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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Oct 14. 2022

고단한 남부장

퉤사. ai.

봄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퇴사를 한다.     


여름

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있어 그리고 내 곁에는 니가 있어. 환한 미소와 함께, 퇴사를 한다.      


가을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퇴사를 한다.       


겨울 

하얀 눈이 내린 겨울밤에, 퇴사를 한다. 


그렇다, 누구나 퇴사를 한다. 

바로 그, 남부장만 빼고 말이다.  




늘 보내는 입장에 놓이고 보면 뭐랄까. 마음이 자주 헛헛하다. 

언제나 처음처럼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별일 아닌 척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해보기도 했다. 속상해하는 다른 동료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도 해봤다. 그래도 헛헛한 마음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퇴사 소식을 들으면 그게 아침이든 낮이든 술 생각이 간절해졌다. 술자리보다 술 그 자체를 좋아하는 그에게 술 한잔 두 잔 그리고 한병 두병은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묘약이 되어줄 터였다. 술에 취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쓸쓸함과 그로 인한 외로움으로 청승을 한도 끝도 없이 떨다 보면 그게 부끄러워서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물론 숙취와 속 쓰림이 덤으로 주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 라고 왜 이별이, 헤어짐이, 떠남이, 아쉽지 않겠는가. 

따지고 보면 후련했던 이별보다 아쉬운 이별이 많았다. (그때 그 D는 하고 많은 업무 실수를 이해하고 고만고만한 고민이더라도 내 일처럼 여기고 위로를 건넸지만 퇴사를 논의하는 자리에선 노동부에서 나온 사람인 양 권리 운운했는데 그게 얄밉고 분했다, 그러니 D는 후련한 축에 든다 하겠다. 그리고 그때 그 U는 울고 불며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려서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 하더니 그거 다 거짓말이라는 말을 한참 후에 듣고 나서 허언증이라는 건 의외로 흔한 질병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러니까 너 U도 아쉬운 이별에서 제외하겠다.) 


“스무 살이 넘고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왔어요. 이제, 제가, 원하는 게 뭔지 쉬면서 생각해보고 싶어요. 일단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면서, 제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게 뭔지 고민해보고 싶어요.”  

그가 가장 많이 들어본 퇴사 이유다. 그래, 일을 하다 보면 쉬고 싶지. 누구보다 그도 매일, 매 순간 쉬고 싶다. 

“실은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할 때도 있어. 근데 산다는 게 그런 거더라, 누구나 가슴 한편에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끊임없이 고민하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삶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가는 긴 여정...”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대고 말았다. 순간 그의 말을 듣는 직원의 텅 빈 눈이 보였다. ‘아이고 말을 말자.’ 주제가 넘어도 한참이나 넘는 그런 말은 내 일기장에 하는 편이 낫다는 걸 또 깜빡하고 말았다. 

앞에 앉은 직원이 잘 쉬면서 고민을 털어내고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진짜다) 그런데 한편으론 ‘내가 직원을 너무 몰아붙인 건가.’ ‘너무 많은 일을 준 걸까.’ 지금 풀리지 않는 고민의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그 자신이 아닐까 싶어 마음이 무겁다. 그라는 존재 자체가 커다란 고민 덩어리나 짐 그리고 삶의 무게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직원이 말하는 ‘쉼’이라는 단어에 그가 있을 자리는 없다는 게 서글펐다. 진짜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 ‘쉼’이라는 걸 위해서 가장 먼저 자리를 비워 줘야 하는 게 그 자신이라는 건가 라는 누가 뭐라 한 적 없는데도 그런 피해 의식에 휩싸이게 됐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어요. 저는 이제 다시 공부를 (또는 글쓰기를 또는 영화 촬영을 또는 결혼을 또는 워홀을 또는 이민을) 해볼래요. 더 늦기 전에 제가 정말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볼 생각이에요.”  

그의 곁을 스쳐 간 직원들의 꿈 그리고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알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퇴사를 말하는 자리에서였다.  

‘아, 원래 글이 쓰고 싶었구나’ ‘공부를 좋아했구나.’ ‘결혼... 이 하고 싶었구나?’ ‘이민이 가고 싶었구나’ 그는 꿈을 향해 나아가려는 직원의 발을 붙잡지 않고 그게 잘 될 리가 없어라는 저주를 퍼붓지 말고, 잘 보내줘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면서도 솔직한 마음으로 그와 함께 했던 시간과 함께 했던 일을 통해 직원은 결국 ‘내가 정말 바라던 일은 이게 아니었어’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것이 씁쓸하긴 했다. 그와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이 아름답고 찬란했다까지는 아니어도 지독한 현실이자 어쩔 수 없이 꾹 참고 견뎌야 했던 시간이었던 걸까. 그는 그런 속 좁은 생각을 하며 가슴을 두드렸다. 


“있잖아요, 팀장님. 

저 팀장님 참 좋아하는 거 아시죠? 

근데요, 내 딸도 팀장님처럼 살 수는 없잖아요. 

그 월급 받고 그렇게 일하면서 말이에요.”

이런 얘기도 들어봤다, 그는. 직원의 가족, 바로 직원의 엄마에게 말이다. 졸지에 그는 그 월급 받고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가만히 서 있는데 누가 오금을 칠 때 그 느낌, 그게 말로도 가능하다는 걸 그는 그때 알았다. 아, 이게 되네? 되더라. 말로도 오금을 칠 수 있더라. 


직원이 퇴사를 말하는 순간이 그에겐 꼭 이별을 당하는 순간 같다.  

보통의 이별이 아픈 것처럼 직원들과의 이별도 매번 아팠다. 말하자면 그는 이별을 당하는, 말하자면 차이는 자리에 있는 거니까. 원래 헤어지자고 한 사람은 슬프긴 해도 좀 후련할 텐데 이별을 당하는 사람은 슬프고 애통함이 큰 법 아닌가.      


‘있잖아요, 그런 말 들으니까 나도 참 아쉽네요. 이렇게 오래 일해도, 아니 어쩌면, 오래 일했기 때문에 더더욱 누군가를 보내는 게 어렵기도 해요. 그런데도 나는 막 슬프다고 떼를 쓸 수는 없는 자리잖아요. 그러니까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도 안 그런 척도 하고 그래요. 어디서든 잘해나가길 바랍니다. 여기서 함께 일했던 시간이 뒤돌아보기 싫은 그런 시간이 아니길 바라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면 참 좋겠네요. 아, 내가 좀 주제넘은 말을 했나요? 그러려는 건 아니었는데.. 그동안 수고 많았고, 나도 참 고마웠어요.’ 

그가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거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겨우 그저 짧고 뻔한 말을 하고 만다.  

“그렇군요. 그렇게 결정했다니 아쉽지만 어쩔 수 없네요.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퇴사 절차는 팀장이 자세히 설명해줄 겁니다”  

여기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직원 앞에서 자꾸 좁아지려는 마음을 조금씩 넓히려고 애를 쓰고 안으로 말려가는 어깨를 펴려고 기를 쓴다.      

 

언제쯤 이별의 순간이 좀 쉬워질까. 그런 날이 오긴 할까.  

아무도 없는 술집을 통째로 빌린 후에 내일이 없는 것처럼 술을 마시고 흠뻑 취하고만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몰래 입맛을 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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