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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Oct 31. 2022

고단한 남부장

미움 뱉지 않을 용기. hwp.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건 미움 뱉지 않을 용기다. 


#1 

사무실에 들어서며 직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늘 옷을 멋스럽게 챙겨 입는 동료가 오늘은 잘 어울리는 모자를 쓰고 왔다.  

“모자 어디서 샀어요? 되게 예쁘다.”

언제 봐도 참 귀엽고 싹싹한 친구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나 싶게 젊음의 한 시절에 있는 동료.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대도 깊게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고개를 가로저을 테지만 젊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늘 신선하고 상큼하다.  

그새 도착한 다른 동료도 말을 보탠다. 

“그러게요, 되게 잘 어울린다.”  

커피를 내리는 사이사이 출근 한 동료들과 인사를 나눈다. 어려울 것 하나 없는 이야기, 이 자리를 떠나면 모두 잊어버릴 이야기, 가벼운 말들. 본격적인 업무 시간을 앞두고 나누는 이 대화가 회사 생활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그는 아홉 시를 1분 남기고 사무실로 들어간다. 

사무실 집기 마냥 언제든 그 자리에 있는 남부장이 보인다.   

‘아유 지겨워.’ 

인사를 공중에 흩뿌리고 자리에 앉는다. 

‘왜 저렇게 일찍 오고, 왜 저렇게 늦게 가? 일밖에 없는 사람처럼. 그래, 일밖에 없기도 하겠지.’

메신저를 켠다. 그거 좀 기다리면 어디가 덧나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남부장의 메시지가 날아든다.      


[오늘 업무 확인 한번 하겠습니다.]  

-네 

[제가 곧 회의가 있고, 이어서 외근이에요. 사무실을 비우게 될 테니 업무 늘 하시던 대로 공백 없이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네 

(본인 일정이야 내 알 바 아니다. 누가 공유해달라고 했나?) 

[제가 오늘 부탁하고 확인 요청드리고 싶은 일은 메일로 보내 두었습니다. 그것은 마치는 대로 회신 부탁합니다.]  

-네 

(그냥 메신저로 하면 될 걸 메일을 보내? 이게 사람 볶는 거지 뭐야.) 

[그럼, 오늘도 수고하세요.] 

-네   


메일함을 열어 보니 그가 오늘 해야 할 일이 1번부터 5번까지 번호로 매겨져 있다. 번호를 매기는 건 남부장 특유의 메일 습관이다. 남부장은 저렇게 번호 매긴 메일을 몇 개나 쓸까. 그 번호는 몇 개까지 이어질까. 대충 봐도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시간을 끌 일도 아니지만 또 급하게 할 일도 아닌 것 같다. 얼마나 급한지는 메일에 적혀 있지 않고 따로 말도 없었으니 여유 있게 해서 보내주면 되겠지.     

 

열 명 남짓한 사람이 일하고 있는 사무실을 둘러본다. 말하자면 남부 장파라고 할 수 있는 임원급 서넛에 그 자신을 포함한 일곱 명 남짓의 평사원이 있다. 물론 그는 남부 장파와는 가까워질 마음이 없다. 왜냐? 관리자들과 가깝게 지내봤자 뭐가 좋은가. 골치만 아플 뿐이지.  

입사 전 이 기업의 사업과 사람들의 인터뷰 그리고 자료를 봤을 때 그가 추구하는 삶의 지향과 잘 맞는 것 같았다. 비주류라 분류되는 사업과 활동에 긴 시간을 보낸 역사성, 경직되어 있기보다 수평적이고 부드러운 분위기,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올바른 시선까지. 이곳에 입사 지원서를 낸 것은 그와 결이 맞고 지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마음 편히 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겪을 만큼 겪은 사회생활과 할 만큼 한 일 그러면서 든든하게 자리 잡은 토대를 바탕으로 이제는 마음 맞는 곳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했으니 말이다. 

그가 이것을 과거형으로 생각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대부분 그가 기대한 바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성원이 되고 보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건 그만큼 구성원 한 명 한 명에게 많은 책임과 높은 자질을 요구한다는 의미였다. 각자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야 사업이 굴러가고 운영이 되는 것 말이다. 기계 속 부품이 아닌 기계 그 자체가 되어야 하는 것.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책임이 부여된 일을 계속하다 보니 그나마 기대에 맞아떨어진 수평적인 분위기가 가진 매력도 뚝뚝 떨어졌다. 그럴수록 의사 결정자나 관리자에 대한 마뜩잖음은 커졌고, 수평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에 굳이 그걸 감추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관리 자선에서 결정이 되어야 하고, 어떤 일은 그렇지 않은데 그 구분이 관리자들만 공유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가 볼 때는 도무지 일관적이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생각을 고쳐 먹었다. 앞서 다른 곳에서 일한 것처럼 딱 그만큼만, 할 만큼만 해야겠다고. 그리고 곧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리라. 

역시 사람도, 일도, 조직도 겪어봐야 아는 것이다. 까마득히 긴 시간 일을 해왔는데도 그 단순한 진리를 쉽게 까먹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메신저를 켠다. 평사원들의 메시지가 날아든다. 

[자리에 앉자마자 배고픈 거 있죠?] 

-하하하. 그럴 수 있죠. 점심 뭐 먹을까요? 

[그러게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으세요?]

-지난번에 공사하던 거기 식당 생겼더라고요. 거기 가볼까요?

[아 진짜요? 새로운 식당 너무 소중하죠. 우리 오늘은 거기 가봐요. 제가 다른 사람들한테도 물어볼게요~]  

-밥 먹고 커피는 제가 살게요. 지난번 점심 먹을 때 카드기 안돼서 계산 못했으니까. 히히 

[호호호. 네네~]  

끝도 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대화. 이런 가볍고 소소한 대화들을 나누며 오늘 하루를 버틸 힘을 얻는다. 이제 남부장이 그에게 준 1번의 일을 시작한다.  




#2

어제저녁에 그가 끄고 간 전등불을 오늘 아침 다시 그가 켠다. 

텅 빈 사무실 불을 켤 때면 사무실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무실에게 무탈한 지난밤과 또다시 시작될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기분. 자리로 가는 길에 공기 청정기 전원 버튼을 누르고 노트북 전원을 켠다. 사무실에 있는 물건은 일어나란 소리에 미적대거나 짜증으로 답하던 어린 시절의 그와 다르다. 그냥 깨우는 대로 일어난다. 물건이니까, 사람이 아니니까.  

사무실 양쪽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벌써 연말, 차가운 바람이 분다. 10분 이상의 환기가 어려운 때가 왔다. 벌써 말이다. 커피를 한잔 내려서 자리에 돌아오니 그새 노트북은 일할 준비를 마치고 환한 화면으로 그를 맞이한다.  

가장 먼저 메신저를 켜 두고, 다음으로 메일함을 확인한다. 하나씩 일과 그를 연결하기 시작한다. 텅 빈 사무실에서는 이마저도 그저 평화롭다. 메신저에 갑자기 날아들어 쌓이는 컨펌 건도 없고, 비울 새가 없이 채워지는 각종 요청 메일도 없다. 

하루의 계획을 세운다. 캘린더를 열어두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노트에 항목별로 적는다. 네 가지 파트에서 파트별로 다섯 개씩의 일이 있는 날이다. 직접 해야 할 일과 직접은 아니지만 함께 해야 할 일들까지. 어째 적다 보니 일이 계속 늘어나는 기분이라 잠깐 멈춘다.   

볼펜을 잠시 내려 두고 있는데 불현듯 어제 그를 괴롭힌 말이 떠오른다. 


“어차피 그건 제가 상관할 바는 아니니까요.” 

상관할 바가 아니면 애초에 말을 하지 말았어야지. 상대방 찝찝하라고 대놓고 던지는 이 말이 어제 그리고 오늘 그를 따라다닌다. 말을 듣자마자 기분이 상했으면서도 왜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그 자리에서 따져 묻지 않았다. 그래 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고 그렇게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대화가 지겨웠다. 대신 수고가 많았다는 한마디를 던졌다. 그 말을 하며 직원을 보니 눈에서 시베리아 벌판에서나 불어올 찬바람이 휘휘 돈다. 그 눈을 보고 있자니 수족냉증까지 도질 것 같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화나게 했을까. 그걸 알고 싶지도 않다. 지겹다 지겨워. 새삼 스위치를 누르면 켜지는 전등이, 손잡이를 돌리면 열리는 문이, 이렇게 그가 하는 대로 군말 없이 따라오는 사무실 집기들이 고맙다. 

싫어할 걸 뻔히 알면서도 일을 시키고, 빠듯한 일정이란 걸 알면서도 마감일을 정하고, 늘 하던 일에 새로운 일을 보태는걸 그도 막 좋아서 환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렇게 해야 일이 돌아가고 회사가 운영될 수 있는 걸 말이다. 그의 이런 고민까지 직원이 공감해주길 바란 건 이미 한참 전의 일이다. 그건 그의 욕심이란 걸 이제는 잘 안다. 그리고 그의 결정과 지시에 대해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거절하거나 일을 조율하는 건 언제든 환영한다. 그리고 뭐든지 최선의 선택과 결정을 하는 건 아니니 말이다. 

그가 지금도 참기 어려운 건 따로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혹은 ‘너는 떠들어라, 그 말에 내가 꼼짝하나 보자.’라는 식의 태도와 말. 이런 말과 태도를 보고 있으면 그는 진이 빠진다. 어제 그가 들은 그 말 “그건 제가 상관할 바는 아니니까요.”는 ‘그러거나 말거나’와 ‘너는 떠들어라’의 환장의 컬래버레이션 같은 거였다. 마음에는 들지 않은데 그걸 적극적으로 해결할 생각도 없다는 것. 그리고 마뜩 찮은 이유에 대한 원인과 결과에 대해 그에게 공을 내던지듯 던져 버리는 것. 

시계를 흘끗 쳐다보니 직원들이 출근하기까지 이십여분 밖에 남지 않았다. 이 말은 이 고요와 평화 역시 이십 분 후면 모두 끝날 거란 얘기다.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은 후에 예약 메일을 보낸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일찍 업무를 시작하지 않으면 그는 직원들에게서 밀려 올라오는 컨펌 요청과 쏟아져 내려오는 거래처와 경영진의 지시사항 사이에 납작하게 눌려 버리고 말 거다. 예전에 본 영화에서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본인이 조절할 수 없는 상황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주인공은 허공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사는 게, 숨이 차요.” 그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그에게 그 말은 가슴 아픈 묘사로 다가온다. 

그 역시 자주, 사는 게 숨이 찬다. 


예약 메일을 보내고 아홉 시가 다 되었다. 조금 일찍 도착한 직원들은 탕비실에 모여 재잘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때는 그도 그런 소소하고 가벼운 대화에 한마디 얹어 보기도 했는데 말이다. 그의 등장과 함께 갈라지던 직원들과 뚝 하고 말소리가 끊기는 경험을 몇 번 하고부터 커피 한잔이 필요해도 직원들이 사라질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는 편이다. 혹시 그 들으라고 일부러 크게 웃고 떠드는 건가라는 말도 안 되는 자격지심이라는 병이 그에게 서서히 다가온다. 앉은자리에서 세차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자격지심, 그거 약도 없는 병이다.  

그에겐 그렇게 쉽게 ‘본인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라고 떠들던 직원이 다른 직원의 일에 관심을 가지며 한 마디씩 말을 보태고 있다. 그에게 있어 ‘상관’의 일이라는 것에 국한해서 특별히 ‘상관’할 필요가 없는 게 분명하다. 이런 말장난을 생각하며 애써 미소 짓는다.  


아홉 시를 일 분 남기고 자리에 앉는 직원. 누구에게랄 것 없이 공중에 흩뿌린 인사가 직원이 자리에 앉은 후에도 사무실을 둥둥 떠 다닌다. 이 인사를 받을 사람은 떠다니는 인사를 손으로 잡고, 그러고 싶지 않으면 내버려 두라는 듯, 그마저도 그건 뭐 그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듯.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그 인사가 야속하다. 그리고 밉다. 아주 미워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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