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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Oct 09. 2022

고단한 남부장

일이란 건 말이야. pdf.

H 팀장 옆에 나만 남았다. 

오늘도, 또, 어김없이. 

다들 어떻게 티 안 나게 용케 자리를 피해 갔을까. 지금쯤 집으로 향하는 택시, 전철, 버스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동료들이 부럽다. 자리 없어서 앉아있지 못해도, 심지어 붐벼도 부럽다. 부러워 진짜.      


H 팀장은 꼭 고장 난 시계 같다.  

다음 숫자를 향해 넘어가려고 바들바들 떨면서 애를 쓰다가도 끝내 다음 초침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긴 바늘처럼. H 과장은 좀처럼 다음으로 넘어갈 줄을 모른다. 회식만 해도 그렇다. 주변의 사람들이 슬슬 눈치를 보면서 자리를 뜨는데 왜 가지를 않니. 왜 눈치를 못 채니. 맞은편 애들끼리 때론 테이블을 넘나들며 서로 눈짓으로 고개 절레절레하는 거 H 팀장 당신 빼고 다 봤어.       


창밖을 이렇게 넋을 놓고 바라보면 불쌍해서라도 보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동물원 우리에 갇힌 낙타처럼 고개를 쭈욱 빼고 밖을 바라보고 있다. 어이, H 팀장, 나 여기서 이렇게 벌세울 거요?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뇨?’ 이정재가 와서 나 대신 이 말을 해주면 좋겠다, 그러면 참 좋겠다. 


“야. 그렇지 않냐?” 

아. 또 나왔다. 그놈의 ‘그렇지 않냐’ 소리. 이건 그를 둘러싼 모두가 아는 그의 말버릇이다. 누가 알려주지 않았어도 그는 첫 출근날 그걸 알았다.   

“안녕하세요. 오늘 첫 출근했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그에게 

“네,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 참 덥죠? 그렇지 않나요?” 

자리를 정돈하고 오늘 해야 할 업무를 정돈하고 있을 때 그에게 다가와 

“오늘 점심은 냉면 어때요? 오늘 같은 날씨에 첫 출근해서 먹는 첫 음식으로 냉면, 괜찮죠? 그렇지 않나요?” 

퇴근하는 그에게 

“앞으로 좀 빠르게 적응하는 편이 서로 좋을 거예요. 일은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적응을 해야 일도 잘할 거고. 그렇지 않나요?”

라고 할 때는 요즘 유행하는 말인데 그만 모르는 걸까 싶어 고개까지 갸웃했다.      

내가 지금까지 들은 ‘그렇지 않나요?’를 줄 세우면 그게 어디까지 갈까. 못해도 부산까진 가겠지.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그렇지 않나요?’와 함께해야 할까. ‘그렇지 않나요?’가 부산을 지나 일본으로 가서 그다음 대륙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눈앞에 넘실대는 찰나 이런 나의 상상은 아랑곳없이 H 팀장이 말을 시작한다.  


“너가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이니까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그렇지 않냐? 

니가 내 친동생은 아니지만 이런 말 할 정도 사이는 되잖아.”

말을 하는 H 팀장에게선 1차로 먹은 조개찜의 비릿한 냄새와 2차로 먹은 프라이드치킨의 기름 냄새가 뒤섞인 뉴에이지 풍의 생소한 악취가 났다.   

“네, 그렇죠 팀장님. 말씀하세요.” 

내가 아니라고 해도 다음 말을 했을 H 팀장. 앞에 놓인 감자튀김을 굳이 마요네즈에 찍고 이어서 케첩을 찍고 성에 안찬지 다시 마요네즈에 찍은 후에 입으로 가져가며 말을 한다.   


“그러니까. 일이란 건 말이야. 개인 프로젝트가 아니라 이거야.  

예를 들면 일은 여럿이 함께 쌓는 탑 같은 거지. 혼자 쏜살같이 달려 나가는 달리기 경주와는 다른 거야. 

그렇지 않냐?”

알듯 말듯한 H 팀장의 말이 이젠 구분하는데 의미가 없어져버린 마요네즈와 케첩 같다. 뒤엉켜버린 색 그리고 뒤섞인 말 그리고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거냐고 따져 묻고 싶은 H 팀장의 말. 애초에 이렇게 다른 그릇에 양념을 담아서 가지고 온건 이걸 섞어서 먹으라고 한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그것이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 네. 네”  

답을 빨리하면 빨리 다음 말을 할 거고 그러면 이 자리도 빨리 마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듬뿍 담아 재빠르게 답을 한다.  

“너 혼자 잘해봐야 아무 소용없는 게 일이고, 너가 나자빠져도 굴러가는 게 일이라는 거야.  

그렇지 않냐?”

내가 물어보지 않은 말에 대한 답을 하는데 거기에 뭐라고 답할 수 있겠나. 그저 자동차 앞에 있는 불독 인형처럼 빠르게 고개를 흔들면서 답하는 수밖에. 

“네. 아 네.” 

“이 일이 망해도 너 하나 어떻게 안된다는 거, 너 그거 알아야 된다?

그렇지 않냐?” 

내가 조금 전에 실수로 질문 비슷한 걸 한 걸까. 거기에 대한 답을 H 팀장은 하고 있는 건데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건가. 정말 그런 생각이 들만큼 H 팀장은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인 양 한정 없이 말을 하고 있다.  

“네. 그렇죠. 그런데요, 팀장님. 이제 시간이 늦었고, 내일 출근도 해야 하고, 그리고 다들 아까 가셨거든요. 이제 저희도 그만 일어날까요?”

“넌 꼭 얘기를 할만하면 집에 가자 그러더라?

마지막으로 나 이 말만 딱 하고 갈 거다. 니가 가지 말래도 갈 거야 나는.  

그러니까 일은 말이야. 

모든 것이기도 하고 어? 아무것도 아닌 것이기도 하다 이 말이야.

지금 이 말 좀 멋있었지? 

그렇지 않냐?”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질문한 적이 없다. 이렇게 가주기야 한다면야 H 팀장 멋있다고 몇 번은 말해줄 용의가 있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드디어 자리에 서는 H 팀장이 기특해서 엉덩이를 토닥일뻔했다. 계산을 할 필요가 없지만 H 팀장은 굳이 가게 주인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사장님. 제가 여기 진~~ 짜 좋아하는 거 아시죠? 

저를 생각해서도 오~래 오~래 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제가 여기 또 오니까요. 가게가 있어야 제가 또 올 거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문을 나서는 H 팀장.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이 제때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울 텐데, 떠나야 할 때를 한참 지난 후 H 팀장의 모습은 뭐랄까, 그저 쓸쓸할 뿐이다. 



테이블마다 피워 올리는 연기로 테이블 사이로 산신령이 걸어 나와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가게 안. 

삼삼오오 자리 잡은 직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회식 자리를 버티고들 있다. 

자리에 앉자마자 엉덩이를 들썩대며 집에 갈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 직원, 친한 사람끼리 앉으려고 서로들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작전이란 걸 짜고 있는 직원, 주목적은 대화가 아닌 음식에 있는 것을 감추지 않고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직원. 이런 자리가 없어서 늘 아쉬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막상 하면 이런 자리는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를 듣는, 그 이름 회식.

그는 누가 알아차릴까 싶어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에게 관심을 갖는 직원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그래도. “왜 먼저 가세요?”라고 질문에 대한 대답도 준비했지만 카운터까지 가는데 그를 불러 세우는 직원은 없다. 


“부장님, 저는 이런 일 하려고 여기 온 거 아니에요. 사실, 제 경력에 이런 일은 좀 아니죠. 그렇지 않나요?”  

“내가 남부장에게 갖는 기대가 커서 그런 거야. 안 그럼 내가 왜, 하고 많은 사람 중에 남부장을 그 자리에 앉혔겠나. 그렇지 않나?” 

“문제 더 커지기 전에 깔끔하게 해결해주세요, 부장님. 저 두 번 말하는 사람 아닌데 이렇게까지 말하는 거면 그나마 남 부장님이라 그런 거예요. 이건 진짜 아니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가게 문 앞에 잠깐 쪼그려 앉는 그. 회식 자리에서 먼저 일어날 때면 H 팀장 생각이 난다. H 팀장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그렇지 않나요?’가 자동 연상된다. 오늘은 H 팀장 이후로 그가 만난 사람들에게 들은 사나운 ‘그렇지 않나요?’가 떠올랐다.  


지금의 그를 H 팀장이 본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마 자기 얘기를 했겠지. 한정 없이 길게 말이다. 문득 그와 딱 한잔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그 역시 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이기도 하다는 그 말이 뭔 말인지 알 것도 같은데 말이다. 

‘그래도 직원들한테 그런 말은 안 하는 게 낫더라고요. 말해봤자 입만 아프고 그러니까. H 팀장님, 그렇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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