 관리하고 해야 할 업무를 정리하는 것. 그건 S가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다. 체계적으로 일을 분배하고 험한 일에 앞장서는 편이니 S와 일하는 걸 어느 누가 마다할까. 믿음직한 사수와 함께 일할 때의 안정감과 편안함. 어떤 일이라도 S에게 맡기면 걱정이 없다. 어쨌든 뭐가 되긴 할 거다, 그 일이. 적어도 중간에서 사라지거나 감감무소식이 되는 일은 없을 거란 얘기다. 

그런 S는 계획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 별안간 돌 I가 된다. 깔끔하고 섬세하게 일을 하던 평소의 익숙한 S의 모습은 오간데없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다. 문제는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순간은 꽤 자주 찾아온다는 거다. 모든 일은 원래 계획대로 안 되기 마련이지 않은가. 그러니 S는 자주 돌 I가 되고 만다.  

그때의 S를 많고 많은 단어와 표현 중에 하필 돌 I라고 하느냐고? 

S는 우선 입을 다물고 귀를 닫아 버린다. 어떤 말도 듣지 않을 거고 어떤 말도 하지 않겠다는 기백이 S에게 흘러넘친다. 누구의 말도 듣지는 않지만 희한하게 어떤 말도 놓치지는 않는다. 주변의 말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도통 말을 쳐 듣지 않는다. 그럴 때 S는 녹이 잔뜩 슬어서 열리지 않을게 뻔해서 만지기도 싫은 자물쇠 같다. 그 자물쇠를 억지로 열려고 부수려 들면 S는 불같이 덤벼든다. 어쭙잖게 S의 자물쇠를 열려고 드는 사람을 보며 그는 혼잣말을 한다. ‘님아, 그 문을 억지로 열지 마오.’ 그 문을 열었을 때 당신은 S가 왜 돌 I인지를 깨닫게 되리라. 그걸 깨닫고 돌아설 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꼭 기억하길 바라는 바다. 

그러니 돌 I가 되어버린 S앞에서 한마디도 쉽게 건넬 수가 없다. 이쯤 되면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체계적이고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던 S의 업무 스타일이 창살 없는 감옥처럼 느껴진다. S와 이야기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오는 다른 직원들을 보면 이해가 된다. 


이번에도 S가 이리저리 궁리하며 정성을 쏟던 일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S 주변의 공기가 묵직하게 가라앉는 게 느껴진다. 침수가 시작될 때 바닥에 언뜻언뜻 물방울이 생기다가 어느 순간 돌아보면 발목까지 물이 차 있는 것처럼, 무서운 속도로 쌓여가는 묵직한 공기. 

그 무거운 공기를 뚫고 똘똘하지만 눈치가 좀 없는 인턴이 걸어와 사뿐히 자리에 앉는다. 인턴이 이 무거운 공기를 바꿔 줄 수 있지 않을까를 기대하는 찰나 인턴이 S에게 다가가 묻는다. 

“팀장님, 식사하셨어요?”   

“...” 

“팀장님? 팀장님? 식사하셨어요?” 

“어.. 어..” 

“팀장님, 바쁘실수록 잘 챙겨 드셔야 해요. 세끼 챙겨 먹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괜히 사람을 하루 세끼 챙겨 먹게 만들어 놓은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죠? 그러니까 팀장님 바쁠 때일수록 잘 챙겨 드세요.”  

“... 저기, 미안한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래?” 


‘어이구. 저.. 저.. 돌 I 저거 저거.’

울상조차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인턴을 향해 그 마음 S는 몰라도 내가 알아주마 라는 마음을 담아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에는 얼마나 저 상태가 지속될지, 부디 이 일이 잘 풀리기만 바랄 뿐이다.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던 일일수록 아주 사소한 것이 계기가 되어 금세 마법처럼 일이 풀리는 것처럼. 돌 I가 아닌 일 좋아하고 잘하는 S로 돌아오겠지. 이번엔 부디 그 시간이 빨리 찾아오기를 바랄 뿐. 



M은 어린 E다. 

어디를 가든 M의 자리는 가장 주목을 받는 자리, 바로 센터다. M의 곁엔 늘 사람이 모이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쾌활하고 사교적인 성격 탓에 거래처 사람들은 M과 곧잘 친구가 된다. 어느 누가 M을 싫어할까. 사방으로 퍼지는 그 매력을, 감춘다고 쉬이 감춰지지 않는 그 빛나는 에너지를 말이다. 어떤 일이라도 M에게 맡기면 마음이 편하다. M은 결코 고개를 가로젓거나 얼굴을 붉히는 법이 없다. 어려운 일이어도 새롭고 좋은 측면을 찾아내는 M이 그는 늘 고맙다. 모두가 그와 눈이라도 마주칠까 혹시라도 그 일이 자기에게 떨어질까 겁이 나서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기 바쁜 회의 자리에서도 M은 누구보다 빠르게 그와 눈을 맞추고 누구보다 길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M과 일하는 걸 좋아한다. M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 것 같다. M은 팀원과 금세 합을 맞추고 분위기 좋게 일을 끌어 나간다.  

그런 M이 어린 E가 되어버리는 순간은 서서히 찾아온다. 벌려놓은 일이 어느새 쌓여 있을 때, 재밌을 것 같았던 일이 생각만큼 안 풀릴 때, 한참 남았다고 생각한 마감일이 다가왔을 때.  M은 커튼이나 책상 아래에 머리만 가리고 모두 숨은 것처럼 생각하는 아이들처럼 어린 E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숨어버린 M의 곁에 M이 재미있겠다며, 신나게 해 보겠다고, 자신하며 가져간 일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그 일은 시작조차 되어있지 않거나, 전혀 다른 결과를 향해 가거나, 도통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일까. M과 회의를 하고 나온 사람들의 얼굴에 피곤이 가득하다. 누군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도 한다. 그 가운데서 M은 어쩔 줄 모르고 쓰러지듯 자리에 몸을 파묻는다. 커피 한잔 하자는 제안에 기꺼이 따라나서는 M의 뒷모습이 애처롭다. 저길 따라 갈게 아니라 그냥 자기 할 일을 하면 좋으련만. 당장 M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은가 보다. 그게 바로 M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M은 힘을 얻고 벌려 놓은 일을 누구보다 즐겁게 또 기꺼이 처리할 거다. 어느 순간 M은 그렇게 자기의 자리, 바로 센터의 위치를 되찾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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